예전에 잠깐 할머니 댁에서 살았을 때, 매주 보았던 우리말 겨루기라는 프로그램 기억나니? 처음 보는 우리말도 배울 수 있고, 아는 단어나 속담을 맞추는 재미가 있었는데 말이야.
우리나라 말은 음식과 관련한 관용구나 속담이 꽤 많다는 것도 알게 되고 말이야. 그래서 오늘은 속담 몇 가지를 배우며 음식 이야기를 해볼까 해.
어릴 적 엄마는 편식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편식할 만큼 먹거리가 많지도 않았고, 내 엄마의 음식 솜씨는 아주 일품이었지만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하기에는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지. 그래서 엄마의 어릴 적 식탁은 편식 이라부를 것도 없을 만큼 단순했단다. 그런 엄마가 대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어 보니 세상에 먹을 게 너무 많은 거야. 엄마가 먹어보지 못한 것들 투성이라 맛과 식감을 알 수 없는 처음 먹는 식재료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감이 생기더라고. 먹어보지도 않고 생김새와 냄새만 맡아보고 먹기를 거부하는 '색깔 편식', '냄새 편식'이 생긴 거지. 특히 육류와 해산물에 대해서는 냄새만 맡아도 싫고, 조금 생김새가 징그럽게 생긴 해산물은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였지. 그러다 보니 늘 먹던 음식만 먹게 되고 새로운 음식을 먹기를 거부했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친구들, 선배들 배려 덕분(?)에 엄마가 먹고 싶은 메뉴를 먹을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4살 어린애처럼 울고불고 떼를 쓰지 않았을 뿐이지 얼마나 고집스럽고 이기적이었는지 부끄러운 마음이 가득하단다. 내 유년시절이 불행하다거나 어려웠던 집안 형편이 원망스럽지는 않아.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라는 속담처럼 다양하게 많이 경험해보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엄마의 기질 자체가 색깔, 향, 맛에 예민한 탓도 있기 때문이지. 그건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나름의 축복이야. 그래서 어쩌면 이렇게라도 천천히 요리라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식재료와 친해지고 그래서 맛보고 즐길 수 있게 된 건지도 몰라.
그렇지만 어째 여전히 친숙해지지 않는 친구들이 있지? 그래서 준비한 오늘 요리가 명란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 면요리 좋아하고, 특히 스파게티 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너에게, 여전히 낯선 식감의 명란 알과 데친 문어를 넣어서 요리하는 거지. 여전히 뚫어져라 음식을 들여다보고 킁킁 냄새를 맡는 탐색전으로 시작하겠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말처럼 일부러 예쁘게 잘 담아서 거부감도 줄이고 먹어보고 싶게 만드는, 한 번 두 번 먹다 보니 '생각보다 맛이 괜찮네'에 이르러 맛있다, 엄지 척 아니라도 말없이 한 그릇 쓱 비워내기에 이르는 것이 오늘의 요리의 목표란다. 사실 오늘 요리는 진짜 '뚝배기보다는 장맛이 좋다'에 딱 맞지 않니?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인데 (너에 표현에 따르면 징그러운) 비린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고소하고 담백한 맛. 거기에 오늘 토마토가 실하고 좋아서 곁들여 본 토마토 김치와의 궁합은 환상특급이지?
아들아, 세상은 넓고 맛있는 음식들은 무궁무진하단다. 이 넓은 세상 어디를 가든, 사람 사는 곳에서 그 문화의 음식을 축복처럼 누리려면, 먼저 여러 가지 식재료들을 잘 먹어보는 경험을 해보는 게 아주 중요해. 먼 훗날, 너의 여행이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으로 더 풍성해지길, 그런 멋진 날이 오길 엄마는 바라고 또 바랄게. 자, 이제 요리를 시작해 볼까?
• 조리순서
1. 냉동명란젓과 데친 문어는 하루 전에 냉동실에서 냉장실로 옮겨 해동시킨다.
2. 야채들을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빼준다.
3. 냄비에 물을 넣고 소금 한 꼬집, 올리브유 한 큰 술 넣고 끓어오르면 스파게티면을 넣고 9분 동안 삶는다.(원래 삶는 시간보다 1~2분 덜 삶는다)
4. 마늘 5쪽은 편으로 잘라주고(스파게티용), 3쪽(토마토 김치용)은 다져둔다.
5. 큰 볼에 토마토 김치용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섞은 뒤, 토마토, 적양파, 쪽파를 넣고 버무린 뒤 접시에 담는다.
6. 쪽파 1대는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자르고, 1대는 쫑쫑 썰고 홍고추도 쫑쫑 썬다.
7. 양파는 채 썰고, 토마토도 한 입 크기 로양 송이버섯은 얇게 편으로 썰어둔다.
8. 도마에 (종이 포일을 깔고) 명란젓갈을 놓고 명란껍질을 칼로 가른 뒤, 칼 뒷면을 사용해 명란 알을 살살 분리해서 모아둔다.(1/3은 따로 둔다)
9.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온도가 오르면 편 마늘을 볶다가 마늘향이 올라오면 7의 명란 알 2/3를 프라이팬에 넣고 볶다가 양파, 쪽파, 버섯을 넣고 같이 볶는다(올리브유 1큰술 추가)
10. 스파게티면이 익으면 면수를 한 국자 남기고 면을 건져내 8의 프라이팬에 넣고 후추 간을 하여 함께 2분 정도 볶는다. (너무 되직하면 면수 추가)
11. 면기에 스파게티를 담고 남겨둔 명란 알과 그라나 파다노 치즈, 파슬리를 고명으로 올리고 데친 문어를 한 입 크기로 썰어 함께 담는다.
맛있게 다 먹고 나니 오늘이 말복이었네? 삼계탕은 못 먹었지만, 맛있는 한 끼 먹고 달달한 디저트 먹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그렇지?
복날은 못 챙기더라도 하루 한 끼, 소중한 너의 식사는 잊지 말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