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7살이던 해, 한 여름 장대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너를 데리고 장례식장에 갔었어. 3시간 넘는 먼 거리를 가야 했지만 갑작스러운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위로의 말이라도 전하고 싶어서, 도로 위의 차선도 보이지 않고 바삐 움직이는 와이퍼로도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정도로 위험했던 길을, 마음을 졸이며 그렇게 다녀왔던 것 같다. 비가 어찌나 사납게 내렸던지 차에서 내려 장례식장 입구로 들어가는 그 잠깐 사이에 옷이 반이나 젖어서 네가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또 걱정했었는데. 조문을 하고 식당에서 받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육개장이 어찌나 반갑던지. 육개장 전문점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칠맛은 아니었지만 그날의 날씨가, 피로감 때문에 그 육개장이 맛있게 느껴졌던 것 같아. 그래서 한 겨울에 밥 한 공기 말아먹는 육개장의 맛과, 한 여름에 이열치열로 이마에 땀 흘리며 먹는 육개장의 맛은 다르게 맛이 있단다. 오늘 우리가 만날 육개장은, 비가 와서 기분도 다운되고 습기 먹은 것처럼 몸이 축 처지고 힘이 없을 때, 얼큰 칼칼한 육개장 국물에, 호로록 쫀득쫀득한 칼국수 면을 말아먹는 육개장 칼국수란다. 소고기와 야채가 푸짐하게 들어 있어서 다른 반찬 없이도 한 그릇 뚝딱 먹을 수 있는 양질의 한 끼라고 할 수 있지. 넉넉히 끓여서 용기에 한 끼 분량씩 나누어 담아 얼려 놓았다가 필요할 때 다시 끓여 먹어도 맛있단다. 오늘처럼 비 오고 눅눅한 날, 얼큰한 국물에 칼국수 면 말아서 한 그릇 뚝딱하면 기분이 훨씬 좋아질 거야.(엄마를 믿어봐)
오늘 요리의 포인트는, 1. 고기를 찬 물에 담가 핏물을 잘 빼줄 것, 2. 야채들을 미리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줄 것, 3. 고기 삶은 물을 버리지 않고 육수로 쓸 것, 4. 시간의 힘을 믿고 육개장을 오래 끓여줄 것.
건면으로 된 칼국수 면은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조금 더 쫄깃한 면의 식감을 느끼고 싶다면 생면을 사서 필요한 만큼 소분해서 냉동보관했다가 가급적 빨리 사용하도록 하렴.
여기서 잔소리 하나 추가!
냉동실을 너무 믿지 말고, 필요한 만큼 사서 최대한 빨리 소비하는 습관, 아주 중요해!!!
• 조리순서
1. 소고기 양지를 찬 물에 담가 30분간 핏물을 빼낸다.
2. 숙주나물은 씻어서 물기를 빼주고, 고사리를 물에 헹구어 물기를 짜준 다음 4 cm 크기로 잘라준다.
3. 깨끗이 씻은 대파는 4 cm 크기로 자른 뒤 사등분해서 자르고, 양파도 채 썰어 둔다.
4. 끓는 물에 고사리를 3분간 데친 뒤 찬물에 씻어 물기를 짜주고, 숙주나물과 대파도 끓는 물에 10초 간 데치고 물기를 빼준다.
5. 냄비에(속이 깊은) 월계수 잎과 파뿌리, 생강, 마늘, 양파를 넣고 물이 끓어오르면 소고기 양지를 넣어 30분 동안 삶는다.
6. 고기를 삶는 동안 고춧가루를 물에 개어 준 뒤, 중불로 예열된 프라이팬에 카놀라유를 넣고 고춧가루를 볶아 고추기름을 낸다.
7. 삶은 고기를 건져낸 뒤 결대로 잘게 찢는다. 삶은 고깃물은 건더기를 걸러내고 육수로 쓴다.
8. 넓은 볼에 데친 고사리, 숙주, 대파, 양파, 다진 마늘, 잘게 찢은 고기를 담은 뒤 6의 고추기름, 국간장을 넣고 조물조물 섞어 양념이 베이도록 한다.
9. 냄비에 고기 삶은 육수를 넣고 끓기 시작하면 8을 넣고 팔팔 끓이다가 소금을 넣고 간을 하고 약불로 줄인 뒤 30분 정도 끓인다.
10. 생칼국수 면은 밀가루를 털어내고 엉키지 않게 잘 풀어 준 다음 끓는 물에 넣어 6~7분 정도 삶은 뒤 채반에 건져 찬물에 한 번 씻어 남은 전분기를 빼준다.
11. 면기에 칼국수 면을 담고 육개장 건더기부터 채운 뒤 국물을 넉넉히 붓는다.
12. 숟가락 크게 한 번 퍼서 김치 한 점 올려 맛있게 먹는다.
면기에 한 사발 가득 담아서 줬는데도, '와~~ 씁.. 캬.. 와아~(엄지 척') 리액션을 연발하며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다 먹는 너를 보면서, 힘들어도 이 맛에 요리하게 된다. 잘 먹는 모습만 봐도 뿌듯하고 배부른, 너의 요리에도 그런 사랑이 담겨있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