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이방인
깊어가는 가을 11월 시애틀의 아침은 언제나 나지막한 회색빛 안개와 함께 시작된다. 침대 옆에 놓인 스마트폰을 켜고 습관처럼 유튜브 화면을 터치한다. 낯익은 한국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채운다. 멀리 떨어진 고국의 화면을 통해 들려오는 소식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미 대륙의 이야기, 바로 미국 중간선거 결과다. 내가 살고 있는 주(州)의 정치적 지형 변화와 새로운 정책의 향방을 나는 바다 건너 서울의 뉴스 앵커를 통해 비로소 실감한다.태평양을 사이에 둔 시차만큼이나, 내 삶과 이 땅의 현실 사이에도 묘한 거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출근길에 오른다. 라디오 핸들을 돌리는 대신 휴대폰을 연결해 우리들의 발라드 선율을 튼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리는 동안, 차량 내부를 가득 채우는 서정적인 한국어 가사는 시애틀의 서늘한 공기를 순식간에 익숙하고 따스한 온도로 바꾼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은 분명 미국 번호판을 달고 있고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침엽수 우거진 서북부의 숲이지만, 운전석 안의 세계는 완벽하게 고국에 몰입되어 있다.
일과를 마치고 들르는 공간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말이면 한인 마켓에 들러 익숙한 붉은색 포장의 신라면과 갓 담근 김치,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먹어온 초코파이를 카트에 담는다. 마트 내부를 채운 익숙한 냄새와 한국어 대화 소리 속에서 나는 잠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잊는다. 한인 은행 창구에서 계좌 업무를 보고, 낯익은 은행원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동안 영어가 설 자리는 없다.
가끔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 창구에서 "Large americano, please"라고 말하거나, 한 달에 한두 번 근처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주문할 때를 제외하면 온종일 단 한 마디의 영어도 쓰지 않은 채 하루가 저무는 날도 허다하다. 퇴근 후 거실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 켜고 드라마 100일의 거짓말에 몰입하거나 예능 나는 솔로 출연자들의 심리에 공감하며 웃고 울다 보면, 시애틀의 밤은 어느덧 고요히 깊어간다. 주일이 되면 당연한 듯 한인 교회를 찾아 한국어로 기도를 올리고 교민들과 떡을 나누며 소소한 일상을 묻는다.
오늘 아침, 붉은 신호등 앞에 차를 세우고 빗길을 지나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문득 가슴 한구석을 찌르는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이럴 거면, 나는 왜 굳이 이 멀리 미국까지 와서 살고 있는 걸까?'
우리는 흔히 이민자의 삶을 이야기할 때 '주류 사회로의 융합'이나 '두 문화의 조화'를 말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삶의 궤적을 들여다보면, 거대한 미국이라는 대륙 한가운데에 자신만의 견고한 '소형 한국'을 지어두고 그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기술의 발전은 시차를 소멸시켰고, 글로벌 OTT와 미디어는 지구 반대편의 정서마저 실시간으로 안방에 배달해 준다. 물리적 공간은 미국에 있지만, 정신적·문화적 생태계는 여전히 고국에 탯줄을 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태를 과연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결핍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경계 위에 선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봐야 할까. 한국에서는 미국에 사는 '교포'로 불리고, 미국 사회에서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 너머에 있는 '이방인'으로 classification 된다. 심지어 스스로 구축한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조차, 때때로 미시적인 고립감을 느낀다. 이것이야말로 그 누구의 영역에도 완전히 편입되지 않은, 완벽한 이방인의 초상이 아닐까.
하지만 이 씁쓸한 자각이 꼭 부정적인 회의감으로만 끝날 필요는 없다. 완벽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두 세계를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관조할 수 있는 눈을 가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시스템 속에 살면서도 그 틀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고, 고국의 문화적 풍요로움을 온전히 누리면서도 한 발짝 떨어져 고국의 정치와 사회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 그것은 어쩌면 이주(移住)라는 삶의 커다란 결단을 내린 이들에게 부여된 고유한 서정성이자 시사적 혜안일지도 모른다.
퇴근길, 다시 빗길을 달린다. 차창 너머로 시애틀 다운타운의 불빛들이 번져나간다. 완벽하게 이방인인 채로, 그러나 나만의 단단한 일상을 지켜내며 살아가는 오늘 하루. 이 이질적이고도 아련한 경계선 위에서, 나와 같은 수많은 이방인들이 저마다의 불빛을 밝히며 이 밤을 건너고 있을 것이다.
- 글쓴이 LaVie
- 전 금성출판사 지점장
- 전 중앙일보 국장
- 전 원더풀 헬스라이프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