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권하지 않는 사회, 술을 마시지 않는 청년
1. 취하지 않는 거리, 흔들리는 양조장
미국 태평양 북서부의 대표적 와인과 맥주 생산지인 워싱턴주가 뜻밖의 비명을 지르고 있다. 팬데믹 시기 늘어난 수요에 맞춰 생산 설비를 키웠지만, 최근 몇 년 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음주량이 가파르게 줄어들며 심각한 공급 과잉과 매출 타격을 입은 탓이다. 워싱턴주의 와인용 포도밭 경작 면적은 2년 사이 40% 이상 급감했고, 수제 맥주 양조장들 역시 소비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줄지어 문을 닫거나 알코올 도수를 대폭 낮춘 저도주 및 무알코올 시장으로 거처를 옮기고 있다.
비단 미국 워싱턴주만의 풍경이 아니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술자리 풍속도가 판이하게 달라졌다. 과거 대학가와 유흥가를 가득 채웠던 2차, 3차의 폭음 문화는 옛말이 되었고, 저녁이 되면 술집 거리 대신 헬스장과 러닝 크루가 청년들로 붐빈다.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2 ‘술 권하는 사회’를 돌아보며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소설가 현진건은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1921)를 통해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절망을 그렸다. 소설 속 주인공은 밤마다 만취하여 돌아와 "나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이 답답하고 모순된 사회"라고 한탄한다. 울분을 해소할 길 없는 청년에게 술은 세상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유일한 비명이자, 현실 도피의 안식처였다.
그렇다면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술을 권하지 않는 완벽한 평화의 시대를 맞이한 것일까? 청년들이 술을 끊은 이유가 단지 통찰 깊은 건강의식이나 삶의 여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
소설 속 청년이 사회의 압박 때문에 술에 취했다면, 오늘날의 청년은 오히려 사회적 압박 때문에 술잔을 비우고 있다. 100년 전에는 ‘억압받는 사회가 술을 권했다면’, 지금은 ‘불투명한 미래가 청년에게서 술을 빼앗은’ 격이다.
3. 불안의 시대, 취할 자유조차 잃어버린 세대
고물가와 고금리, 극심한 취업난과 자산 격차의 심화 속에서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역대 가장 불확실한 미래와 싸우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음주량의 감소는 매우 아이러니한 시사점을 던진다.
역사적으로 경제가 어렵고 삶이 고달플수록 저렴한 도수가 높은 술이나 맥주의 소비는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현실의 시름을 잊기 위한 고전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취할 권리마저 스스럼없이 포기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차가운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첫째는 극단적인 실용주의와 생존 전략이다. 치열한 무한 경쟁 속에서 다음 날의 숙취는 곧 자기관리 실패이자 생존 경쟁에서의 낙오를 의미한다. 술에 취해 신세를 한탄할 시간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청년들은 맨정신으로 스펙을 쌓고 몸을 관리하며 불안을 이겨내려 애쓴다.
둘째는 가성비와 비용의 문제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외식 물가가 치솟으면서 술자리에 드는 비용은 청년들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지불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술 한 잔에 담긴 감정적 위안보다 통장 잔고의 방어가 더 시급한 과제가 된 것이다.
4. ‘건강한 삶’이라는 표면 아래 숨겨진 쓸쓸함
주류 업계는 젊은 층의 음주 감소를 두고 ‘웰빙’과 ‘갓생(God+生)’ 트렌드의 결과라고 분석하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건강을 중시하고 무알코올 음료를 찾는 유행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그 깨끗하고 단정한 표면 아래에는 ‘취할 여유조차 없는’ 세대의 서글픈 초상이 숨어 있다. 울분을 술로 달래던 100년 전 지식인의 절망이 뜨거웠다면, 통제된 자기관리와 절제로 불안을 눌러담는 현대 청년의 절망은 차갑고 고요하다.
워싱턴주의 빈 포도밭과 문을 닫는 양조장들은 단순히 주류 산업의 위기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며 감정을 나누던 시대가 저물고, 각자도생의 냉정한 현실 앞에서 스스로를 엄격히 통제해야만 하는 청년 세대의 쓸쓸한 초상화를 보여주는 표지판일지도 모른다.
- 글쓴이 LaVie
- 전 금성출판사 지점장
- 전 중앙일보 국장
- 전 원더풀 헬스라이프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