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右)'과 '책상(左)' 사이, 우리가 잃어버린 두 날개의 지혜
미국 땅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이민자로서 우리는 늘 두 개의 세상을 동시에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내가 지금 뿌리를 내리고 땀 흘려 살아가는 미국 사회,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고국 한국의 소식입니다.
하지만 요즘 두 나라의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깊은 답답함과 함께 마음 한구석이 참 무거워집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국경과 문화는 전혀 다르지만, 한국과 미국 모두 놀라울 정도로 닮은꼴 진통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보수와 진보라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점점 더 깊어만 가는 '정치적·사회적 양극화' 현상입니다.
보수와 진보, 좌와 우로 극단적으로 갈라진 정치 무대에서는 이제 상대방을 대화의 파트너나 국정의 동반자로 보지 않습니다. 오직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며 거친 언사를 쏟아내기 일쑤입니다. 협치와 타협, 그리고 사회적 통합이라는 단어는 정치판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영역 전반에서도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는 듯합니다. 어쩌다 우리는 이토록 서로를 향해 칼날을 세우는 아수라장 속에 갇히게 되었을까요?

메아리 방 속에서 시작된 분열
이러한 분열의 중심에는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하나로 연결해 줄 것이라 믿었던 소셜 미디어(SNS)와 알고리즘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속에 들어앉은 정교한 알고리즘은 우리가 평소 좋아하는 뉴스, 우리가 동의하는 편향된 의견만을 계속해서 추천합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일명 '메아리 방(Echo Chamber)' 속에 갇히다 보니,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무조건 '틀린 것' 혹은 '악한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입니다. 클릭 몇 번에 세상은 쉽게 반으로 쪼개지고, 손가락 하나로 자신과 다른 이웃을 끊어내는 일이 너무나 쉬워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내 편이면 무조건 옳고 네 편이면 무조건 틀리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한자 속에 담긴 좌(左)와 우(右)의 본질
이렇듯 이념의 양극단에 갇힌 우리에게 건국대 조용헌 석좌교수의 좌우(左右) 한자 해석은 매우 신선하고 깊은 통찰을 던져줍니다.
그의 풀이에 따르면, '좌(左)'는 한자 안에 만들 공(工) 자를 품고 있습니다. 공은 공부(工夫)를 뜻합니다. 따라서 좌파의 본성은 책과 학문을 가까이하며, 사유와 이념, 그리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가치를 탐구하는 '생각의 세계'를 대변합니다. 반면, '우(右)'는 입 구(口) 자를 품고 있습니다. 입은 곧 먹는 기관입니다. 먹고사는 문제, 경제적 안정, 그리고 삶의 터전을 일구는 '실용과 현실의 현장'을 대변하는 것이 우파의 본성입니다. 어른들이 밥숟가락을 반드시 오른손으로 들게 했던 전통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해석은 언론인 강준만 교수가 말한 “좌파는 분열로 망하고, 우파는 부패로 망한다”라는 구절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좌파는 사상과 이념을 중시하다가 내부의 사상 검증과 분열에 빠지기 쉽고, 우파는 권력과 물질적 이익을 좇다가 타락과 부패에 빠지기 쉽다는 지적입니다.
결국 좌와 우는 서로 배척해야 할 적이 아니라,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처음부터 함께 존재해야 하는 '쌍둥이 축'입니다. 공부와 사유(좌)가 현실의 밥상(우)으로 연결될 때 사회는 비로소 건강해집니다. 반대로 먹고사는 문제(우)를 해결하면서 그 위에 정신적 가치와 문화(좌)가 쌓일 때 비로소 한 사회의 문명이 온전히 꽃을 피우게 됩니다. 이념의 편향으로 좌파적 가치만 절대화되면 현실의 밥통이 비어버리고, 우파적 가치만 절대화되면 정신의 양식이 굶주리게 되는 법입니다.
이민자라는 특별한 포용의 지혜
조금만 돌이켜보면, 우리 한인 이민자들은 이미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누구보다 몸소 체험하며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언어도, 문화도, 피부색도 전혀 다른 낯선 이 땅에 와서, 차이를 다듬고 서로를 배려하며 삶의 터전을 일구어냈습니다.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이민자로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웠던 귀중한 자산은 다름 아닌 '포용'과 '경청'이었습니다.
지금 극단적 양극화로 신음하는 양국의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도 바로 우리가 이민 초년생 시절 품었던 그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잠시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나와 정반대의 정치적 견해를 가진 이웃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 세상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하기 전에 그들의 처지와 맥락을 한 번쯤 헤아려보는 것. 공부하는 정신(좌)과 먹고사는 현실(우)이라는 두 날개가 모두 필요함을 인정하는 것. 이러한 작은 시도들이 모일 때 무너진 대화와 협치의 다리가 다시 놓일 수 있습니다.
새는 한쪽 날개만으로는 결코 날 수 없습니다. 양극화라는 차가운 미로 속에서, 우리 한인 사회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따뜻한 통합을 이끌어내는 '성숙한 대화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 글쓴이 LaVie
- 전 금성출판사 지점장
- 전 중앙일보 국장
- 전 원더풀 헬스라이프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