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는 계절이 건네는 안부
계절이 고개를 돌려 서늘한 바람을 품기 시작할 때, 나뭇잎은 저마다의 색으로 가장 화려한 마지막 문장을 써 내려갑니다. 결실과 풍요라는 찬란한 이름 뒤편으로, 찬 공기가 옷깃을 스칠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적적함이 피어오르곤 합니다. 스러지는 계절 앞에서 일렁이는 이 마음은 단순한 감수성의 방황이 아닙니다. 빛이 옅어지고 길어진 밤의 무게에 우리의 몸과 마음이 자연스레 응답하는 거스를 수 없는 순리일지도 모릅니다.

가을의 햇살은 여름의 그것처럼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낮이 짧아지고 어둠이 빨리 밀려오면, 마음의 응달을 밝히던 세로토닌의 빛은 흐려지고 밤의 침묵을 부르는 멜라토닌이 조용히 번져갑니다. 까닭 모를 피로감이 어깨를 누르고, 까만 밤하늘 아래 마음의 수심(水深)이 깊어지는 ‘계절성 기분 장애’는 그렇게 가만히 문을 두드립니다.
이 스스름한 계절의 그늘은 이역만리에서 삶을 일구는 이들에게 유독 짙고 서늘하게 다가옵니다. 낯선 언어와 경계선 너머에서 하루하루 묵묵히 뿌리를 내리려 애써온 시간들, 그 긴장과 고단함의 시효가 지날 즈음 추석과 연말이라는 절기가 차례로 찾아옵니다. 고향의 흙냄새와 그리운 이들의 웃음소리가 아득해질수록, 문화적 고립이라는 단어는 한 줄기 바람에도 차갑게 가슴을 파고듭니다. 익숙했던 온기와 조촐한 정을 나눌 공간마저 먼 곳, 타향의 가을은 그래서 더 쓸쓸한 여백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가져다준 이 고요한 우울을 스스로의 나약함이나 의지의 부족이라 자책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은 나무가 차가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를 비워내는 다정한 준비이듯, 우리 마음의 시림 역시 잠시 일상을 멈추고 자신을 보듬으라는 가만히 다가온 신호일 테니까요.
이 계절을 지나는 지혜는 그리 거창하지 않습니다. 가장 찬란하게 햇살이 내리쬐는 낮 시간, 잠시 걷던 걸음을 멈추고 온기를 가만히 맞아보는 것입니다. 따스한 햇볕은 마음의 어둠을 몰아내고 작고 단단한 힘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리고 혼자만의 고립된 섬에 머물기보다, 곁에 있는 이웃에게 따뜻한 안부 한 마디를 건네어 봅니다. 조그마한 온기가 모여 외로움의 온도를 낮추고 마음의 문턱을 낮추어 줄 것입니다. 그마져 힘들다면 나만의 작은 국화꽃 화분을 사서 창가에 두고 가꾸어 보세요.
가을은 비워냄으로써 비로소 다가올 봄의 생명을 준비하는 침묵의 시간입니다. 타국이라는 아득한 지평선 위에서 저마다의 삶을 묵묵히 가꾸어 가는 모든 이들이, 이 계절이 건네는 쓸쓸함에 침몰하기보다는 스스로를 향해 더없이 다정한 안부를 건네는 따스한 계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글쓴이 LaVie
- 전 금성출판사 지점장
- 전 중앙일보 국장
- 전 원더풀 헬스라이프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