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오면
뜨거웠던 여름의 잔열이 가라앉고 서늘한 바람이 문틈을 스치는 9월입니다.
유난히 길고 잔인했던 폭염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견뎌냈습니다. 치솟는 물가와 팍팍한 살림살이, 식을 줄 모르는 더위 속에서도 에어컨 바람에 겨우 숨을 고르며 하루하루를 버텨낸 소시민들에게 올여름은 유독 고단했습니다. 타들어 가는 아스팔트 열기만큼이나 삶의 무게는 무거웠고, 그저 아무 탈 없이 하루가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무더위를 견뎌냈습니다.

9월이 시작하니 문득 1960년대의 고전 영화 <9월이 오면(Come September)>의 경쾌한 선율과 풍경이 떠오릅니다. 이탈리아의 지중해 해안가 별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는,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아주 단순하지만 명확한 진리 하나를 던져줍니다. 삶은 우리가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바로 그 엉뚱함 속에 생각지도 못한 휴식과 구원이 숨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 로버트는 매년 9월마다 자신만의 휴가를 즐기기 위해 별장을 찾습니다. 일과 일상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완벽하게 계산된 평온을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어느 해, 예상보다 일찍 별장에 도착한 그는 황당한 광경을 맞닥뜨립니다. 충직한 줄로만 알았던 관리인이 그가 없는 11개월 동안 별장을 몰래 '호텔'로 개조해 손님들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완벽해야 할 휴게 공간은 예기치 않은 소란과 낯선 이들의 소동으로 가득 차버립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이 별장과 닮아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하루하루 버텨내는 소시민의 삶이란, 늘 촘촘한 계획과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물가는 오르고, 일터에서의 피로는 묵직하게 어깨를 누르며,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간관계는 마음에 생채기를 냅니다. 내가 일구어놓은 터전에 타인의 소음이 침범하고, 잠깐의 휴식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로버트처럼 분노하거나 허탈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엉망진창이 된 상황을 원망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예기치 못하게 별장을 차지한 청년들과 부대끼고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로버트는 뜻밖의 온기와 삶의 활력을 회복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도리어 삶의 또 다른 경이로움으로 전환되는 순간입니다.
9월은 참으로 묘한 계절입니다. 한 해의 결실을 준비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밀려오는 시기이자, 동시에 폭염에 지쳤던 몸과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일종의 환승역입니다. 치열하게 여름을 견뎌낸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완벽한 성과'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변수조차 품어낼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나의 계절이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뜻밖의 소란 속에 진정한 살아있음이 있고, 내가 쥐어짜 낸 대책보다 계절이 가져다주는 자연스러운 순리가 더 큰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별장이 뜻밖의 호텔이 되었듯, 우리 삶의 우여곡절도 돌아보면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유쾌한 에피소드가 될 따름입니다.
지쳐있는 모든 소시민들에게 9월의 바람을 빌려 조용히 안부를 건넸으면 합니다. 당신이 걸어온 지난 여름은 충분히 뜨거웠고, 그 자체로 존엄했습니다. 이제 찾아온 9월에는 단단히 쥐고 있던 긴장의 끈을 조금 풀어놓으셔도 괜찮습니다. 뜻밖의 일들이 찾아오더라도, 그것이 당신의 계절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찰나의 해프닝이라 믿으며 웃어 넘길 수 있는 여유가 함께하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9월이란 바로 그런 계절입니다. 여름이 무책임한 열기와 화려함으로 우리를 지치게 만든 계절이었다면, 9월은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와 거친 숨을 가다듬게 하는 고마운 계절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이 9월의 선선한 바람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삶의 가치를 발견했듯, 우리 역시 이 계절의 길목에서 스스로를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시들어가지 않고 끝내 버텨낸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숭고한 하루하루를 살아냈습니다.
뜨거운 태양아래서 땀 흘리고 지쳤어도 가족의 손을 놓지 않았고, 고단함 속에서도 오늘을 살아낸 당신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선선한 9월의 바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됩니다.
9월이 오면, 마침내 조용히 숨을 고르고 계절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 담담하고 서정적인 위로 속에서, 당신의 지친 마음에도 따뜻한 평온이 가득 고이기를 마음 깊이 기원합니다.
- 글쓴이 LaVie
- 전 금성출판사 지점장
- 전 중앙일보 국장
- 전 원더풀 헬스라이프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