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낭만이 사라진 여름, 기후위기 세대에게 남겨진 계절
지금 시애틀의 황금기 여름을 보내며 아름답고 찬란한 햇살을 즐기고 있으나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거의 재난과도 같은 찜통더위와 물 부족으로 힘든 여름을 보낸다고 한다.
여름이면 커다란 양동이에 우물물을 가득 받아두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수박을 쪼개 먹던 시절이 있었다. 달콤한 우유나 사이다를 부어 만든 화채 한 대접에 더위는 금세 청량한 추억으로 바뀌곤 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시골 외갓집으로 달려가 헐렁한 옷을 입고 개울가로 향했다. 자갈밭에 엎드려 바위를 들추며 다슬기를 잡고, 손끝이 쪼글쪼글해질 때까지 물놀이를 즐기던 그 시절의 여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생명력과 낭만이 넘쳐나는 하나의 축제였다.

그때의 여름도 분명 뜨거웠다. 하지만 매미 소리가 매력적으로 울려 퍼지던 나무 그늘 아래에는 항상 시원한 바람이 지나갈 자리가 있었고, 밤이면 마루에 누워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며 부채질로 열기를 식힐 수 있는 서정적인 여백이 존재했다. 자연은 여름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에게 생기 넘치는 계절의 미학을 선물했고, 우리는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계절의 순환과 생명의 온기를 배워나갔다.
그러나 불과 한 세대 만에 우리가 기억하던 그 낭만적인 여름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여름은 서정시가 아니라 생존을 다투는 재난 영화에 가깝다. 장마가 끝나기가 무섭게 도심을 짓누르는 살인적인 열돔 현상, 밤새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끈적한 열대야, 그리고 예측할 수 없이 쏟아지는 폭우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개울가로 달려가라'고 말할 수 없게 만든다. 아이들이 뛰놀던 시골 개울가는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에 바짝 마르거나, 갑작스러운 기습 폭우로 위험천만한 통제 구역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세대는 여름을 '추억을 쌓는 계절'이 아닌 '피해 가야 하는 위기의 시간'으로 학습하며 자라고 있다. 에어컨이 쉼 없이 돌아가는 실내에 갇혀 창밖의 펄펄 끓는 풍경을 바라보는 요즘 아이들에게, 양동이 속 얼음물에 떠 있던 수박 화채나 차가운 개울물에 발을 담그던 감각은 전설 속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질 뿐이다. 계절이 주는 자연스러운 계절감과 낭만을 박탈당한 채, 온열질환과 환경 파괴의 공포를 먼저 배우게 된 기후변화 세대의 현실은 참으로 씁쓸하다.
과거의 여름이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호흡하며 견뎌낼 수 있는 계절이었다면, 지금의 여름은 인간이 자초한 기후 위기가 보내는 엄중한 경고장이다. 타오르는 태양 아래서 옛날의 그 청량했던 여름을 그리워하는 것은 단순히 지난날에 대한 감상적인 향수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이 지키고 있던 최소한의 균형점, 즉 우리가 잃어버린 '지구의 건강함'에 대한 그리움이다.
수박 한 조각에 온 세상을 얻은 듯 기뻐하고, 다슬기 몇 마리에 손이 시린 줄도 몰랐던 그 여름의 낭만을 다음 세대에게 영영 전해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무겁게 밀려온다. 살인적인 더위가 일상이 되어버린 오늘, 우리가 회상하는 옛 여름의 추억은 단순한 그리움을 넘어 지체할 수 없는 환경적 성찰과 실천을 촉구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인사가 시애틀 날씨만큼은 축복이라고 말 한다.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그래서, 예측할 수 없는 위기가 맞닥뜨리 더라도 오늘은 이 아름다운 날씨를 즐기며 행복해지자.
- 글쓴이 LaVie
- 전 금성출판사 지점장
- 전 중앙일보 국장
- 전 원더풀 헬스라이프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