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품으로 숨은 청년들, 울타리를 친 황제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유행어들은 트렌디함 대신 서글픈 생존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고용 한파 속에서 등장한 ‘전업자녀(Full-time Children)’라는 신조어가 대표적입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 가사 노동을 돕고 용돈을 받으며 생활하는 청년들. 얼핏 보면 효도나 새로운 가족 형태처럼 포장되지만, 실상은 취업 시장에서 밀려난 청년 세대의 고단한 후퇴이자 고육지책입니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 뉴스 반대편에서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국내 최대 기업이자 글로벌 무대에서 뛰는 삼성전자 반도체 노조의 파업과 요구 사항을 두고, 평범한 직장인들과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황제 노조’, ‘귀족 노조’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평균 연봉이 억대를 상회하고 온갖 복지 혜택을 누리는 이들이 더 많은 보상과 권리를 요구하며 손을 맞잡을 때, 울타리 밖의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 깊은 소외감을 느낍니다.
이 두 가지 현상은 전혀 다른 별개의 사건이 아닙니다. ‘ 전업자녀’와 ‘황제 노조’는 2026년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극단적인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와 양극화가 낳은, 한 몸에서 나온 두 개의 일그러진 얼굴입니다.

둥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전업자녀’들의 속사정
오늘날 청년들이 게을러서 부모 밑에 머무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어느 세대보다 화려한 스펙을 쌓고, 인공지능(AI)과 디지털 도구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치열하게 스펙 경쟁을 벌여온 세대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노동 시장은 너무나 좁고 차갑습니다. 기업들은 신입 사원을 뽑아 키우기보다 당장 현장에 투입할 경력직을 선호하고,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습니다.
결국 무수한 탈락 통지서에 상처받은 청년들은 서서히 활력을 잃고 방 안으로, 부모의 품으로 숨어듭니다. 경제적 독립이라는 당연한 성인식의 과정이 유예되면서, 청년들은 사회적 주체로서의 자존감을 잃어갑니다.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며 밥값은 하고 있다"는 자기위안 뒤에는, 언제까지 이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사회로부터 고립되었다는 소외감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이들에게 사회는 진입조차 허락하지 않는 거대한 성벽과 같습니다.
울타리를 더 높이 쌓는 ‘황제 노조’의 성벽
반면, 이미 견고한 성벽 안으로 들어간 이들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문법으로 움직입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노조를 향한 대중의 시선이 싸늘한 이유는, 그들이 주장하는 ‘노동자의 권리’가 성벽 밖의 평범한 이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직원이 누리는 임금과 복지는 이미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 혹은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의 삶과 비교했을 때 아득히 높은 수준입니다.
물론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회사의 성과를 공정하게 분배받고자 하는 노조의 본질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 압박과 노동 강도에 대한 그들만의 고충도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과 청년들이 보기에, 이들의 행보는 사회적 연대보다는 ‘이미 가진 기득권을 더 공고히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 비쳐집니다.
대기업 노조가 더 높은 임금과 과도한 복지를 쟁취할수록, 기업의 비용 부담은 커지고 이는 결국 하청업체에 대한 단가 인하 압박이나 신규 채용 축소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결과적으로 성 안의 사람들이 울타리를 높일수록, 성 밖의 ‘전업자녀’들이 들어갈 틈새는 더욱 좁아지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이중 구조의 고착화, 무너지는 사회적 신뢰
문제는 이러한 극단적인 양극화가 단순히 경제적 격차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의 연대감과 신뢰를 무너뜨린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열심히 노력하면 나도 저 성벽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다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절망감이 지배적입니다.
노동 시장이 고연봉·고복지의 '1차 시장(대기업·공공부문)'과 저임금·불안정한 '2차 시장(중소기업·비정규직)'으로 완전히 쪼개지면서, 청년들은 2차 시장에 진입해 경력을 쌓기보다 차라리 '전업자녀'가 되어 1차 시장의 문이 열릴 때까지 무한 대기하는 쪽을 택합니다. 어설픈 일자리에서 고생하느니, 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대기업 공채나 시험에 매달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득이라는 계산이 서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청년 노동력은 낭비되고,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리며,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성벽을 낮추고 사다리를 다시 놓아야 할 때
이 뒤틀린 양극화 사회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 안과 성 밖의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대기업과 그 노조는 자신들이 누리는 혜택이 오롯이 자신들의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적 인프라와 수많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세겨진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벽을 더 높이 쌓아 올리는 이기주의를 내려놓고, 청년 고용 확대와 상생을 위해 양보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대중이 그들에게 던지는 ‘황제 노조’라는 비난 속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해달라는 간절한 요구가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정부와 기업 역시 청년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 당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단단한 사다리를 다시 놓아주어야 합니다. 대기업 위주의 기형적인 고용 구조를 개선하고, 중소기업에 다녀도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안전망과 공정한 보상 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전업자녀’라는 말 속에는 청년들의 나약함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차마 제공하지 못한 일자리에 대한 미안함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모든 청년이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만의 든든한 일터에서 땀 흘릴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일터의 격차가 서로를 황제와 부랑자로 나누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진정한 성장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글쓴이 LaVie
- 전 금성출판사 지점장
- 전 중앙일보 국장
- 전 원더풀 헬스라이프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