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자동차와 높아진 장바구니, 그 너머의 '이민자 정신'
출근길 아침마다 주유소 전광판의 숫자가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어제보다 또 몇 센트가 오른 기름값. 미국과 이란 사이의 전운이 감돌며 시작된 유가 급등은 단순히 숫자의 변화를 넘어, 새벽부터 일터로 향하는 이민자들의 자동차 바퀴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프리웨이를 가득 메운 차량의 행렬 속에서 우리는 묻게 됩니다. "이 길의 끝에는 여전히 기회의 땅이 기다리고 있는가?" 마트의 신선 식품 코너에선 집어 들었던 식재료를 다시 내려놓는 손길이 잦아졌고, '최악'이라 불리는 취업난은 이제 막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리려던 청년들과 가장들의 꿈을 시험대에 올리고 있습니다.

지정학적 갈등의 파고가 우리의 식탁을 덮치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포성은 태평양을 건너 이곳 미국 땅에 사는 우리에게 물가 상승과 고용 불안이라는 실존적인 공포로 치환됩니다. 특히 연고가 적고 기반이 약한 이민자들에게 경제적 불황은 단순한 통계 수치가 아닙니다. 그것은 생존을 건 소리 없는 전쟁과도 같습니다. 한때 기회의 땅이라 불렸던 이곳이 차디찬 시련의 땅으로 변해버린 듯한 상실감이 우리 커뮤니티를 감돌고 있습니다. 텅 빈 구인 광고란과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월세는 우리를 위축시키고, 고립된 이방인으로서의 고독감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한인 이민사는 언제나 '결핍'을 '개척'으로 바꾸어온 기록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멀리 떨어진 역사의 페이지를 들춰보지 않아도 이미 그 증거들을 몸소 겪어왔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했던 금융 위기(Subprime Mortgage Crisis)의 거센 파도를 기억하십니까? 당시 수많은 한인 가정이 평생을 바쳐 마련한 집을 잃을 위기에 처했고, 잘나가던 비즈니스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인 은행들이 휘청거리고 한인타운의 밤거리가 적막에 싸였을 때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빚을 보듬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낮에는 직장에서 밤에는 식당에서 땀 흘리며 그 터널을 지나왔습니다.
더 가깝게는 불과 몇 년 전, 전 세계를 멈춰 세웠던 팬데믹의 공포가 있었습니다.
가게 문을 닫아야만 했던 봉쇄의 시간 속에서, 아시안을 향한 이유 없는 증오 범죄의 위협 속에서도 우리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인 사회는 마스크를 나누고, 영업이 중단된 식당의 음식을 이웃과 공유하며 '우리'라는 이름의 방역망을 구축했습니다. 그 지독했던 불확실성의 터널 끝에서 우리는 기어이 다시 일어섰습니다.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삼중고 또한 우리가 넘어야 할 또 하나의 고개일 뿐입니다.
유가가 올라 외출이 줄어든 만큼 가족과 식탁에 마주 앉는 시간을 늘리고, 취업이 힘든 시기일수록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정보를 공유하는 한인 사회 특유의 응집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거시적인 경제 지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만, 서로를 다독이는 마음의 온도만큼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압박이 우리의 일상을 옥죄어 올 때일수록, 우리는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상의 기술'을 발휘해야 합니다. 규칙적인 운동과 영양제를 챙기는 작은 습관 하나가, 거대한 풍랑 속에서 나를 지키는 단단한 닻이 되어줄 것입니다.
전쟁의 구름이 걷히고 경제의 파고가 낮아질 날은 반드시 옵니다.
역사는 증명합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워지면, 가장 단단한 강철은 뜨거운 불길 속에서 제련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금의 고통은 우리가 이 땅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리기 위한 진통일지 모릅니다. 훗날 우리가 이 시간을 돌아보며 "그때 참 힘들었지, 하지만 우리는 함께 견뎌냈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를 묵묵히 버텨내야 합니다.
오늘 밤, 비록 장바구니는 조금 가벼워졌을지라도 우리의 희망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하게 채워지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이방인이 아니라, 이 땅의 주인이자 역사의 개척자입니다. 멈춰선 자동차의 시동을 다시 걸고, 높아진 물가보다 더 높은 기개를 품고 내일의 태양을 맞이합시다. 우리 곁에는 서로가 있고, 우리 안에는 그 어떤 불황도 꺾지 못할 강인한 생명력이 숨 쉬고 있습니다. 시련은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일 뿐이지만, 우리가 일궈낸 연대와 사랑은 이 땅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 글쓴이 LaVie
- 전 금성출판사 지점장
- 전 중앙일보 국장
- 전 원더풀 헬스라이프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