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크리스마스 — 고요한 밤의 초상, 그리고 참된 빛
어느새 거리 곳곳에 반짝이는 조명이 켜지고, 캐럴이 흘러나오는 계절이 돌아왔다. 겨울 바람이 불어 닿는 창가에 앉아 거리를 바라보면, 익숙한 풍경 속에 스며든 낯선 풍경이 겹쳐 보인다. 온 세상이 축제의 기대로 들떴지만, 문득 마음의 한켠이 스산하게 비어 있는 듯한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건 다름 아닌 나 홀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이들의 시간이다.
요즘 한국의 가정 형태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통계가 우리 시대의 현실을 말해 준다. 이 말은 곧,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둘러싸여 크리스마스트리를 함께 장식하던 풍경이 더 이상 보편적이지 않다는 현실을 뜻한다. 가족과 함께여야만 한다는 기대는 때로 무거운 짐처럼 우리 어깨를 누른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는 단지 가족과 선물을 주고받는 날일까? 세상적인 의미를 넘어 설 때,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에게 훨씬 더 깊고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다. 크리스마스는 바로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날, 곧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이 날을 통해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신비를 기억한다.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 그 초라하고 평범한 공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는 인류의 구원과 희망의 시작을 상징했다. 성경에서는 이 사건이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가장 연약한 현실 속으로 직접 들어오신 사건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창조의 질서 밖으로 멀리 떨어진 인간의 세계에 오신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사랑의 몸부림과도 같다.
그 아이의 이름은 예수, 곧 “구원자”였다. 하나님이 인간의 눈높이로 자신을 낮추시고,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살아가신다는 사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진리다. 이 진리는 오늘날의 크리스마스가 왜 빛과 희망의 상징이 되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 빛은 단지 화려한 장식이나 반짝이는 전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마음에서 온다.
혼자 보내는 크리스마스의 밤은 때때로 벅찬 외로움으로 다가온다. 거리의 연인들, 가족 사진을 올리는 친구들, 들썩이는 웃음소리 속에서 홀로인 이들은 마음속 작은 갈망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순간은 크리스마스의 또 다른 얼굴—홀로이지만 존재의 깊이를 마주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예수도 태어나자마자 천상의 찬송이 아니라, 낮은 곳의 현실과 사람들의 불안 속에서 맞이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기독교 전통에는 이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계절, **대림절(Advent)**이 있다. 이는 단지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의 시간이다. 고요한 밤, 외로운 마음, 빛이 사무치는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붙드는 기다림이다.
그래서 나 홀로 크리스마스는 단지 ‘혼자’인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깊은 곳과 대면하고, 삶 속 본질적 빛을 되새기는 시간이 될 수 있다. 혼자이지만 하나님의 임마누엘이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도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 밤은 더 이상 쓸쓸하지만은 않다.
이 계절의 밤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따뜻함을 찾아간다. 반짝이는 거리의 조명처럼, 각자의 마음 속 작은 불빛들이 밝게 타올라 서로를 비추는 날이 오기를. 나 홀로인 이들의 크리스마스가, 고독 속의 찬란한 순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 해 동안 무사히 살아있음에 감사드리며 밝아오는 새해에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길 기도해본다.
- 글쓴이 LaVie
- 전 금성출판사 지점장
- 전 중앙일보 국장
- 전 원더풀 헬스라이프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