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장처럼 갑자기 실직할라…자격증에 몰리는 중장년
지난해 50대 이상 자격증 응시자 42만명…9년만에 2.7배 늘어
男 지게차운전·女는 한식조리사 선호…공인중개사도 여전히 인기
어려운 재취업·저임금 현실에 늦깎이 공부…자격증 있으면 다소 유리

'2025 서울시 4050 중장년 취업박람회'에서 상담하는 구직자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요즘 드라마 '김부장'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네요."
'임원 승진이 99.9% 확정'이라고 말하던 대기업의 김 부장이 좌천 끝에 희망퇴직을 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상황을 그린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직장인들로부터 공감을 얻으면서 노후 대비용 자격증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녀가 대학에 다니고 집 대출금도 남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실업자가 되는 상황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점에서다.
현실에서도 기대 수명은 늘어나는 데 비해 '꿈의 직장'인 대기업에서도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만 55~59세 인구의 '주된 일자리'(가장 오래 일한 일자리) 퇴직 비중은 55.3%에 이른다. 법정 정년 연령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절반 이상이 주된 일자리를 퇴직했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드라마 속 김 부장의 부인처럼 공인중개사 같은 자격증을 따는 중장년층이 많다.
실제 50∼60대들은 어떤 자격증에 관심을 두고 있을까 살펴봤다.

만 55~64세 인구 중 '주된 일자리' 퇴직자 비중
[한국고용정보원 고용동향브리프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 국가기술자격 응시 매년 증가…50·60대 도전자 증가폭 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2024년도 수험자 동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자격증 취득을 위해 도전하는 중장년층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전체 국가기술자격증의 90%에 해당하는 493종목의 자격시험을 시행하는 기관이다.
지난해 전체 국가기술자격 필기 접수자는 총 304만3천623명으로, 이 가운데 50세 이상 중장년층이 13.8%(42만441명)를 차지했다.
절대적인 숫자는 20대(126만1천163명)나 30대(60만8천335명)보다 적지만, 전체 인원 중 중장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하게 늘고 있다.
2015년 50세 이상 수험자는 15만3천493명이었으나 2018년에는 20만5천692명으로 20만명 선을 넘었다.
이어 2021년에는 32만5천521명으로 6년 새 2배로 늘었다. 2023년에는 40만6천729명, 지난해는 42만441명으로 최근에도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60세 이상 수험자는 2015년 2만4천71명에서 지난해 11만6천121명으로 5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는 같은 기간(2015~2024년) 20대 증가율 20.4%, 30대 33.8%, 40대 44.2%에 비해 큰 폭의 상승률이다.

'2023 중장년·어르신 희망 취업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 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중장년층의 자격증 응시 증가는 인구 구조 변화와 함께 퇴직 후 재취업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공단 관계자는 "공식적인 분석은 아니지만 '인생 이모작'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그만큼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평균 수명 100세 시대에 맞춰 노동 연한도 그만큼 미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연령대와는 달리 중장년층에서는 국가기술자격증 가운데 기능사 응시 인원이 크게 증가하는 모습이다.
기능사의 경우 별도 자격 요건이 없어 국가기술자격증의 입문 단계에 해당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015년 기능사 시험을 신청한 50세 이상 중장년층은 9만8천525명이었으나 지난해는 18만9천236명으로 배로 불어났다.
반면 20대나 30대는 접수 인원이 줄었고 40대도 9.3%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24년 연령대별 필기시험 합격 현황
[큐넷 수험자 동향 분석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 男은 지게차운전기능사·女는 한식조리기능사 선호
중장년층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자격증은 지게차운전기능사와 한식조리기능사로 나타났다.
공단이 지난해 국가기술자격시험 접수 순위를 분석한 결과, 50대 남성이 가장 많이 신청한 시험은 지게차운전기능사(2만793명)로 나타났다. 이어 산업안전기사(1만6천385명), 전기기사(1만4천619명), 전기기능사(1만2천929명), 굴착기운전기능사(1만315명) 등의 순이었다.
60대 남성도 비슷했다.
지게차운전기능사(8천856명)가 1위였으며 전기기능사(7천402명), 전기기사(6천719명), 굴착기운전기능사(5천335명) 순으로 뒤이었다. 다만 산업안전사 대신 조경기능사(4천760명)가 5위 안에 포함됐다.
50대 여성은 한식조리기능사(1만4천7명), 컴퓨터활용능력 2급(9천68명), 미용사(일반,3천824명), 제빵기능사(3천336명), 제과기능사(3천38명) 순으로 시험을 많이 치렀다.
60대 여성의 경우 한식조리기능사(5천254명), 미용사(일반, 1천75명), 제빵기능사(980명), 제과기능사(732명), 양식조리기능사(701명) 순이었다.
모두 중장년이 재취업하기 용이한 직업군과 관련 있다는 것이 공단 측 설명이다.
공단 관계자는 "지게차는 필요 없는 현장이 없다고 할 정도로 항상 수요가 있고, 전기기능사도 건물 관리 쪽에서 꼭 채용하는 직군"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식·양식조리기능사나 제빵·제과기능사는 단체급식 등의 분야에서 수요가 꾸준하다"고 설명했다.
중장년층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합격률도 높은 편이다.
공단이 운영하는 국가자격포털 큐넷(Q-net)에 따르면 지난해 50대의 국가자격시험 필기 합격률은 53.1%, 60대 이상의 합격률은 52.3%를 각각 기록했다.
합격률이 50%를 넘는 연령대는 50대와 60대뿐이다.
20대는 48.2%, 30대는 46.9%, 40대는 47.2% 수준이다.

2024년도 연령·성별 국가기술자격 접수 순위
[한국산업인력공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공인중개사 시험 여전히 인기 …50·60대 응시 비중 매년 증가
공인중개사 시험에 응시하는 중장년층도 계속 증가 추세다.
지난해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전체 신청자 가운데 50대는 5만3천895명으로 전체 인원의 25.3%를 차지했다.
50대 신청자 비율은 2020년 22.6%, 2021년 23.0%, 2022년 23.2%, 2023년 24.0%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60대도 마찬가지다. 60대 신청자 비율도 2020년 5.7%, 2021년 6.0%, 2022년 6.3%, 2023년 6.6%, 지난해 7.4%를 기록했다.
신청자가 가장 많은 연령대는 40대(31.1%)지만 50∼60대의 비중이 40대보다 많다.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자의 연령대가 최근 낮아지는 추세이기는 하나 여전히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자격증인 셈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여전히 시험 응시자의 주축은 중장년층, 그중에서도 50~60대"라면서 "다른 곳에 취업하기보다는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이 제2의 인생을 보내기에 낫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합격률은 다른 연령대보다 떨어진다.
지난해 50대와 60대 합격률은 각각 29.8%와 22.3%로, 평균 33%대인 20~40대 합격률보다 낮았다.
2023년에도 20대와 30대 합격률은 26%대였으나 50대는 21.8%, 60대는 15.0%에 그쳤다.
그동안 공인중개사 합격자가 총 55만명 이상 배출되면서 시장 포화로 자격증 취득 이후에도 개업이나 취업이 쉽지 않은 문제도 있다.
협회 관계자는 "현재 개업 공인중개사는 11만명으로, 이른바 '장롱 면허자'가 44만명이라는 의미"라면서 "이렇다 보니 응시자도 계속 줄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건물에 공인중개사무소가 나란히 들어서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자격증 수요 이면에는 재취업난…일자리 구해도 임금 하락
중장년층의 자격증 취득 이면에는 이들 연령대의 재취업이 쉽지 않은 현실이 있다.
40~50대의 평균 재취업 기간이 1년 이상인 데다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일자리도 이전보다 임금이 낮은 저임금 일자리다.
전경련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가 2022년 40세 이상 중장년 구직자 1천20명을 대상으로 한 '중장년 구직활동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중장년 구직자 36.8%가 6개월 이상 장기 실업 상태였다.
퇴직 후 취업 소요 기간은 40대 12개월, 50대 13.6개월, 60대 19.1개월로 나타났다.
취업난을 뚫고 재취업에 성공해도 큰 폭의 임금 감소를 피할 수 없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지난해 4월에 낸 '중장년 고용 특성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중장년 근로자의 임금 감소 비율이 큰 편으로 나타났다.
일자리 이동 전 임금을 500만원 이상 받았던 40대는 53.2%가 이동 후 임금이 줄었다고 밝혔다. 50대는 이 비율이 64.1%로 더 높다.
또한 40대가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15.4%에 불과했고, 50대는 이 비율이 13.3%였다.
보고서는 "전체 취업자에서 약 절반을 차지하는 중장년은 40대 이후 이직 및 전직 등 일자리 이동 과정에서 열악하고 불안한 노동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령별·기업규모별 일자리 이동현황
[서울특별시50플러스재단 중장년 정책 인사이트 보고서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 "자격증, 노동시장 재진입 위한 출발점"
이런 상황에서 자격증이 있으면 그나마 취업에 유리한 카드를 쥘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2023년도 국가기술자격 응시자의 이듬해 고용상태를 건강·고용보험 가입 여부로 분석한 결과, 2023년 국가기술자격 취득자 중 미취업자(44만5천만명)의 47.5%가 1년 이내 취업했다.
자격 취득자의 취업률은 미취득자보다 7.9%포인트 높았다.
국가기술자격 취득만으로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재취업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단의 또 다른 관계자는 "중장년층은 자신이 하던 업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재취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려면 노동시장 재진입을 위한 일종의 시작점이 필요한데 국가자격증 취득이 새로운 디딤돌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재취업에 성공했어도 그 일자리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는 사람도 많다"면서 "시험장에 가보면 5060세대는 물론 70대 이상도 많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취업에 유리한 자격증은 무엇일까.
고용노동부는 올해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55세 이상 고령층에선 전기기능사(자격 취득 후 1년 이내 취업률 58.1%), 한식조리기능사(54.3%), 조경기능사(50.3%) 순으로 취업률이 높다고 밝혔다.
또 만 50세 이상~65세 미만 자격 취득자의 취업 성과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공조냉동기계기능사(자격 취득 후 6개월 내 취업률 54.3%), 에너지관리기능사(53.8%), 산림기능사(52.6%), 승강기기능사(51.9%), 전기기능사(49.8%) 등이 단기간 취업이 잘 된다고 안내했다.
연합뉴스제공 (케이시애틀 제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