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신의 선물’로 불렸던 WA 호수, 지금은 잊힌 유령마을의 상징으로

워싱턴주 중부 그랜트카운티의 건조한 평원 한가운데 자리한 ‘솝레이크(Soap Lake)’는 이름부터 이색적이다. ‘비누 호수’라는 뜻을 지닌 이 이름은 단순한 별명이 아니라, 실제로 미끄럽고 유분감 있는 물의 촉감과 수면 위로 이는 하얀 거품에서 비롯됐다. 겉보기엔 평범한 염호처럼 보이지만, 이 호수는 과학과 신비, 자연과 전설이 교차하는 독특한 존재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솝레이크는 수천 년 전 빙하기 동안 발생한 거대한 미줄라 홍수(Missoula Floods)의 여파로 형성된 지형 속에 자리한다. 바닥을 이루는 현무암 지층은 오래전 화산활동의 결과물로, 세월이 흐르며 다양한 광물이 용출되어 호수 속에 녹아들었다. 이러한 지질학적 배경 덕분에 솝레이크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머로믹틱(Meromictic)’ 구조를 가진 호수로 알려져 있다. 이는 상층수와 심층수가 섞이지 않고 층을 이루는 현상으로, 심층수는 산소가 거의 없으며 염도와 점성이 높고, 비소와 황의 농도가 높은 상태로 수천 년간 외부와 단절된 채 남아 있다.

호수에는 23여 종이 넘는 미네랄 성분이 녹아 있으며, 한때 사람들은 솝레이크를 ‘세계 최대의 미네랄 바다’라고 불렀다. 과거 이 지역을 찾은 이들은 “물에 들어가면 미끄러울 정도로 부드럽다”며 “피부가 비단결처럼 매끄러워진다”고 전하기도 했다.

솝레이크의 역사는 단순한 자연유산을 넘어 ‘치유의 호수’로 이어진다. 이 지역 원주민들은 이 호수를 ‘스모키엄(Smokiam)’이라 불렀으며, 이는 ‘치유하는 물’이라는 뜻으로 전해진다. 그들은 영적 정화와 병의 치유를 위해 이곳에 모여 목욕 의식을 치렀고, 서로 적대하던 부족들조차 이곳에서는 휴전과 화해의 의식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20세기 초 백인 정착민들이 이 전통을 이어받으며 솝레이크는 본격적인 휴양지로 발전했다. 1920년대 초에는 10여 개의 스파와 요양시설이 문을 열었고, “신의 선물(God’s Gift to the Sick)”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엽서와 포스터가 곳곳에 걸렸다. 당시 워싱턴주 관광 안내서에는 솝레이크가 ‘워싱턴의 건강 휴양지’로 소개되며, 병을 고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부르거병(Buerger’s Disease)에 시달리던 참전용사들이 이 호수의 물로 회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시 이 병은 치료법이 거의 없어 고통 속에서 손발이 썩어 들어가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솝레이크의 유황수에 몸을 담그자 염증이 가라앉고 상처가 아물었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이러한 사례가 늘어나자 1938년 미 보훈청(VA)은 이곳에 요양병원을 세워 공식적인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1950년대 이후 항생제의 발전과 교통망의 확충으로 요양객이 급감했고, 농업용 관개수의 유입으로 광물 농도가 희석되면서 호수의 수질이 변했다. 이로 인해 한때 번성하던 스파 마을은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다. 2000년대 초에는 영국 BBC 방송이 솝레이크를 ‘유령도시로 변해가는 마을’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지역 사회는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마을에는 예술 지구가 조성되고, 창작가들이 이곳의 신비한 풍경과 전설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솝레이크의 ‘섬뜩함’은 단순한 괴담이나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상층과 하층이 뒤섞이지 않는 물의 구조, 수천 년 동안 빛이 닿지 않은 심층,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미지의 미생물들이 만들어내는 신비감이 사람들에게 알 수 없는 불안과 매혹을 동시에 준다. 물속 깊은 곳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 미지의 공간을 상상하는 순간 솝레이크는 단순한 호수가 아닌 ‘워싱턴주에서 가장 기이한 장소’로 다가온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미세한 거품, 황토색을 띤 물빛, 그리고 고요한 초원의 정적이 어우러진 이곳에서 사람들은 지금도 묘한 감정을 느낀다. 두려움과 평온, 과학과 신비, 생명과 침묵이 공존하는 장소, 그것이 바로 솝레이크의 진정한 얼굴이다.
Copyright@KSEATTL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