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꼭 해봐야 할 워싱턴주의 버킷리스트 10

새벽 안개가 걷히면 푸른 산맥 위로 빙하가 반짝이고, 해질 무렵이면 태평양 바람이 붉은 노을 속으로 스며든다. 미국 북서부에 자리한 워싱턴주는 눈부신 자연과 거친 야생이 공존하는 땅으로, 계절마다 색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곳의 진정한 매력은 단순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담기 어렵다.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협곡 속 급류를 타며, 하늘 위 케이블카를 오를 때 비로소 워싱턴의 진짜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이번 기사는 자연의 경이와 인간의 모험이 만나는 순간들을 중심으로,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가 손꼽는 워싱턴의 10대 체험을 소개한다. 온천과 폭포, 래프팅과 스키, 산과 해변을 잇는 다양한 체험을 통해 워싱턴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살아 있는 자연의 교과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올림픽 국립공원 ‘솔덕 온천’ – 원시림 속 천연 온천의 휴식
워싱턴 서부의 올림픽 국립공원 깊은 숲속에 자리한 솔덕 온천(Sol Duc Hot Springs)은 수백 년 전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천연 온천이다. 세 개의 온수풀과 한 개의 냉수풀로 구성된 이곳은 광물질이 풍부한 유황 온천수로, 근육 피로 해소와 피부 진정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변에는 삼나무와 전나무가 울창하게 뻗어 있어, 온천욕을 하며 새소리와 폭포 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다. 인근 숙박시설인 솔덕 온천 리조트는 봄부터 가을까지 운영되며, 겨울에는 접근이 제한된다.

스포캔 ‘리버프런트 스카이라이드’ – 도시 위를 나는 케이블카
워싱턴 동부의 대표 도시 스포캔은 거대한 폭포가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독특한 풍경으로 유명하다. 1974년 세계박람회를 기념해 만들어진 리버프런트 스카이라이드(Riverfront SkyRide)는 이 도시의 상징이다.
곤돌라 형태의 케이블카가 모로 스트리트 브리지(Monroe Street Bridge) 아래를 지나며 스포캔 폭포 위를 천천히 횡단한다. 봄철 눈 녹은 물로 수량이 불어난 폭포가 만들어내는 물보라와 도시의 고풍스러운 벽돌 건물이 어우러지며,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저녁에는 야간 조명이 켜져 로맨틱한 데이트 명소로도 손꼽힌다.

화이트 셀먼 리버 래프팅 – 협곡을 가르는 격류의 스릴
마운트 애덤스 남쪽, 콜럼비아 강 북쪽에 자리한 화이트 셀먼 강(White Salmon River)은 워싱턴 최고의 급류 래프팅 코스로 꼽힌다. 화산암 지형이 만든 깊은 협곡 속을 따라 평균 3~4등급의 파도가 이어지며, 후숨 폭포(Husum Falls)는 10피트 높이의 낙차로 유명하다.
3대째 래프팅 회사를 운영하는 졸러(Zoller) 가족은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코스를 제공한다. 여름철에는 물살이 세고, 가을에는 수온이 낮지만 수량이 안정돼 풍경 감상이 더 좋다. 강 주변의 침엽수림과 흑암 절벽은 워싱턴의 야생미를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롱비치 모닥불 캠프 – 파도와 불빛이 어우러진 해변의 밤
태평양을 마주한 롱비치(Long Beach)는 ‘끝없는 모래사장’으로 불린다. 길이 28마일에 달하는 해안선은 워싱턴주에서 차량 주행이 가능한 드문 해변 중 하나다. 해질 무렵, 허가된 구역에서 모닥불을 피우면 붉은 불빛이 바다 위로 일렁이며 이색적인 장관을 연출한다.
연중 대부분 비가 잦은 이 지역에서는 따뜻한 불빛이 여름의 아쉬움을 대신한다. 주변에는 소금사막처럼 펼쳐진 해변 도로와 작은 상점, 카이트 페스티벌로 유명한 다운타운 거리가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도 인기가 높다.

시애틀 푸젯사운드 항해 – 물 위에서 만나는 ‘바다의 도시’
시애틀은 육지가 아닌 바다 위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도시다. 푸젯사운드(Puget Sound)를 따라 브레머턴, 배숀, 킹스턴 등지를 잇는 워싱턴 주립 페리(Washington State Ferries)는 주민들의 일상 교통수단이자 여행자들의 대표 체험 코스다.
여기에 더해 소형 요트, 세일링 투어, 패들보드, 수상택시 등 다양한 해상 이동 수단이 운영된다. 맑은 날,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올림픽 산맥의 실루엣과 도시 스카이라인은 압도적이다. 여름철에는 고속 페리 루트가 확장되며, 현지인들은 이를 ‘가장 저렴한 크루즈 여행’이라 부른다.

올림픽 해안 로프 트레일 – 바위 절벽을 오르는 모험
올림픽 국립공원 해안 트레일은 ‘태평양을 가장 가까이에서 걷는 길’로 불린다. 하지만 단순한 산책로는 아니다. 해안의 절벽 지형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밧줄과 케이블 사다리가 설치돼 있으며, 일부 구간은 썰물 때만 통과할 수 있다. 해변에는 표류목과 해초가 뒤섞여 있고, 해달·바다사자·갈매기 등이 자주 목격된다.
날씨와 조수 간만의 차를 미리 확인해야 안전하게 탐방할 수 있다. 로프 트레일 구간은 원시적이지만, 태평양의 격렬한 파도와 고요한 해변의 극적인 대비가 여행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마자마 하츠 패스 – 워싱턴 최고 고도의 절벽도로
하츠 패스(Harts Pass)는 북부 캐스케이드 산맥을 가로지르는 가장 높은 차량 통행로로, 해발 약 2,000m(7,000피트)에 달한다. 메소밸리(Methow Valley) 북쪽의 마자마(Mazama)에서 출발해 9마일 가량 비포장도로를 달리면 도착할 수 있다. 한 차량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폭에다 난간조차 없어 ‘워싱턴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로 불린다.
그러나 정상에 오르면 슬레이트 피크(Slate Peak)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으며, 캐나다 국경까지 이어지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의 마지막 구간을 내려다볼 수 있다. 여름과 초가을에만 개방되며, 차량 대신 자전거와 하이킹으로 도전하는 이들도 많다.

메소밸리 크로스컨트리 스키 – 평원의 눈길을 달리다
겨울의 메소밸리(Methow Valley)는 ‘조용한 스키의 성지’로 변한다. 120마일에 달하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트레일 네트워크는 북미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완만한 지형 위로 눈 덮인 농장과 마을, 숲이 이어지며, 초보자 코스부터 전문가용 장거리 코스까지 잘 정비돼 있다.
스노머신이 만들어주는 평탄한 설질 덕분에 속도감보다는 자연과의 조화가 중심이 된다. 겨울철 평균 기온은 낮지만 맑은 날이 많아, 눈과 햇살이 어우러진 고요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스노퀄미 패스 터널 라이딩 – 어둠 속의 철도길을 달리다
과거 워싱턴 전역을 연결하던 철로는 이제 레저 트레일로 새롭게 태어났다. 팔루스 투 캐스케이드 주립공원 트레일(Palouse to Cascades State Park Trail)은 총 250마일에 이르는 장대한 루트로, 그중 스노퀄미 패스(Snoqualmie Pass)를 통과하는 두 마일짜리 터널 구간이 특히 유명하다.
1910년대에 폭파 공법으로 뚫은 이 터널은 내부가 완전히 어두워 손전등 없이 들어갈 수 없다. 여름철에는 가족 단위 사이클러들이 즐겨 찾으며, 내부 온도가 일정해 더위를 피하기에도 좋다. 어둠 속을 달리다 끝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마주하는 순간, 마치 다른 세상에 도착한 듯한 묘한 감동이 밀려온다.
레이니어산 ‘알타 비스타 트레일’ – 눈과 하늘이 맞닿은 천상의 전망
워싱턴의 상징 레이니어산(Mount Rainier)은 사계절 내내 장엄한 설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중 파라다이스(Paradise) 지역에 위치한 알타 비스타(Alta Vista) 트레일은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왕복 1.5마일 코스다. 대부분 포장된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가면, 만년설을 이고 선 레이니어산 전경과 남쪽의 타투시 산맥(Tatoosh Range)이 한눈에 펼쳐진다. 여름에는 야생화가 만개해 하얀 눈과 대비를 이루며, 맑은 날에는 캐스케이드 산맥 끝자락까지 조망할 수 있다.
이곳의 일몰은 워싱턴 여행자들이 ‘평생 한 번은 봐야 할 풍경’으로 꼽는다.
워싱턴주는 산과 바다, 숲과 도시가 조화를 이루는 미국 북서부의 축소판이다. 이곳의 명소들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체험의 공간’이다.
뜨거운 온천과 차가운 폭포, 거친 도로와 고요한 해변이 어우러진 풍경은 워싱턴이 단순히 ‘구경거리가 많은 주’가 아니라 ‘살아 있는 자연의 교과서’임을 보여준다. 발로 걷고 손으로 느끼며 이 땅을 경험할 때, 여행은 비로소 하나의 인생으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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