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에 트럼프 각별한 관심…정치적 이득까지 일석이조
2007년부터 꾸준히 "백신이 원인" 근거 없는 주장 되풀이
오바마, 런던 행사서 트럼프에 "진실에 반대하는 폭력" 비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워싱턴DC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2025년 9월 22일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발표하고 있다. (EPA/FRANCIS CHUNG / POOL) 2025.9.24.
자폐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오래 전부터 각별한 관심을 표명해온 사안이며 정치적 이득까지 챙길 수 있는 일석이조 카드라는 분석이 미국 언론매체들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자폐증 관련 발표를 직접 함으로써 자신이 개인적으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미국인들에게 보냈다고 23일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발표를 시작하면서 "나는 자폐증에 관해 항상 매우 강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며 이런 기회를 20년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발표 도중 "나는 7개의 다른 전쟁을 중단시켰다. 나는 수백만명의 생명을 구했다. 나는 많은 일들을 했다. 이번 일(자폐증 관련 발표)은 내가 지금까지 한 어떤 일과 비교해도 중요성이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폐증 진단 증가에 대해 "공중보건 역사상 가장 경각심을 가져야만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임신 여성이 타이레놀을 복용하면 자녀의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부모들에게는 현행 아동 백신 접종 일정을 따르지 말고 접종 사이 간격을 더 띄워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운영하던 사업체 '더 트럼프 오거니제이션'에서 일하던 여자 직원의 아들이 백신을 맞았다가 심한 열이 난 후 "아들을 잃었다"는 사연도 소개했다.
자폐증에 대해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관심을 표명했던 확인 가능한 기록은 적어도 2007년 12월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트럼프는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자폐증은 말한다'(Autism Speaks)라는 자폐증 환자 권리 옹호 단체의 간부들을 초청해 행사를 열면서 지역 일간지 '사우스플로리다 선센티널'과 인터뷰를 했다.
당시 그는 자신이 자랄 때는 자폐증이 문제가 안 됐는데 최근 급격히 늘고 있다면서 자폐증의 원인이 아기들이 한꺼번에 너무 많은 백신을 맞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금 행사에 대한 기자회견에서는 당시 2세 생일이 다가오던 막내아들 배런의 예방접종 일정에 대해 "아주 천천히, (백신) 한 방 맞고 몇 달 기다리고 또 한 방 놓고, 옛날 방식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2008년 3월에는 유명 가수 라이어널 리치가 출연하는 '자폐증은 말한다' 모금 자선음악회의 주최를 맡기도 했다.
당시 이 단체 간부였다가 나와서 2009년에 '자폐증 과학 재단'(ASF)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회장으로 재직 중인 앨리슨 싱어는 NYT에 백신과 자폐증 사이에 연관이 없다는 과학적 결론은 이미 나왔다면서도 당시부터 자폐증의 원인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은 진지했다고 설명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폐증 문제를 언급한 데는 정치적 이유도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힘을 보탠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오래 전부터 백신이 자폐증과 연관이 있다는 주장을 포함한 마하(MAHA·'미국을 다시 건강하게') 운동을 벌여왔다.

트럼프 대통령과 케네디 장관
(워싱턴DC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2025년 9월 22일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HHS) 장관이 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발표하고 있다. (REUTERS/Kevin Lamarque/File Photo) 2025.9.24.
2007년에는 '자폐증은 말한다'의 업무를 맡고 있었고 지금은 ASF의 업무를 하는 로비스트 크레이그 스나이더는 "이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개인적인 것이도 하면서 정치적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스나이더는 "개인적 측면에서 보자면, 그(트럼프)는 매우 오래 전부터 이것이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해왔다"며 설명했다.
이어 "그리고 정치적 측면에서 보자면, 마하 지지자들, 케네디 지지자들은 그(트럼프)를 지지하는 연대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그(트럼프)는 생각하고 있다. 그들(마하 지지자들)은 그(트럼프)가 선거에서 이긴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 공약을 지킨다는 명분도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4년에는 소셜미디어로 자폐증과 백신 사이의 관계를 거론한 데 이어 2015년에는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이 사안을 또 제기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봤다면서 한 어린이가 백신을 맞으러 갔는데 몇 주 후에 열이 났고 지금은 자폐 증상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2017년 초 1차 대통령 임기 개시 직전에 트럼프는 마러라고에서 백신이 자폐증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자폐증 환자 옹호 단체 인사들을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발표로 자폐증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드러낸 데 대해 감격하는 자폐 아동 부모들도 많았다.
그러나 ASF의 싱어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케네디 장관이 자폐증의 원인을 찾아낼 것이고 엄밀한 과학적 기준으로 그렇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22일 발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한탄했다.
그는 발표 내용이 엄밀한 과학은커녕 "과학 축에도 들지 못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 생각과 기분을 얘기했을 뿐 과학적 증거는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케네디 장관
(워싱턴DC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2025년 9월 22일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HHS) 장관이 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발표하고 있다. (REUTERS/Kevin Lamarque/File Photo) 2025.9.24.
한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3일 런던에서 열린 대규모 행사에 참석해 임신 여성의 타이레놀 사용이 자녀의 자폐증과 연관이 있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21일 발표를 "진실에 반대하는 폭력"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1만4천명이 모인 행사에서 무대에 나와 청중의 질의에 답하면서 트럼프의 주장에 근거가 없고 사실이 아닌 것으로 계속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럼프의 발언이 공중보건을 훼손하며 임신한 여성들에게 해를 끼치며 자폐증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불안감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또 자폐증은 정도와 증상이 다양한 스펙트럼이며 자폐증 급증 중 상당히 큰 부분은 이 진단 요건의 확장과 관련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 밖에도 세계 일부 지역에서 권위주의가 득세하고 있으며 이를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이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소셜 미디어 회사들이 수익화를 위해 센세이션이나 분노나 슬픔 등을 활용하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일을 자제해야 할 필요성과, 인공지능(AI) 보편화에 따른 사회안전망 재편의 필요성도 거론했다.
사디크 칸 런던 시장도 이 행사에 참석했으며, 오바마 전 대통령의 공개 질의응답 행사 전에 따로 만나 얘기를 나눴다고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전했다.
연합뉴스제공 (케이시애틀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