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내기 부끄러운 지난 날 얘기
꺼내기 부끄러운 지난 날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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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때 나는 12살부터 직장생활을 했었다.
17~8세 때 서울 중림동에 있는 어느 타이어 재생 공장에서 일을 했었다.
식사는 세 끼를 공장에서 주기 때문에 해결이 되었지만 잠자리가 문제였다.
그런데 방을 하나 얻는다 해도 혼자서는 방세를 감당할 수가 없어
공장에 있는 나 또래의 셋이 방 하나를 같이 쓰기로 하고 생활을 했었다.
그런데 방이 작아 셋이 한꺼번에는 제대로 누울 수가 없었다.
다행으로 공장 근무가 밤낮으로 하기 때문에 셋이 한 번에 자는 일은 한 달에
쉬는 날이 겹치다 보면 하루 이틀 정도였다.
이 날이면 셋이서 자는데
가운데 자는 사람은 반듯하게 자고 양 옆엔 칼잠을 자야 했었다.
그렇게 근 일 년을 살다가 공장이 문을 닫게 되어
우리 셋은 각자 고향으로 헤어져야 할 형편이 되었다.
해서 각자가 쓰던 것들은 챙기고 나니 창문에 설치한 커튼이 문제가 되었다.
이것은 바람막이용으로 창문에다 붙여 둔 것으로
이것을 구입할 때 셋이서 보태어 샀던 것이었다.
그런데 짐을 다 챙기고 일어서려는 순간
그 커튼을 한 친구가 걷어내어 자기 짐을 싸려고 했다.
그 당시는 가방이 비싸서 엄두도 못 내고 보자기에다 싸서 들고 다니던 때 였다.
이걸 본 다른 친구가 하는 말이 그건 우리 셋이서 공동으로 산 것이니
셋이서 나누어야 한다고 했다. 말이야 맞지.
그런데 그 작은 커튼을 세 등분을 하면 더 작아져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 같아
나는 포기한다고 했는데 다른 둘이서 옥신각신 하더니 결국 칼로 2등분을 하려고 하였다.
이때 내가 하는 말이 그렇게 자르면 아무도 못쓰게 되니 한 사람이 양보를 하지 하였다.
그런데 그 둘 다 양보를 하지 않겠다고 하여 나도 가만히 보니 이거
못쓰고 버릴망정 나도 양보할 수는 없다고 해서 결국 셋으로 잘랐다.
그리고 나니 너무 작아 보자기로도 쓸 수가 없었는데 그 걸 그래도 각자의 것이라고
하면서 주머니에 넣고 우린 헤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었음을 느끼고 부끄러울 뿐이다.
이렇게 삶이 어렵다고 그 살아가는 방식까지 이렇게 아무렇게나 살아온 나의 지난 날
정말 이제야 생각하면 억이 차고 매가 찬다.
이제 나의 여생의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참회하면서 한 시간이라도
사람답게 살다가 떠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꺼냈다.
영양가 없는 글로 인해 미안합니다.
자유게시판을 자서전게시판으로 만드는 클라스.
결코 허물이 될 수 없는
어린시절의 추억을 부끄럽다 말하는 건
생불의 자질일까?
일구이언, 거짓말은 절대 하지 않으니 활불이라 해야 하나?
5.18은 빨갱이들의 폭동이라 말하고
세상의 암적인 야쿠자를
상도의를 지켜주는 좋은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니
등신불이라 불러야 할 것 같기도.
나부터야, 증말 등신 육갑 꼴갑 한다 이놈은 며칠 안보인다 햇더니 나타나 역쉬나
할짓 읍스문 이빨에 똥이나 빼고 대끌질을 해도 혀야재 똥먹고 체한 댓글질 ㅋㅋㅋㅋㅋ
이일로 사람들의 사귐은 같이 있을 땐 그렇게 살갑게 굴던 사람도
헤어질 때는 언제 봤느냐는 식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있다.
이래서 진실하지 못한 사람에게 진실로 대하면
나중엔 가슴 아픈 일이 생긴다는 걸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