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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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에세이
에세이
작성자
rainrain
작성일
2019-06-20 10:56
조회
626

   친우에게


 


낮을 끌고 바람이 간다


머리에 이고 앉은 하늘로 물에 푼 푸른색이 떠 다니고


연못에 흩어진 낙옆은


세상을 버린 부유물처럼 어지럽게 고요하다 


 


 


문득 발소리에 잿빛 두루미가 날아오르고


물속으로 코가 보이는 수달은 빼꼼한  표정으로


삶의 거리를 재고 있다


 


 


언제인가


빈 나무를 찍어대던 딱따구리의 소리가


내 머릿 속을 흔들어 댄 텅빈 소리로 돌아오고


나는 빈 소리를 따라 빈 시선을 물 위로 두고있다


 


 


 


 


난 얼마나 늙어 있는 것인가


나이를 먹으며 현명해 지는 사람들은


현명해 진 만큼 말이 순해지고, 표정이 인자해진다


전혀


순해 지지않는 말투와 아직도 세상이 더러운 내 얼굴의 인상은


다만 늙어갈뿐, 현명해 지지 않았음이 맞는 것같다


 


 


늙어가면서


사소한 것에 대해


눈을 주고 시간을 주려 하는 것은


산다는 이유로


여태껏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드는 때문이다


 


어느 들풀 하나 소홀하게 피지 않는다


잠시 눈을 돌린틈, 길게 자란 풀 끝에 조그만, 조그마하다 할 수도 없을


만큼 작은 꽃을 단다


눈을 주는 순간, 꼭 같은 꽃은 작고 작은 모양들로 여기도 숨어있고


저기도 숨어있다


그 많은 색깔의 이름으로도 딱히 색을 지칭할 수 없는 색으로 작게 피어있다.


이렇게 60년을 피고 지고 했을..


 


나는 이제사 핀 꽃을 본다


 


현명하지 못한 늙음은


오히려 내게 미안함으로 시간을 내어주고 게으름 같은 느린 걸음을


준다


 


 


나들이로 다니는 산책


현명하게 나이 들지 못한 미안함에도


나무 속에서 숲을 이룬 당연한 이름에도


개미도 되지 못하고, 베짱이도 차마 못되는


걸음으로


다만 미안함으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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