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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향

작성자
노천명
작성일
2007-02-03 22:41
조회
2407
skin/SuP_literature_f1/images/30.jpg노천명노천명(1911-1957)





언제든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조밥이 맛있는 내 고향으로.



아이들 하눌타리 따는 길머리엔



학림사 가는 달구지가 조을며 지나가고



대낮에 여우가 우는 산골



등잔 밑에서



딸에게 편지 쓰는 어머니도 있었다.



둥글레 산에 올라 무릇을 캐고



접중화 싱아 뻐꾹새 장구채 범부채



마주재 기룩이 도라지 체니 곰방대



곰취 참두릅 홋잎나물을



뜯는 소녀들은 말끝마다 꽈 소리를 찾고



개암쌀을 까며 소녀들은



금방망이 은방망이 놓고 간 도깨비 얘기를 즐겼다.



목사가 없는 교회당



회당지기 전도사가 강도상을 치며



설교하는 산골이 문득 그리워



아프리카에서 온 반마(斑馬)처럼



향수가 잠기는 날이 있다.



언제든 가리



나중엔 고향 가 살다 죽으리.



메밀꽃이 하아얗게 피는 곳



나뭇짐에 함박꽃을 꺾어오던 총각들



서울 구경이 원이더니



차를 타보지 못한 채 마을을 지키겠네



꿈이면 보는 낯익은 동리



우거진 덤불에서



찔레순을 꺾다 나면 꿈이었다.











노천명(1911 ~ 1957)



황해도 장연 출생

1934년 이화여전 졸업. 재학중(1932) 신동아에 "밤의 찬미"를 발표하며 등단. 모윤숙과 함께 당시로서는 몇 안되는 여류 시인의 한 사람이었고 점차 명시인으로 부각받게 된다.







그의 시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자기 중심적인 정서 특히 고독에 대한 심도있는 표현. 둘째, 시인 자신의 농촌 생활로부터 그려낸 향토적인 정경의 객관적 묘사. 셋째, 역사적 국가적 인식의 반영이 바로 그것이다.



"사슴", "자화상"같은 그의 대다수 걸작에서 자유분방한 정서의 면모를 첫번째 특징의 본보기로 종종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창조성은 고독이나 슬픔의 단순한 표현에 머무르지 않고 그러한 감정 표현을 통하여 더욱 더 심오한 자신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 우수적인 시인은 실존론적 뿐만 아니라 본체론적 의미도 묘사하였다.



농촌생활에서 나온 그의 시는 주목할만하다. 전통 문화와 민속에서 알권낸 이러한 작품은 대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린 시절의 향수를 결합하고 있다. 오랫동안 중학교 교과서에 게재된 "장날"은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이다. 시인은 시를 통하여 어려웠던 농촌 시절을 노래하고 있다. 그의 나이 또래 한국인들은 대부분 전원 생활을 겪었기에 그가 그려내는 세계는 친숙할 뿐만 아니라 공감하기에도 쉽다. 지금도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향수는 널리 호감을 사고 있다.



세번째 특징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는 판이하지만 일제 말 그의 활동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면이다. 그는 친일 신문인 매일신보 기자로 일하였다. 또 공식적인 일본 대표단 자격으로 일본군 점령하에 있던 중국 동북지방을 여행하였다. 더우기 일본의 점령을 찬양하고 적극적인 지지를 표방하는 수많은 친일 시를 출간하였다. 해방 이후 매국노로 낙인찍혔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서울에 머무르던 그는 조선문학예술동맹에 참여하였다. 후에 체포되어 이적죄로 20년 형을 선고 받았으나 여러 시인들의 노력으로 6개월 후 풀려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험은 그의 생애와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후기 작품에서 발견되는 역사적, 국가적 인식은 이러한 경험과 밀접히 관련된 것이고 다소 인위적인 경향이 보인다. 이러한 시는 그가 생존해 있을 때 발표되었고 이전의 작품과는 상당한 거리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일본에 협조하게 된 경위와 감옥 생활을 시로 썼다. 또 공산주의자와 함께 이적죄로 체포되었고 옥중 생활을 하였으므로 반공, 애국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시집 : "산호림" (1938), "창변" (1945), "별을 쳐다보며" (1953), "사슴의 노래" (1958)













작품해설



오늘은 우리 현대시사에서 드물게 여성시인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노천명의 시를 한 편 볼까요? 노천명은 흔히 고독, 향수, 사슴의 시인으로 불립니다. 이 시에도 그의 특징이 잘 드러날까요?



'망향'은 노천명이 1940년 <인문평론> 6월호에 발표한 시입니다. 가끔 '고향'이라는 제목으로 표기된 경우도 있는데 '망향'이 처음 발표한 때의 정확한 제목입니다. 1945년에 시집 "창변"을 낼 때에 이 시를 조금 개작했더군요. 그래서 판본마다 구절 구절들이 조금 다르고, 제목도 혼동되어 표기되기도 했습니다.



1940년이면 흔히 말하는 일제 암흑기에 해당합니다. 1940년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폐간되고, 일제 말기 우리 잡지의 양 날개를 이루고 있던 <문장>이 1941년 폐간됩니다. <문장>과 다른 하나의 날개였던 <인문평론>은 <국민문학>으로 바뀝니다. 곧 <국민문학>은 한국어 반 일본어 반의 친일잡지가 됩니다. 우리 말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자 모든 언어의 저장물이자 기록물이며 정신의 유산인 문학 행위는 거의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런 까닭인지 1930년대 말경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주제는 '고향 탐색' 혹은 '망향, 실향 의식'입니다. 언뜻 떠올려도 이 시대는 전원을 그리는 시들이 많이 나왔음을 알 수 있지요. 신석정의 [그 먼나라를 알으십니까](1939)나, '왜 사냐건 웃지요'라는 구절로 유명해진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1934)도 이 때 나옵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1941)도 실은 고향과 유년의 기억에 관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석, 오장환, 이용악, 정지용의 시들도 대부분 고향을 그리거나 귀향 의식을 보이거나 실향 의식을 드러낸 것들입니다. 1930년대 말기의 시대정신은 결국 '귀향 의식' '망향 의식'의 테두리 내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고향이 그리울까요. 쉽게 가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공간적으로 멀리 있어서, 물리적으로 차단되어 있어서, 심리적으로 갈 수 없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시간적인 격리가 존재론적인 격리가 되어버려서입니다.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는 농촌에서 도시로 온 경우 같은 것이지요. 대처에 공부하러, 돈벌러 온 경우, 학업을 다 마치고, 혹은 돈을 많이 벌어서야 가겠다는 결의가 고향행을 머뭇거리게 하지요. 혹은 정치적인 제약 때문에 갈 수 없는 경우도 있지요.



유배자들이나 망명자들이 이에 속하지요. 북한을 떠나 온 실향민들이나 탈북자들이 그렇겠지요. 고향과 인간이 물리적으로 차단되는 경우는 근대화의 한 풍경 속에 고향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산업화나 개발로 인해 혹은 댐 건설로 인해 우리는 고향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일제시대 현진건의 <고향>이나 70년대 황석영의 <객지>가 보여주었던 세계지요.



대학을 가기 위해 겨우 벽촌을 탈출할 수 있었던 자들, 대학 교육을 받고 도시 생활과 모던한 삶에 익숙해진 이 신분상승을 하려는 찰나에 있는 인텔리들에게는, 자기 탯줄을 끊은 고향은 가난하고 볼품없던 자신의 흔적이어서 지극한 부끄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그럴 경우 심리적으로 고향은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씻어버리고 싶은 자신의 흔적이기도 하지요. 그것들로부터 고민하고 갈등하는 내면은 이청준의 <눈길>에도 나타나 있지요.



그런데 무엇보다 우리를 정말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은 시간에 의해 부식당해 버린 고향입니다. 이 경우는 좀 실존적인 문제가 개입됩니다. 과거는 이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고향은 과거의 흔적이나 추억의 형태로만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성인들에게는, 동심과 순수를 간직했던 자신의 유년 시절은 영원히 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현재 훼손상태에 있는 자신의 실존으로는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세계이지요.



인간에게 유년의 고향은 영원히 갈 수 없는 과거의 것, 혹은 도달할 수 없는 것이며 동경의 형식으로만 존재한다는 낭만주의자들의 고향도 비슷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고향 상실'의 항목 한 두 개는 해당될 것 같습니다. '고향 의식'은 인간에게는 보편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고향의식'은 '상실의식'이자 '망향의식'이며 동시에 '귀향의식'입니다.



그런데 노천명이 이 시를 발표한 시기의 '고향 의식'은 그 시대가 '일제 암흑기'라는 데 좀 더 심각한 의미가 있습니다. 고향은 무엇인가 본질적인 것, 근원적인 것, 모태적인 것을 이릅니다. '실향' 혹은 '망향'은 그 순수 본질을 훼손당했다는 의미를 포함하지요. 이 시대 '실향 의식'은 '국권 상실 의식'을 대체해 놓은 것이라는 평자들이 많습니다. '시대적 의미'가 이 망향 의식에 배여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이유로 당시 망향, 고향, 실향의 주제들은 독자들에게 아주 짙고 깊숙한 페이소스를 지닙니다. 당시 독자들에게 고향의 주제들은 어떤 강렬한 실감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고향의식은 당대의 이 같은 시대정신을 담고 있었던 거지요.



그리고 노천명의 이 시에도 상실의식이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노천명의 고향은 황해도 장연(NK사이트에 장연군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있군요)입니다.



노천명은 주로 서울에서 성장했습니다. 진명보통학교와 진명여고보,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하였고 <조선중앙일보>, <매일신보>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조선일보 출판국에서 책상 하나를 마주 두고 이은상, 정현웅, 노자영 등과 함께 근무하던 시절의 사진도 남아 있습니다. '여성 기자'라는 닉네임이 늘 따라다니던 시절 노천명은 당대의 최고 엘리트 여성이었습니다.



그런 시인이 고향을 읊습니다. 이 화려한 도시 신여성에게 시골 장연이 뭐 그리 대수겠습니까. 그런데도 고졸하고 소박한 고향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시에는 자연과 하나 된 인간이 있습니다. 장연은 목화꽃과 메밀꽃이 이 참 고운가 봅니다. 장연의 특용작물로 목화꽃이 유명하다는군요. 둥굴레 산에 아무렇게나 피어있을 야생화 이름을 시인이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이 참 정겹지요? 무릇, 활나물 장구채 범부채 같은 이름을 한 번 읊조려 보십시오. 1945년에 펴낸 시집 "창변"에는, 여기에, '접중화, 싱아, 뻐꾹채, 마주재, 기록이, 도라지, 체니곰방대, 곰취, 참두릅, 개두룹' 같은 것들을 더 추가해놓고 있습니다.



우리 야생화와 나무들의 이름은 지금은 낯선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얼마나 정겨운 것이었겠습니까? 자연은 인간을 품고 있기도 하지만 인간은 그 스스로 풍경을 만들기도 합니다. 옹기종기 모여 나물을 뜯는 소녀들의 풍경은 얼마나 또 아름다운지요? 그 습속으로부터 너무나 완벽하게 멀리 떨어져 있는 저로서는 조금 실감이 덜하기도 합니다만.



이런 풍경들 사이로 아련하게 떠 오르는 기억들이 있습니다. 달구지가 느릿느릿 영원의 시간을 통과해 가는 듯 학림사를 향해 지나갑니다. 졸음에 겨워 하는 소의 발걸음이 보이는 듯 합니다. 도무지 바쁜 것이라곤 없는 평화로운 풍경입니다. 학림사는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한 유명한 사찰입니다. 6.25때 불 타 대부분 소실되고 현재는 5층 석탑과 사적비만 남아있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노천명이 살던 시대에는 유명한 명승지여서 불심을 간직한 사람들이 현세의 복을 빌러 갔겠지요. 소가 달구지를 끄는 풍경은 흔한 것인데도, 좀 아련하면서도 환상적으로 느껴집니다.



노천명의 기억 속의 풍경이기 때문이지요. "창변"에는 그 다음 대목으로 '대낮에 잔내비가 우는 산골'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환상적인 측면이 더 강해졌지요. 거기에 이 지방 특유의 습속들이 그려집니다. 소녀들이 나물을 따면서 '꽈' 소리를 찾는 것은 장연의 특이한 풍속인 것 같습니다. 개암쌀을 까먹으며 소년들은 도깨비 이야기를 합니다. 너무나 작은 마을 교회여서 목사가 없습니다. 전도사가 목사를 대신해 강도상을 치며 열변하는 모습이 참 재미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나뭇짐에 함박꽃을 꺾어 지게를 장식할 줄도 아는 멋쟁이 총각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서울 구경이 소원이지만, 차 한번 타지 못한 채 마을을 지키며 늙어갑니다. 고향이란 무릇 정지된 시간, 끊어진 필름의 한 조각처럼 순간으로만 존재하지요. 그러기에 고향은 거기 그 시간에 그대로 정지해 있는 것이지요. 기억 속의 고향은 변화나 발전을 거부합니다. 변화 무쌍한 고향을 향수로 반추해 내는 경우는 없지요.



노천명이 이 시에서 그리고 있는 고향은 순수하고 소박한 듯 하지만 사실은 모던하고 이국적입니다. 신여성이 '고향'과 '전통'을 말한다는 것이 참 특색이었던 것이지요. '아라비아서 온 반마처럼 향수에 잠긴다'는 표현을 주목해 보십시오. '반마'는 얼룩말을 가르킵니다. '아라비아, 반마'라는 말에서 이국적인 풍취가 납니다. 일제시대 경성에서 해주는 그렇게 먼 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해주에서 장연까지의 길도 가까운 길이었지요.



그러나 시인은 고향을 먼 이국의 그것처럼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멀고 먼 이국이어서 갈 수 없는 곳, 그러기에 고향은 꿈에서나 보는 황홀경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거진 덤불에서 찔레순을 꺾다 나면 꿈이었다'고 마지막에 쓰고 있지요. 언제든 돌아가리, 돌아가서 죽으리, 죽어서 그 곳에 묻히리 라는 시인의 내면이 참 절절하지만 꼭 불가능할 것 같은 비극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1930년대 시인들에게 고향은 물리적인 공간적인 거리로서가 아니라 심리적인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도달하기 불가한 것. 그러기에 고향의식은 상실의식으로 바로 전이되었습니다. 이 같은 상실 의식은 일제 말기의 민족적 시련과 쉽게 동화되어 시인들에게 내면화 됩니다. 이는 이 시대 시인들에게 고향을 읊는 것이 왜 문제적인가 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왜 우리말로 된 이 시들이 암흑기를 통과해 나가면서 우리의 귀중한 정신적 유산이 되는가를 말해줍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말은 하나의 정신적 풍경을 이루고 있고 그 속에서 혼과 생명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저 수많은 야생화, 토종 초목들의 이름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 속에서 공통체적인 삶을 더불어 나누는 사람들, 소년, 소녀들, 총각들, 회당지기 목사의 친근한 얼굴을 보십시오. 그리고 끈끈이 이어지는 습속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일제시대 우리말로 된 문학은 그 자체로 정신적 유산입니다. 모든 우리말로 된 매체가 사라지고 난 뒤 작가들이 느꼈던 정신적 황폐감이 이를 반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이 시를 읽고 심미적 체험과 아련한 향수와 감동에 젖게 됩니다. 60여년 전의 그 곳 고향 사람들과 혹은 그들의 조상들과 우리와는 단단한 끈이 이어져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지요.



고향! 언제든 돌아가리, 돌아가서 죽으리, 죽어서 그 곳에 묻히리. 그러나 노천명은 결코 고향 장연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6.25가 났습니다. 그 사이에 노천명의 부역과 수형생활, 그리고 분단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놓여있지요. 1957년 6월 16일, 그는 겨우 마흔 다섯의 나이로 혼자 쓸쓸하게 삶을 마감합니다.



출처: '문학속의 사투리 (이은주 글), 박해수문학서재(K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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