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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 시

케이시애틀 연재 에세이 시리즈:

38살, 박사 유학을 떠나다 | 될 때까지 하는 영어 회화 도전기 | 미운 오리 문과생 치과 의사 되다

나는 미국 고등학교 교사 (완결) | 시애틀로 간 백미와 현미 (완결) | 나의 첫 포틀랜드 (완결)

악몽은 그저 꿈이야 깨면 그만이라고 - 졸업 후 첫 직장에서 겪은 악몽 같은 기억

에세이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1-22 01:47
조회
50

미운 오리 문과생 치과 의사 되다 (13화)

 

집으로 돌아왔다. 리쿠르터에게 전화를 다시 받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화로 연봉 협상을 해야했다. 가슴 떨리게 긴장하며 여러 번 옥신각신을 거듭했다.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라 그런 건지, 외국인 신분이라 그런 건지, 결국은 저자세로 지고 들어가야만 했다. 그냥 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현실에 무릎을 꿇고, 이사를 위해 간단히 짐을 쌓다. 남편을 남겨두고 집을 떠나는 날은 등 뒤에 자석 같은 것이 붙어 있는 것처럼 앞으로 가고 있는데도 자꾸만 뒤꼭지가 뒤로 댕겨지는 듯했다. 울지 않았다. 서글펐지만.

당분간, 베이커스 필드의 거처는 치대 동기였던 같은 반 친구인 귀엽고 예쁜 아이의 집인, 아파트 거실이었다. 방이 하나였지만, 제법 거실 공간이 널찍해서 등을 좀 비빌 수 있었다. 그 친구는 베이커스 필드에 사는 멋진 남자를 소개팅으로 만나,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내가 베이커스 필드로 부담 없이 쉽게 마음을 열고 올 수 있었던 이유도 이 친구가 먼저 발을 디뎠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의 아파트에서 거의 한 달가량을 지냈고, 집세를 보태려 했지만, 한사코 받지 않았다. 선물로 작은 목걸이를 선물했는데, 아직도 나는 그 친구에게 빚을 진 느낌이라 항상 미안하고 고맙다. 지금도 그 친구가 항상 잘 되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막상 일을 시작하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제일 좋았던 것은 이제 더 이상 나는 학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영주권 노예든, 소똥 내를 맡고 살아가든, 이제 내쪽에서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앞으로 몇 년간은 일 걱정 없는 직장인이 된 것이다. 살아온 길 돌아보니 한국에서 방황하는 동안에도, 잠깐 일할 때에도 공부를 손에 놓은 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공부라는 것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매일매일이 꿈만 같아 실제로 을 꼬집어 본적이 많았다. 24시간 내내 공부의 중압감으로 지치는 삶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드디어 그놈의 공부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미국의 치과의사 면허, 이 얇은 종이 쪼가리 하나가 나를 공부에서 해방시켜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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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에 오면 난 자유였다. ‘나 혼자 산다’의 ‘기안 84’처럼, 어떤 날은 직장인의 자유와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하려고 일할 때 입었던 옷을 갈아 입지도, 씻지도 않은 채, 저녁을 대강 해치우고, 잠이 올 때까지 작은 거실 소파와 합체하고는 TV를 시청하다 스르르 이 든다. 아침에는 어제 입은 옷 그대로 잠에서 깬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얼떨결에 새벽에 깼을 때는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몇 초 동안, 나의 정신을 주워 담아야 했다. ‘여긴 어디지?’, ‘오늘 무슨 수업이지?’, ‘오늘 며칠이지?’, 순식간에 제정신이 차려지면,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무질서의 세계. 어제 먹다 남은 음식들로 금방 파리 알을 까도 이상하지 않을 부엌스크럽 일복이 그대로 입혀져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벌써 몸속으로 들어갔을 것 같은 몸뚱이번진 화장 개기름으로 얼룩진 못난이 얼굴을 마주하게 되지만, 이내 환호성을 질러본다. “오늘 학교는 없어! 학교는 이제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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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졸업한 지 이제 햇수로 10년이지만, 거의 8년 이상을 학교로 다시 가는 꿈을 꿨다. 군대 제대한 친구들이 군대 보일러실에 갇혀있다든지, 재입대의 악몽을 꾼다는데, 이건 같은 맥락의 악몽이다. 항상 꿈속에서 나는 시험 준비가 안된 상태이거나, 시험을 봐야 하는데 교실을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다든가, 혹은 낙제점을 받아서 유급을 코앞에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저분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는다.

사실, 이런 악몽의 기원은 따로 있었다. 악몽이 현실이 될 뻔했던.




2학년 때, 우리 모두를 괴롭게 했던 과목은 병리학이었다. 몇몇의 치대생들이 병리학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유급을 당하면 1년이 아니라 2년 후에 복학을 하게 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이런 이유로 병리학 시간에는 모두 진지하게 강의에 임한다. 담당 교수님은 깐깐하기로 소문난 여자분이셨고, 감염에 관하여 포문을 여실 때는, 당신의 아이를 키울 때, 단 한 번도 기저귀 발진으로 아이를 고생시킨 적이 없다며 자신의 완벽한 위생에 대하여 대단히 자랑을 하셨다. 때론 친절하시고, 열정이 넘치시며,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가차 없으셨다. 특히 지각하는 학생이나 조는 학생들이 있으면 우리를 애들 취급하시면서 수업 중간에도 여러 명의 동기생들이 언짢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교수님의 성향 때문에 동기생들은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아마, 두 번째 학기 중간고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학기는 자잘한 과목들이 너무 많아 시험공부할 시간 빠듯했다. 병리학 시험 화요일 아침 8시, 월요일 시험 네 개나 잡혀 있는 데다가 마지막 시험이 5시에 끝났다. 이 말은 병리학 막바지 시험공부를 월요일 밤 밖에 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일요일 내내, 월요일에 잡힌 네 개의 시험에 모든 시간을 할애했기에 겁이 조금 나기 시작했다. 월요일 저녁이 되자, 시험의 긴장과 더불어 체력이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병리학은 이 세상의 모든 감염과 그에 따르는 질병의 원인, 증상, 치료까지 체계적으로 외워야 하는 과목이었기에 이 병이 저 병 같고, 저 병이 이 병 같아, 완벽하게 외우지 못하면 젠가 블록(건물처럼 쌓아 올리는 보드게임)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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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xels image




월요일 저녁부터 잠은 다 잤다고 생각하며, 공부에 매진했다. 냉면그릇에 커피를 부어 마시고 잠을 쫓았지만, 새벽 2시 반이 되자, 커피도 소용이 없었다. 나의 성향상, 잠을 깊이 못 자고, 특히나 불편한 자세로는 오래 자 봤자 30분이 고작인 걸 알았기에, 어차피 금세 일어날 바에야 조금이라도 몸을 누이자 싶어 일부러 불편한 자세로 침대에 엎드린 채로 잠깐 눈을 붙였다. 너무 많이 잤나 싶어, 다시 공부하기 위해 힘겹게 눈을 떴다.

창문 틈으로 이 새어 들어왔다. 소리를 지르며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7시 40분! 아악!

이대로 시험을 보러 간다면, 나는 자동으로 낙제점이었다. 아이처럼 엉엉 울면서, 미친 사람처럼 집 안을 뱅글뱅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웬만해서 소리 내서 울지 않는 내가 아침부터 정신 병자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보고, 뭔가 큰 일임을 감지한 남편이 걱정스럽게 일어났다. 남편이 무슨 일인지 물어보기도 전에,

“자기야, 나 어떡해!! 병리학 공부하다가 잠들어서 이제 일어났어! 이대로 가면 나 패스 못해! 어떡하지? 어떡하지?”

발은 바닥에 동동 거렸고, 내 두 손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살려 달라는 것처럼 손을 비벼대고 있었다. 다급한 목소리는  엉엉 우는 울음소리와 섞여 무슨 말인지 나 자신도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철석같이 알아들었다.

 

“아프다고 하자! 내가 가서 교수님한테 말할게.”

“그러면 될까?”

어차피, 이대로 가면 낙제일 테고, 아프다고 하면 어떤 다른 방법이 있을까 싶어, 시험 봐야 할 나 대신 남편을 보냈다. 유독 아침에 입냄새가 심한 남편은 양치도 하지 않은 채, 머리에 새 집을 가득 얹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와 잠옷 바지 차림으로맨발에 쪼리를 신고 학교로 향했다. 동기생들은 평소와 른 행색의 남편을 알아보고, “형, 무슨 일이에요? 누나는요?”, “언니는요?” 그들도 무슨 일이 났구나를 감지했다. 그는 거짐 노숙자의 상태를 하고, 병리학 교수님을 마주했다. 입냄새를 폴폴 풍기며, 나의 상태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어젯밤부터 내가 아프다며...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질 못했다며...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뜨겁지만, 공부를 제대로 못해서 시험을 못 보겠다는 말은 죽어도 못하겠더라. 깐깐한 교수님은,

“괜찮아요. 몇몇 다른 학생들도 이미 다른 날 시험 보기로 했어요. 그때 같이 보면 되겠네. 가서 잘 돌봐줘요.”

너무 쉽게 대답하셨다. 남편은 희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나는 사형수가 사형 집행으로 끌려가는 날, 이대로 죽을 수 없어 죽음 앞에 발버둥을 치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남편의 말을 듣고, 갑자기 바닥에 쓰러졌다. 그날 나는 그대로 아팠다. 과거에 한 번도 시험 날짜를 옮겨 본 경험이 없고, 내 편의대로 시험을 절대로 옮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럴 만도 했다. 다행히 조정된 시험 날짜에 다른 동기생들과 함께 무사히 시험을 보고 문제없이 통과했다.

내 생애 최악의 날이었다가 다시 살아난 날이기도 하기도 하지만, 그때 이후로 시험 보는 날이 항상 꿈에 나온다.

악몽을 꾼 아침,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대도 신난다. 이제는 그저 일하러 가면 그만이었다.




을 시작하고 몇 개월이 안되었을 때, 나는 본부로부터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집에서 3시간 떨어진 곳으로 혼자 이사를 왔는데, 다시 1시간가량을 아침저녁으로 운전해서 출퇴근해야 하는 곳으로 발령이 났다. 그 동네 이름은 Delano(딜레이노). 매일 아침저녁으로 운전하는 게 그렇게도 싫었을까숙소에서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다가 더 먼 곳으로 가게 되니 일을 더 하는 느낌이 들어 교통비를 청구하고 싶은 생각이 목까지 차 올랐다. 하지만, 꿀꺽 삼켜 버렸다.

매일 목구멍이 답답한 느낌으로 출근했던 Delano. 이곳도 Bakerfield와 마찬가지로 농업과 목축업이 주를 이루는 동네였다. 운전을 하다 보면, 수확한 과일을 보관해 놓을 수 있는 거대한 창고와 우유를 생산하는 공장도 보인다. 신기했던 것은 솜사탕 맛이 나는 청포도가 이 동네에서 난다는 것이었다. 2001년 David Cain이라는 학자가 개발한 솜사탕 청포도(Cotton Candy Grapes)는 세계 유일무이 이 동네에서만 생산된다. 몸값이 비싸신지 멀리 수출도 잘 안되고, 캘리포니아 지역의 집값이 비싼 동네 마트에서 청포도 시즌에만 아주 잠깐 볼 수 있었다. 처음, 이 포도를 먹어보고 깜짝 놀랐다. 입 안에서 톡 터지는 청포도 알. 그 안에서 나오는 과즙이 혀를 휘감으니 정확히 솜사탕맛이 났다. 솜사탕맛이 나는 청포도라니. 여름만 되면, 병원 조무사들이 이 귀하신 포도님을 몇 팩씩 가져온다. 자기 남자 친구가 청포도 농장에서 일하는데 박스채 집으로 들고 온다며. 나는 그저 원 없이 먹어 주었다. Delano도 시골이라 그런지 인정이 넘친다. 그렇다고 병원 치료비로 포도를 가져오진 않는다. 시애틀에 사는 지금도 가끔 여름만 되면 그 포도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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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친구들 만나러 북가주 대형 유기농 마트에 갔더니 코튼캔디 청포도가 뙇! 간만에 한봉 했슴돠!



새로 발령된 이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몇몇 잊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그새 친해진 조무사가 Delano 매니저가 악명 높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샌디(가명). 하지만, 겪어봐야 아는 거라 생각하고 개의치 않았다. 그렇다 해도 최대한 몸을 낮춰가며, 눈에 튀지 않으려고 닥터로서의 지성과 품위를 지켜가며 조심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은 스케줄대로 진료를 하면서 환자 부모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귀로 빨려 드는 쇳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렸다.

“Dr. Oh! Do you know what to do as a doctor?”

(“오 선생님! 의사가 해야 하는 일을 잘 알고는 있습니까?”)

'저게 뭔 소리야?'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엄청난 거구의 그 매니저였다. 평소와 같은 사이즈였지만, 그날은 왜 그렇게 더 거대해 보였는지. 그녀는 왼손을 허리에 얹고 오른손에 종이차트를 까딱 까닥하며 전형적인 백인의 고압적인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끓어오르는 당황스러움과 짜증을 삭히며 말했다.

“I am with a patient now. Let me finish this first.”

(지금 환자와 대면 중입니다. 먼저 이걸 끝내게 해 주시죠.)

최대한 정중하지만, 카리스마 있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하지만, 기분 나쁘다는 약간의 뉘앙스를 그 두 마디에 다 실으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여전히 턱을 쳐들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세상에 저게 무슨 똥매너지? 환자 진료를 보고 있는 중에, 쪽지도 아니고, 귓속말도 아니고 멀리서 큰소리로 신임 닥터의 이름을 부르며, “너 맘에 안 들어, 똑바로 안 할래?” 라며 제대로 쪽을 준 것이다. 난 무방비 상태로 한방 먹은 것이었다. 솜사탕 청포도만큼 맛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최대한 감정을 감추고 진료를 마쳤다. ‘도대체 내가 무얼 잘못한 거지?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기선제압이란 건가?’ 신참내기 닥터를 물로 보고 자기의 위치를 알려주려는 일종의 퍼포먼스인가 싶기도 하고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들었다.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침을 꿀꺽 삼키고, 시비를 건 매니저에게로 갔다.

그녀는 다시 한번,

“Are you confident about what you are doing?”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있기는 합니까?”)

여전히 무례한 말투였다.

점점 쪼그라드는 심장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일의 앞 뒤를 들어보니,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차트를 기록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었다. 별것 아니었다. 병원이 워낙 크다 보니 환자들이 지정 닥터에게 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어느 환자가 어느 닥터에게 갈지 모르고, 닥터들의 의견이 조금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차트에 몇 개의 가능한 치료를 함께 써놓은 것이 그녀의 눈에 거슬린 것이었다. 여러 개를 쓰지 말고 하나만 써달라는 게 그녀의 주문이었다. 이 문제를 내게 알리려고 온갖 자기의 화를 북돋워가면서 병원 복도에서 모든 스탭과 환자들이 다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나를 창피하게 한 것이다.

부아가 치밀었다. 본부로 당장 전화를 했다. 샌디의 만행을 다 고자질하고는 아무리 매니저라도 예의를 지켜야 되는 것 아니냐며, 최대한 이성적으로 고발했다. 그리고 신께도 나의 억울함을 기도로 성토했다. 나의 복수를 하늘에 맡기며. 힘없는 자의 소심한 복수법이긴 했지만, 그게 나에게 가장 최선이다.

그다음 날, 어제의 감정이 사그라들지도 않은 채, 전쟁터 같은 일터로 다시 출근을 했다. 쌩판 모르는 덩치 큰 백인에게 별것 아닌 것에 꼬투리가 잡혀 조금이라도 주눅 들었던 나의 모습에 화가 나고, 자괴감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하는 도중, 어제와 비슷한 시끄러운 샌디의 목소리가 온 병원에 울려 퍼졌다. 또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난 것이 분명했다. 샌디가 환자 부모와 신경전이 벌어진 것이었다. 결국 육탄전까지 가게 되었는데, 샌디보다 더 덩치가 큰, 거인 같은 체구의 총든 경찰까지 출동한 것이었다. 무례한 매니저를 환자 부모가 경찰에게 고발한 것이었다. 왠지 어젯밤, 내 복수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 같아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도의 응답이 이렇게나 빨리 되다니.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벌어진 일이라 조금 통쾌하긴 했지만, 그것보다도 그녀는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두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손지검을 날리는 천하무적의 그녀였던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샌디는 좀 잠잠해지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 샌디는 다른 병원으로 발령이 났고, 그녀의 계속적인 폭언과 폭행에 가까운 일들이 반복되면서, 말로만 듣던 해고를 당했다. 그 소식을 듣고는 사실 미안하지만, 그간의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을 느꼈다. 사실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지만, 그녀가 나의 눈에서 사라져 버리다니. 어차피 이렇게 된 김에, 해고라는 사건으로 폭력적인 그녀가 조금 나아지길 바랬다. 결과가 그렇게만 된다면 그녀를 포함해서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닐까. 폭력적인 사람도 자기 자신이 행복하진 않을 테니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샌디는 나에게 페북 친구 신청을 해왔다. 그때 그 사건은 이미 오래전 일이었고, 또 그다지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친구 신청을 받았다. 가끔 올라오는 그녀의 포스팅은 성스럽고 행복해 보였다. 기독교 신자가 되어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자신의 성품을 잘 다듬어 나가고 있는 듯이 보였다.



aR4CV1FJ6k5ZIbnMOGTJyurMHEo.JPG출처: 구글 이미지



예전의 그녀와의 기억은 악몽이라고 넘겨 버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녀의 이름과 포스팅을 볼 때면, 잠깐 소스라치게 놀란다예전의 기억이 함께 떠올라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가 보다. 사실, 그녀 덕에 나는 미국 사회의 정글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더 잘 배운 것 같다. 미국 사회에 첫 발을 디뎠을 때, 그녀의 무개념 매너에 한방 맞아서인지, 그 이후 웬만한 사람이나 사건에 가슴이 쉽사리 들썩거리지 않는다. 다행히.

괜찮다. 지나간 악몽 같은 일들은 그저 꿈이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꿈은 깨면 그만이고, 악몽보다는 현실이 조금 더 낫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은가.


 

이 글은 브런치 작가 시애틀 닥터오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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