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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 시

케이시애틀 연재 에세이 시리즈:

38살, 박사 유학을 떠나다 | 될 때까지 하는 영어 회화 도전기 | 미운 오리 문과생 치과 의사 되다

나는 미국 고등학교 교사 (완결) | 시애틀로 간 백미와 현미 (완결) | 나의 첫 포틀랜드 (완결)

미국 병원에서 느낀 문화 충격들

에세이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1-19 00:24
조회
160

될 때까지 하는 영어 회화 도전기 (5)

 

주중에는 토니를 따라다니며 회진 및 참관을 하며 시간을 보내었다. 병동 회진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모든 병실이 개별 화장실이 있는 일인실로 각 방이 모두 넓고 통창이 있어서 상당히 쾌적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병실이 다인실로 구성되어 있고 간병인이나 보호자가 있으면 두 환자의 침대 사이 좁은 공간에 누워서 잠을 청해야만 한다. 서로 다른 여러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한 병실에 뒤섞여 있는 가운데서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한다. 커튼을 친 좁은 공간에서 창밖을 보지 못하거나, 하루 종일 소리가 나는 기계장치, 각기 다른 채혈, 검사, 드레싱 등을 하는 환자들과 같이 지내면서 화장실 또한 함께 써야 한다. 나는 사실 미국에 오기 전까지는 그러한 병실 환경을 불가피한 것으로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더 나은 치료 환경이 제공 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나자 질병에 대한 치료뿐 만이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고 케어하는 관점이 더 중요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토니가 회진을 돌고 나서는 예약된 환자가 있으니 외래 진료를 같이 가자고 하였다. 60대 여성인 환자 분은 이전에 한 검사 결과를 들으러 온 듯하였다. 토니는 진료를 보기 전 환자 분에게 나를 먼저 소개해주었다. 한국에서 자신에게 교육을 받으러 온 의과대학 학생이라고 소개를 하자 환자 분은 반가운 듯이 관심을 보이며 나에게 직접 질문을 건네었다. 이 부분도 많이 당황스러웠는데, 한국에서는 바쁜 진료 와중에 학생들을 환자분들에게 굳이 소개하는 일도 없을뿐더러 설령 소개를 받는다 한들 환자분이 학생들한테 말을 거는 일은 더욱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후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료가 진행되면서 토니는 검사 결과를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고, 환자분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그렇게 총 진료시간이 20분 가까이 진행이 되었는데, 나는 아마도 이렇게 오랫동안 진료를 보는 것이 보편적인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간에 쫓기지 않고 편안하게 진료를 진행한다는 점이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내과에서는 매일 점심마다 컨퍼런스가 열리고 있었다. 강당 앞에는 식사가 가로로 길게 뷔페식으로 꾸며져 있었고 먹고 싶은 음식을 자유롭게 담은 후 식사를 하면서 컨퍼런스에 참석을 하면 되었다. 빵, 고기, 샐러드 등으로 구성된 음식의 종류가 다양했을뿐더러 음료수도 세네 가지가 구비되어있었고, 후식으로 나온 초콜릿마저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뷔페식으로 다양한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것은 병원 카페테리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는 점심식사를 할 때 정해준 음식을 먹어야만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예를 들어 짜장밥, 계란국, 요구르트, 김치가 있는 메뉴 1과 흰쌀밥, 제육볶음, 된장국, 깍두기가 있는 메뉴 2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메뉴 1 또는 2의 선택지만 있을 뿐, 짜장밥과 제육볶음의 조합을 선택하여 먹을 수는 없었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과 양자택일만을 해야 하는 상황이 평범한 일상에서도 매일같이 반복된다면 사고의 유연성에서 차이가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토니는 병원뿐 아니라 의과대학 강의실 수업까지 나를 데려가 참관을 시켜 주었다. 나는 여기서도 두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하였다. 첫 번째로는 강의실 밖에서 학생들이 여기저기 누워서 휴식을 취하거나 책을 보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강의실 앞에 누워있는 것은 상당히 물의를 일으킬 수도 있는 행동이다. 교수님이나 선배님들이 본다면 아주 예의가 없는 학생으로 낙인이 찍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두 번째로는 학생 강의를 모두 녹화하였는데 수업에 나오지 못하는 학생들이 자습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한국과는 다르게 출석 체크를 따로 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학생들은 80% 이상이 꾸준히 나와서 수업을 듣는다고 하였다. 정말 이곳에서는 매 순간 개개인의 선택과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교수님들과 학생들 사이의 신뢰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시 영어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막상 실습 기간 동안 영어로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하는 말은 알아듣는 것조차 힘들었고, 같이 실습 조원이었던 학생은 회진이 끝나면 본인의 개인 일정을 하러 갔기 때문에 그렇게 친해질 수가 없었다. 점심 컨퍼런스도 유익한 내용이었을 테지만 대부분은 잘 못 알아 들어서, 그냥 매일같이 맛있는 점심을 먹는데 의의를 두었다. 어쨌든 내 초점은 의학보다는 영어에 좀 더 있었기 때문에, 난 뭔가 방법이 필요했다. 실습이 끝나고 숙소에 오면 딱히 만날 사람도 없었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방안에 있는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곤 하였는데 다른 채널들은 어려워서 스트레스만 받았고, 그나마 Nickelodeon이라는 어린이 전문 방송 채널이 비교적 볼만 했다. 만화 영화인 스펀지 밥조차 너무 빨라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화면이 함께 나오니 지루하지가 않아 영상 매체로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공부를 이어가기 위해 Nickeodeon에서 눈여겨보던 스펀지밥과 iCarly라는 프로그램의 DVD를 구입하였다.

 

주말에는 실습도 안 하고 아는 사람도 없으니 정말 영어를 연습할 곳이 없었다. 피츠버그에서 만났던 택시기사님처럼 차분히 대화를 나눠줄 상대가 없어 참으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모국어처럼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부모님이나 친구 또는 연인 같은 존재가 꼭 필요한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없으니 멀리 돌아다지는 못하고 주변 산책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도중 재미있는 것을 한 가지 발견하였다. 내가 무언가를 찾으면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어김없이 지나가던 사람이 와서 'What are you looking for?'라고 물으며 말을 걸어주곤 하였다. 나는 이전까지 찾다라는 의미는 find라고 외우고 있었다. '무엇을 찾고 있니?'라는 생각을 떠올렸을 때 저 문장을 떠올리지 못하였다. 하지만 같은 상황이 몇 차례 반복되자 자연스럽게 상황에 맞는 단어 선택이 가능해졌다. 한국말로 번역해서 외우는 것이 일상생활표현에서는 혼란을 가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음 주부터는 길에 돌아다니며 'Excuse me. I'm looking for a grocery store.'라고 먼저 말을 걸기 시작하였다. 반복적으로 저 표현을 실제 상황에서 사용하고 나자 찾다와 find의 무의식적 연결이 끊어지고 자연스럽게 상황에 맞는 영어 표현을 먼저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다. 한 가지 성과가 있었다면 토니가 시킨 영어발표를 잘 마무리하였다는 것이다. 미리 챙겨간 파워 내과를 참고하여 PPT로 만들어 발표를 하였는데, 토니는 학생이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개념까지 정리를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대본을 외워서 한 발표였지만, 한국에서 영어 발표를 못해서 부끄러웠던 기억을 떠올리니 미국 교수님한테 칭찬을 받은 것에 나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이 에세이는 브런치 작가 정신적 자유 연구소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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