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시

케이시애틀 연재 에세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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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 미국에 간 백미와 현미를 볼 날이 있겠지

에세이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1-16 21:29
조회
203

시애틀로 간 백미와 현미 (10화)

 

너희가 있어서 행복했어.

 

백미와 현미가 시애틀로 간 지 5개월이 지나고 있다. 미국에는 가 본 적도 없는데, 시애틀과 가깝고, 개들이 살기 좋다는 포틀랜드가 SNS에 올라오면 괜히 반갑다. 한 달 살기도 한다는데, 나도 언젠가, 개들이 나이 들어 힘이 빠지거나 나를 잊기 전에 백미와 현미를 보러 가고 싶다. 5-6년 안에는 갈 수 있을까? 개들의 시간을 생각하면 2-3년 안에는 가는 게 좋을까?

 

개들이 우리 집에 있던 5개월 동안, 그리고 집 안에서 같이 냈던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재밌는 일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 기억들도 희미해지고 있다. 매일매일 얘깃거리가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 떠올리면 그 모두가 통으로 기억되어 하나의 이미지로만 남아 있다. 따뜻하고, 정신없고, 왁자지껄한 느낌인데 너무나 그립다. 그때는 힘들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견딜만하기도 했고, 재밌는 일도 많았는데, 기록은 잘해 놓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하루하루 일기만 썼어도 좋았을 텐데, 앞선 일들을 다 정리해서 써야 그때의 상태도 적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즐거우면서도 불안하기도 했던 나날들이었던 것 같다. 과연 미국에서 임보처를 찾을 수 있을까, 이동 봉사해 주신다는 분을 생각보다 빨리 만날 수 있었는데, 그분이 출국하실 때 개들이 시애틀에 임보처가 정해진 상태여야 출국을 할 수 있었다. 이동 봉사자 분도 처음 해 보시는 일이고, 우리도 처음 해 보는 일이라서 뭘 준비해야 하는지, 뭘 더 알아야 할지 마음을 놓지 못하는 채로 시간을 오래 보냈다. 다행히 현미 임보처가 정해진 다음에는 백미 임보처가 정해지지 않아 가기 이틀 전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하루도 마음 편히 출국 날을 기다릴 수 없었던 것이다. 내심 백미가 남으면 복슬복슬한 백미랑 작고 야무진 보리랑 한동안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 반 걱정 반인 예상도 해 봤고, 약간의 분리불안이 우려되는 현미가 혹여라도 혼자 가게 되면 가는 동안 너무 괴롭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사실은 그게 제일 큰 걱정이었는데, 지금도 서로 이웃에서 잘 지낸다고 하니 백미와 현미가 시애틀에 입양을 가게 된 모든 과정은 여러모로 운이 무척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백미와 현미와 지내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 중에 이런 것도 있었다. 집 근처에 반려견 셀프 목욕탕이 괜찮다고 해서 백미 현미를 데리고 다녀왔다. 처음엔 백미와 현미만 데리고 다녀왔는데, 생각보다 잘하길래 다음에 보리까지 데리고 다 같이 다녀왔다. 원래는 보리까지 씻기려는 계획이었는데, 곧이어 다른 손님들이 들어왔다. 진돗개 한 마리와 우리 부모님 정도의 나이 드신 부부였는데, 밖에 한 마리가 더 기다리고 있었다. 두 분이 한 마리를 같이 씻겨야 해서 한 마리를 데리고 들어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었다. 개들은 백미와 현미 정도 크기였는데, 진돗개처럼 생겼고, 목욕을 좋아하진 않는 것 같았다.(목욕을 좋아하는 개가 얼마나 되겠는가) 아저씨가 싫어서 뒷걸음질 치는 개를 마구 윽박질러서 욕조에 넣고 비치되어 있는 (철로 된) 줄까지 채운 모양이었다. 두 분이서 북작북작 씻기고, 또 다른 아이를 데려와서 씻기는 동안 다 씻은 개는 밖에 묶여 있었는데,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흙을 밟으니 다시 더러워져있었다. 여하간 쇠 줄이 욕조에 부딪히는 소리 때문에 우리도 정신이 혼미했고, 어찌어찌 개들을 달래 가며 씻기고 먼저 나서려는데 여성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처음엔 제대로 못 알아들었는데, 잘 듣고 보니 육지에 다니러 오는 동안 개들에게 밥이라도 챙겨줄 수 있냐고 하시는 거였다. 개들을 집 안에서 키우시는지, 정말 밥만 주고 오면 된다는 것인지, 산책을 시켜주길 바라시는지 궁금증이 많아졌지만 거기서 자세히 물어보고 있을 수가 없어 일단 알았다고 하고 연락처만 받아서 왔는데 백미 현미가 가고 나서 연락이 왔다. 두 분이 같이 육지에 가야 할 일이 있어서 그동안 하루 한번 와서 산책을 시켜주고 밥을 챙겨달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총 세 번을 다녀왔고, 마당에서 지내는 아이들인데, 집을 지키는 경향이 강해서 그런지 주인이 없으면 더 많이 짓고, 동네에 불편을 끼치는 것 같았다. 어미개와 아들 개였는데, 어미개가 낳은 새끼들을 이곳저곳에 보냈는데 그중 한 마리가 너무 못 지내고 있어 데려온 것은 블랙탄 스타일의 수컷이었고, 아직 중성화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진돗개들이 야생성이 많이 남아있는 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중성화도 하지 않았으니 여러모로 연세가 있는 부부가 키우기엔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 훈련도 되어 있지 않아 너무 당겨서 힘들고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시 한번 개들의 교육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는 계기였다.

 

멍빨을 당하는 현미와, 아직은 자기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백미


아마 그분들은 우리가 개 두 마리를 조용히 씻기고 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었다. 믿고 맡길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지. 그만큼 백미와 현미가 순하기도 했다. 분명 낯선 공간에서 목욕을 한다는 것, 그리고 옆에 다른 개도 있다는 것이 긴장할 만한 상황인데도 컨트롤하는데 어려움 없이 목욕을 잘하고 돌아왔고, 개들의 성향 덕분도 있겠지만, 그만큼 개들을 차분하게 잘 보살피고 있다는 뿌듯함도 들었다.

 

백미와 현미는 여러모로 수월한 강아지들이었다. 어릴 때 배를 곯고 힘들긴 했겠지만, 한 살이 되기 전에 다시 데려와서 사회화 시기를 완전히 놓치지 않은 덕분도 있는 것 같다. 마당에 있을 때도 밖을 향해 짖거나 공격성을 보이지 않았고, 사람이나 다른 개들에 대한 경계심도 없었다. 겁은 많고 예민한 편이었지만, 그만큼 조심성이 있었다. 사람들이 막연하게 '큰 개'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도 하는데, 현미와 백미의 경우에는 보리보다 덩치가 크고 흔히 나누는 중형견, 대형견의 분류에서 애매하게 가운데쯤이라고 할 수 있는데도 내가 본 더 작은 개들보다도 훨씬 순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백미와 현미가 덩치 때문에 사납고 무서운 개라는 편견의 대상이 된다면 무척 억울할 것 같다. 내가 앉아 있을 때면 꼭 그 곁에서 무릎을 베고 눕고 싶어 하던 애교 많은 강아지들. 엄살이 있었지만 주사 맞을 때는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도 모르던 아이들, 두툼한 몸을 어떻게 주물러도 가만히 있던 아이들. 찹쌀떡처럼 늘어나던 볼이 그립다. 늘어진 인절미처럼 저마다 러그에 누워있던 모습이 그립다.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겠지 내 강아지들.

 

그 겨울 늘 함께 했던


 

이 에세이는 배우 서기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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