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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 백미와 현미 출국하다

에세이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1-15 15:26
조회
195

시애틀로 간 백미와 현미 (9화)

 

개들과 지지고 볶고 지내면서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 쏜살 같이 지나갔다. 그 사이 백미 현미는 접종도 다 마치고, 해외 입양에 필요한 검사도 하고, 운동장에 가서 다른 강아지 친구들도 만나고, 카페에 가서 시간도 보내며 하루하루 알차게 보냈다. 밤에는 늘 집에서 제일 작은 방에 다 같이 모여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세 마리 강아지 산책을 하는 것도 어느새 익숙해져서 처음에는 한 마리씩 따로 하느라 시간이 배 이상 걸렸는데, 점점 세 마리 함께 하는 산책도 익숙해지면서 한 번 나가서 더 긴 시간을 보내며 개들한테도 좀 더 충만한 시간이 되는 것 같았다. 처음 셋을 한꺼번에 데리고 나간 산책은 엉망진창이었다. 다 같이 저마다의 방향으로 당겨대는 통해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고, 내가 한 명, 용이가 두 명을 데리고 산책을 하면 앞서 나가는 팀을 서로 따라잡으려고 하는 바람에 뒤에 따라가는 팀은 거의 끌려가는 모양이 되었다. 그래서 방법을 찾은 것이 사람 1, 개 1 팀과 사람 1, 개 2팀이 따로 흩어져 산책을 한 후 다시 모이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면 어느 정도 산책을 하고 난 개들이 조금 진정이 되고 처음보다는 좀 더 차분한 상태가 되었다. 주로 바닷가에서 산책을 했는데, 세 마리가 함께 있는 상태에서 한 마리씩만 풀어주면 멀리 가지도 않았기 때문에 바닷가에 사람이 없을 때는 한 마리씩 풀어주기도 했다. 그러면 혼자 주변을 조금 뛰다가 곧 돌아와서는 형제를 곁을 맴돌았다. 신나게 뛰는 모습을 보는 것도 정말 행복했다. 강아지들이 있던 계절이 추운 계절이어서 이른 아침엔 바닷가에 사람이 없는 것도 다행이었다. 그리고 더운 날씨였다면 개들이 뛰다가 힘들어서 물로 뛰어들기도 했을 텐데, 날이 추워서 아무도 물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바닷가에서 한참을 놀아도 아무도 물에 젖지 않고, 목욕을 안 해도 되다니 그것도 행복했다. 아이들과 지냈던 마지막 한 달을 생각하면 행복한 바닷가 산책과 작은 옷방에 옹기종기 모여 겨울밤을 보냈던 것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 정신없고, 피곤하기도 했지만 행복한 계절이었다. 

 

개들과 집에서 함께 지내기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샌프란스시코로 갈지, 시애틀로 갈지도 확실하지 않았고, 캐나다로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이동 봉사자가 먼저 구해졌다. 백미와 현미는 시애틀로 갈 수 있는 티켓이 생겼다. 인스타그램을 관심 있게 봐주시던 미국에 사는 팔로워께서 샌프란시스코의 한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주셨는데, 그분이 올린 게시글을 통해 공유가 된 것인지 시애틀의 커뮤니티에서 게시글을 보시고 연락을 주신 것이다. 생전 모르던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연락을 받다니 그것도 새롭고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고마운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연락하신 분이 출국을 하시는 건 아니었고 장모님이 이동봉사를 하는 것이어서, 연락하신 분도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았는데, 내가 모든 걸 충분히 대답해 드리지를 못 했다. 나도 정확히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미국에서 임보처가 정해져야 출국을 할 수 있었는데, 정해져야 할 건 그 한 가지 ‘임보처’뿐이었지만 그게 정해져야만 모든 일이 진행될 수 있었다. 모든 게 확실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제주에서, 한국에서 임보처도, 입양처도 찾을 수 없어 미국으로 가는데, 미국에서도 임보처가 정해져야 갈 수 있다. 시애틀의 인구는 70만 정도고 제주도 인구도 그와 비슷한데, 그래도 미국이니까, 현미와 백미처럼 큰 강아지도 가족으로 받아들일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강아지 운동장에서 만난 포틀랜드 사람, 그리고 시애틀에 살고 있는 이동 봉사자님의 사위가 했던 두 가지 말이 머릿속에서 왔다 갔다 했다. 포틀랜드에서 온 사람은 시애틀에서 가까운 그곳이 강아지들이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시애틀에 살고 있으면서 이동봉사를 위해 연락을 해 주신 분은 시애틀에도 버려지는 강아지들이 많다고 했다. 어디든 사람 사는 건 비슷하구나. 그래도, 백미와 현미는 좋은 가족을 만날 수 있겠지? 미국에 있는 단체도 찾아봤는데, 임보처에서 적응하며 강아지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시간을 갖고, 잘 맞는 가족에게 매칭을 해 준다고 했다. 임보처에 있는 동안과 입양이 된 다음에도 계속 모니터링을 할 수 있다고 했으니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믿는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불확실한 나날들이었지만, 이동 봉사자가 있다는 것은 큰 산을 하나 넘은 것과 같았고, 날짜는 한 달 정도 남은 3월 4일. 그때쯤이면 봄의 초록빛이 돋아나고 있을 것이었다.  

    

기다리는 나날들 

 

하루하루 열심히 지내면서도 앞을 알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3월 4일에 갈 수도 있었고, 갈 수 없기도 했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갈 테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지내게 될지도 몰랐고, 그러다 갑자기 서둘러 준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득문득 아쉽고 겁이 나기도 했다. 임보처 소식은 아직이었지만 그래도 날자에 맞춰 출국 서류도 준비하고, 병원에 가서 필요한 검사도 하며 바쁘게 지냈다. 제주에서 김포로 갈 비행기표도 예매했다. 임보처는 아직이었지만 강아지들 표도 예매했다. 출국일 10일 전에 현미 임보처가 정해졌다. 한겨울이었지만,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직 백미 임보처는 미정이었다. 새로운 걱정이 생겼다. 현미가 혼자 가게 되면 어쩌지? 현미는 약간의 분리불안이 있는 것 같았다. 혼자 남겨져 본 적은 없지만, 우리가 보리만 데리고 외출해서 백미와 둘이 남게 되면 끙끙거리고 앓는 소리를 내며 어필했다. 혼자 잘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긴 비행이 힘들더라도 둘이 함께 가면 서로 의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행기 안에서 서로 냄새라도 확인하고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혼자 간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내심 백미가 남아서 얼마간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져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가, 현미를 혼자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마음이 왔다 갔다 했지만 내 마음이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출국 전날까지 임보처가 정해지면 떠날 수 있다고 했는데, 출국 이틀 전에 백미의 임보처가 정해졌다. 거의 희망을 갖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볕이 따뜻했던 3월 2일 오전. 마침 백수가 된 첫날 강아지들과 뒹굴거리던 중에 문자를 받고 왠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일모레면 백미와 현미 둘 다 출국이다. 기다리던 소식인데 왜 순간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찰나의 기분이었고, 얼마나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바로 정신이 들었다. 백미와 현미가 함께 출국할 수 있다. 둘이 함께 갈 수 있으니 덜 힘들 것이다. 이제 잘 준비해서 인천까지 무사히 데려다 주기만 하면 된다. 현미 출국은 이미 결정된 것이었는데도, 갑자기 바빠진 것만 같았다. 늦은 밤까지 현미와 백미의 임보처에 보낼 편지를 썼다. 진작 썼어야 했는데 미루고 있었다. 종이에 써 본 편지를 제주 풍경이 담긴 엽서에 옮겨 쓰는데 자리가 부족한 듯했다. 정갈하게 잘 쓰고 싶었는데, 글씨가 오르락내리락했다. 다시 타이핑을 해서 출력을 할까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글씨에 감정이 담겨있겠지 싶어 오르락내리락 엽서를 켄넬 안쪽에 붙였다. 스틱형 간식도 같이 붙이고, 아이들이 좋아하던 공룡 모양, 악어 모양 장난감도 넣어주었다. 간식 한 두 개는 괜찮다고 했는데, 가는 동안 아무 탈도 일어나서는 안 됐기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혹시 춥지 않을까 옷을 입혀주거나 하네스를 해 줘야 하나 고민하다가, 혹시 갑갑해서 물어뜯다가 문제가 생길까 싶어 입혀주지 못하고 달랑 목줄만 해서 보냈다. 지금이었다면 마틴 게일 목줄이라도 해 줬을 텐데, 공항에서 강아지들을 잃어버리는 사고가 나기도 한다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서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현미와 백미가 잘 도착해서 목줄과 하네스까지 단단하게 하고 임보 가족들과 만나 찍은 사진을 보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제주에서 11시에 출발하는 비행기였고, 오전에 보리 산책을 먼저 하고, 백미, 현미와는 공항 가는 길에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시간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비행기 타기 전에 신나게 뛰어놀 수 있어서 좋았다. 백미, 현미는 곧 떠난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둘이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둘 다 켄넬에도 편하게 있고, 차도 잘 타는 편이어서 공항까지는 잘 갔는데, 비행기에 타고 보니 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현미였던 것 같다. 비행기 소음에 놀랐을 것이고, 이륙을 하고 나자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는데, 겁을 먹어서 그랬는지, 안정이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이륙이 조금 지연되는 바람에 도착이 늦어서 일정이 약간 빠듯했지만 그래도 펫 택시 기사님이 노련하신 분이어서 인천 공항 근처 놀이터에서 잠시 쉬었다가 갈 수 있었다. 김포에 내렸을 때 켄넬 안에 넣어준 배변패드가 온통 찢어져 있었지만 강아지들은 컨디션은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인천에 도착해서 켄넬을 열어보니 백미가 응가를 해 놓았었다.      

 

그 상태에서 그걸 치우려고 했던 건지, 그 위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해서 그런지 켄넬 바닥 배변판이 닦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다. 펫 택시 기사님이랑 합동을 최대한 닦았는데 겨울이라 놀이터 수돗가에 물도 나오지 않아서 물티슈만 엄청 쓰고도 그걸 완벽히 닦지 못했다. 비행기 시간까지 여유가 없어서 끝까지 닦지 못했는데, 냄새에 예민한 개가 긴 비행시간 동안 냄새를 맡으며 힘들진 않았을지, 임보처에 도착했을 때 지저분한 켄넬 때문에 한국에서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여겨지진 않을지 내내 신경이 쓰였다. 직접 물어보진 못했지만, 새벽에 전해받은 사진 속 백미와 현미의 모습은 괜찮아 보였고, 임보 집에서도 사랑을 받으며 지냈던 것 같다.


 

이 에세이는 배우 서기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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