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천상병 시선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1-23 23:45
조회
140

 

1.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歸天 - 主日〉 전문

 

찬상병 시인의 시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다. 아마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듯하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소풍 온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경지다. 참으로 깨끗한 마음이다. 소풍 길엔 단지 한 두 끼니 먹을 것, 마실 것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어떤가? 당장 내 주변을 돌아볼 때,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없어서는 안 될, 꼭 가져가고 싶은 그 무엇이 있는지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가서, 이 세상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이 되어야겠다. 그러려면 지금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 겉으로 드러내놓는 삶이 아니라 내 삶의 내면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이 우선이어야 한다. 그러면 내 주변도 아름다워질 것이다.

 

2. “아침은 매우 기분 좋다/ 오늘은 시작되고/ 출발은 이제부터다// 세수를 하고 나면/ 내 할 일을 시작하고/ 나는 책을 더듬는다// 오늘은 복이 있을지어다/ 좋은 하늘에서/ 즐거운 소식이 있기를.”

〈아침〉 전문

 

아침을 맞이하는 마음은 사람들 마음 마음마다 각기 다를 것이다. 기대감으로 가득한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 떨림과 두려움으로 시작하는 사람, 제발 아침이 밝아오지 않길 간절히 기도했을지도 모르는 사람.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은 어제일은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라는 시그널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어둠의 장소로 숨어들지 않는 이상 태양은 그 빛을 모든 이들에게 고루 전해준다. 아무리 힘든 어제를 보냈더라도 새로 시작하는 오늘은 좀 덜 힘든 날이 되길 소망한다. 당신과 나에게.

 

3. “날개를 가지고 싶다./ 어디론지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싶다./ 왜 하느님은 사람에게/ 날개를 안 다셨는지 모르겠다./ 내같이 가난한 놈은/ 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뿐이데/ 나는 어디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 성취다/ 하느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날개〉 전문

 

李箱의 ‘날개’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젠 돈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세상이다. 시인도 결국 그 부족함을 토로한다. ‘가난’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참 묘하게 그리 궁색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낭만적으로 들린다. 여행을 가고 싶단다. 외국의 어느 가난한 작가가 주머닛돈을 털어 신문에 광고를 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크루즈 여행을 하고 싶다. 그 나라 남쪽의 어느 따뜻하고 조용한 섬에도 가보고 싶다고 광고를 냈다. 우연히 어느 크루즈의 선장이 그 광고를 보고 그 작가의 소원을 들어줬다고 한다. 천상병 시인이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대신에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물론 그렇게까지 욕심을 안 낼 분이라는 것이라 짐작한다. 그나저나 시인에게 날개가 달리면 어디를 제일 먼저 가보고 싶으셨을까? 아마 지금은 더욱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여기 훌쩍 저기 훌쩍 다니시고 계시리라.

 

4. “지금은 다 뭣들을 하고 있을까? 지금은 얼마나 출세를 했을까? 지금은 어디를 걷고 있을까? // 점심을 먹고 있을까? 지금은 이사관이 됐을까? 지금은 가로수 밑을 걷고 있을까? // 나는 지금 걷고 있지만, 굶주려서 배에서 무슨 소리가 나지마는 그들은 다 무엇들을 하고 있을까?”

〈同窓〉 전문

 

연말이 다가온다. 각종 모임이 늘어나는 때다. 특히 동창 모임은 예민한 기운이 감도는 모임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사람. “지금 뭐해?” “사업 잘 되고 있지?” 에 그래도 할 말이 있는 사람들이 참석한다. “그런 데로..” “힘들어 죽겠어..”하는 사람들은 아직 죽을 정도는 아니다. 시인을 바라본다. ‘나는 지금 걷고 있지만, 굶주려서 배에서 무슨 소리가 나지마는...’ 이런 생각도 든다. 시인은 지금 걷고 있다. 그러나 걷기는커녕 앉기도 힘들 정도의 깊은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단지 배가 고플 뿐이라면,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에 비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가 가장 비참하고,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은 버리자. 나보다 못한 사람 분명히 있다. 나 정도면 천년만년도 살겠다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그러니 내 삶을 사랑하자. 내게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자. 다행히 시인도 시에 담은 것은 원망이 아니다. 지금 나는 이런데 그 친구들은 잘 되고 있을까? 잘 되고 있겠지 하는 소박한 바람을 담을 뿐이다. 시인은 늘 이런 마음을 잃지 않고 소풍 길을 잘 다녀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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