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끝
작성자
이석주
작성일
2008-03-01 10:38
조회
1454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평생을 종살이 하던 곳에서 해방시켜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광야를 지나게 하십니다. 광야는 여정의 한 지점이지만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곳입니다. 그곳은 만만한 곳이 결코 아닙니다. 사막의 열기와 모래바람과 그리고 물의 부족으로 인하여 고통을 감내하여야만 합니다. 그렇더라고 하나님은 2백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민족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열기를 막아 주실 뿐 아니라 방향판이 되어 인도하시며 밤에는 사막의 찬 기온을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막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령한 음식인 만나로 먹여 주십니다. 심지도 않고 거두지 않고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셔서 모두에게 더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하셨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지극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불타는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단벌 옷이지만 옷도 헤어지지 않게 하시고 신발도 닳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무리중에 탐욕을 가진 사람들은 군중심리를 자극하여 온 이스라엘 사람들로 울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가 아니라 애굽에서 먹었던 고기와 생선과 외와 수박 그리고 부추와 마늘에 대한 애착은 불평과 탄식의 눈물로 변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멸시한 연고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람을 일으켜서 메추라기를 몰아 주시면서 그들의 죄를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큰 재앙으로 치셨기에 그곳을 탐욕의 무덤이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최종 종착지는 하나님나라입니다.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 우리는 광야인 세상에서 순례자의 여정을 지나가야 합니다. 세상은 광야의 온갖 열기와 모래바람과 같이 척박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사막이기에 악한 독을 품고 있는 짐승들에게 상하거나 물릴 위험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게중에는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서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보다 세상의 물질과 명예와 권력에 노예가 되어 버린 사람이 많아 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목적을 두고 있기에 이미 생명력을 잃어 버린 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면 어떠한 난관과 고난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보다 값지고 귀한 것이 없다고 하시지만 많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하나님과 바꿀려고 합니다. 잠깐의 기쁨과 잠깐의 즐거움의 미혹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셔서 우리의 필요를 항시 채워 주셔서 많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하시는 신실하시고 자비가 무궁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렵고 힘들 때에 언제나 하나님의 평강과 은혜와 위로가 차고 넘쳤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눈은 믿을 수 없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영의 밝은 눈을 가져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탐욕은 눈을 멀게 만들고 우리의 몸을 상하여 결국은 병들어 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것을 먹어야 목적지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땅의 것으로 채워지면 썩어 없어집니다. 썩고 쇠하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로 결코 갈 수 없습니다. 탐욕의 끝은 무덤이고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언제 어디서나 족한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