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
작성자
이석주
작성일
2008-01-19 12:27
조회
1207
우리의 삶속에는 어쩌면 즐거움보다는 괴롬이 훨씬 많습니다. 우리는 완전하고 영원한 곳에서 살기 위해서 훈련과 연단을 거듭하기 때문입니다.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부단한 실전을 방불케 하는 힘든 연습을 거듭함으로 우리는 변하여 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벅차기에 도피하고 싶기도 하며 잊을려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형편이 나아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괴로움을 주시기도 합니다. 괴로움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괴로움이 하나님의 초청장이 되는 것입니다. 괴로움이 찾아왔다고 해서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낙담케만 하는 것만이 아니고 괴로움속에서 우리는 분명한 하나님의 목적이 숨어 있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룻기에 나오미가 모압에서 자부인 룻과 베들레헴에 돌아옵니다. 온 성읍에 있는 사람들이 나오미를 보기 위하여 떠들며 이름을 부르자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 합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 성읍을 떠나서 모압으로 이민을 갈 때는 하나님보다는 세상의 물질에 관심을 가졌기에 베들레헴에 어려움이 몰려오자 그들은 베들레헴을 포기하였던 것입니다. 당연히 나오미가 모압에서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망하여 돌아오는 것이 그들에게는 큰 뉴스와 구경거리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나오미는 모든 괴로움이 하나님을 떠나서 온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괴로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이제는 빈털터리가 되어서 하나님을 기억하여 돌아 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나오미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서 여유롭고 풍족한 것을 바라보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불나비와 같이 열심히 세상의 빛을 좇았던 우리입니다. 결국은 불빛에 타서 소멸되어지는 것에 목숨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빛은 우리에게 편리함 이상을 제공하지 못하였습니다. 항상 우리의 삶은 비어있었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삶이란 사이클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이클이 항상 정점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한순간에 정점이라 여겨질 때에 우리는 밑바락으로 추락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픔이 있고 괴로움이 더하는 것은 전능자 하나님으로부터 초청장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마라의 쓴물이 우리의 몸에 괴로움을 주지만 쓴약이 몸에 좋다는 우리의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전능자 하나님 앞으로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식대로 하나님의 방식을 이제부터라도 순종하고 나간다면 그것은 어떠한 것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귀한 것이 됩니다. 괴로움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행운이고 감사인 것입니다. 마라를 경험하지 못하였다면 영원히 하나님과는 만날 수 없었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위기가 오면 오히려 두려워 꼼짝하지 못합니다. 괴로움은 위기일수도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또다시 찾아온 귀한 기회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