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게시판

날을 계수하고 살자

작성자
전윤근
작성일
2008-01-14 13:25
조회
1382


날을 계수하고 살자

시편 90:10-12

전윤근목사www.nujunbi.org




새 해를 맞이하여 필자는 지난 주에 어머님의 장례식을 치루고 또 이번 주에는 지인 중 또 한 분의 추모예배를 예정하고있다.

그리고 올 해 또 몇 번 더 치뤄야 할 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죽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죽음은 결코 유쾌하게 다룰 토픽은 아니다. 그러나 인생을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사람들에는 아주 중요한 시작점이 된다.



모세는 이 점을 깨닫고 이렇게 기록하였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0-12)



이 말씀은 우리의 날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 버리는지 정말 세월이 빠르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그래서 죽음 후에 무덤을 넘어서서  무엇인가가 확실히 있다는 사실을  빨리 깨닫고 계획을 세워야한다는 뜻을 암시해주고있다.



다윗왕도 이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전적으로 동의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시39:4)



솔로몬도 이 지혜를 알고 선언하였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전도서7:2).



첫째: 인간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두 요소



인생의 불확실성과 죽음의 불가피성은 인간 실존의 두가지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보면 인간은 죽음이 다가오기 전에 먼저 죽음이 무엇을 가져다 주며 왜 그런 것인가를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해 두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말 이것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은 인간의  종교적인 신앙의 정도에 관계없이 지상에서의 모든 인간의 부와 명예, 야망과 지위에 종지부를 찍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죽고나면 모든 것이 너무 늦어버리고만다.

부모님들은 자식의 효도를 기다리시지 않고 그냥 때가 되니 가시고만다.        

인간에게는 죽음이 나이, 건강, 소유, 기대에 관계없이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다가오기 때문에 정말 사후에 과연 무엇이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알아야 할 가장 위급한 문제가 남아있다.



로미오와 쥴리엣의 주인공 캐퓰릿은 “죽음이 들판에 향기롭게 만발한 꽃위에 때 없이 찿아온 서리같이 그녀에게 다가왔다”고 절규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사 후의 삶에대하여 정말 긴급한 상황이 남아있다.



둘째: 창조자와 피조물



이 세상 우주는 처음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항상 영존하여서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있는 무한한 능력과 권세를 갖고 계신 누군가에 의하여 명령을 받고 창조되었다.

물론 시작도 끝도 없는 분은 성경의 하나님이시다.

모세는 이것을 깨닫고 담대히 선언하였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시90:1-5)



성경은 크리스챠니티가 이 세상의 다른 종교 즉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중의 하나가 아니라 이와는 달리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독특한 사람임을 차별화 하고있다.

오직 성경의 하나님만이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시다.

성경은 절대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하지 않는다.

오직 그 것이 단순히 사실이라고만 선포할 따름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다윗 왕은 자신을 창조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려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14)



우리는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지만 믿음으로 받아드리도록 요청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을 갖고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신비의 세계가 하나 하나 깨달아지게된다.

그래서 성경에서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은 그것을 이렇게 정리하고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히11:3)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



그래서 누구인가는 이 말씀을 원자 이론의 최초의 성명서라고 불렀다.

그러나 믿는 성도들은 그것이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주어진 사실의 성명서이다.



오직 성경의 창조자 하나님만이 말씀으로 우주를 무에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창1:6)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창1:9)



즉 모든 보이는 창조물은 하나님이 가라사대의 말씀에 순종하여 창조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렇게 창조하신 똑 같은 바로 그 말씀이 앞으로 보이는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이라고 확실하게 예언하고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3:7)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천지를 지으신 말씀의 영존성을 강조하셨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



세째: 영원한 것과 임시적인 것



이 세상은 물질의 세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것처럼 낡아지거나 달아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탄이 하나님을 반역하였기 때문에 그 결과 오는 심판때문에 없어지게된다고 말하고있다.

그리고 성경은 그 뒤에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시작된다고 선언하고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7-13)



성경이 여기서 말하고있는 새 “하늘”은 두 가지 방법으로 사용되고있다.

먼저 지구를 벗어난 물질적인 차원의 모든 우주 공간이 첫번째이고,

그 다음 하나님이 거하시는 비물질적인 세계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아버지의 집”(My Father’s House) 이다.



하나는 눈으로 보이고 또 임시적인 곳이고,

또 하나는 보이지 않고 영원한 곳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보이고 임시적인 우주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물질적인 것도 아니고 보이지도 않는 또 하나의 다른 차원의 존재가있다.

또 달아지지도 않고 시간이 지나면 늙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것이있다.



우리들의 몸은 보이고 그러므로 임시적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영과 혼은 보이지도 않고 또 영원하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땅에서의 짧은 인생과 영원을 비교해볼 때

사람이 땅에서 결정할 수있는 유일한 합리적인 선택은 임시적인 것보다 영원에 더 많은 준비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영원한 것에 더 높은 우선권을 두라고 강조하셨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6:19-20)



땅의 임시적인 보물은 보이는 것으로 구성되어있다.

하늘의 영원한 보물은 지금 우리들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흔히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잘 무시한다.

사람이 죽을 때에는 이 땅에 쌓아두었던 모든 물질을 다 놓고 떠난다.

믿는 성도들의 가장 위대한 소망은 이 땅에서 부를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에서 주님으로부터 영원한 상급과 기업을 받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깨닫고 기록하였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벧전1:4,5)



요한은 주님으로 부터 받은 계시의 말씀을 전해줄 때 하늘의 상급준비를 강조하였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우리가 그와 같은 상급과 기업을 누리기위해 이제 주님이 오시는 날에 먼저 썩을 육신이 영원히 썩지 않을 새로운 신령한 몸으로 바꿔지게 될 것이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15:44)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1-55)



우리가 입게 될 신령한 몸은 보이기도 하고 또 동시에 보이지도 않고

육신적이고 또 신령하고 또 영원하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후5:1-5)



네째: 겉 사람과 속 사람



사도바울은 핍박과 환난중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위로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6-18)



이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임시적이다.

그 어느 것도 영원히 남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영원히 남는 것은 우리들의 보이지 않는 영과 혼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땅에 거하고있는 동안 보이지 않는 영과 혼이 거하고있는 보이는 몸은 임시 집인것을 깨닫고 다음의 영원 세계를 위하여 선택을 하고 계획을 해야한다.



이 세상에 큰 영향을 주고있는 물질주의 자들 즉 레닌이나 또 오늘날 치료상담을 하는 교회에 큰 영향을 주고있는 심리학자 후로이드나 그 추종자들은 이것을 부정하려는 것에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이고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쫓아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영,혼, 육을 지니고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또 먹고 살아야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낸다.

그러나 성경은 말세에는 믿음에서 떠나 다른 가르침을 좇는 것을 예언하고 경고하고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딤전4:1,2)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은 사 후에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부정하고있다.

이것은 에덴 동산에서 사탄이 하와에게 행한 기본적인 거짓을 따라 가르치고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3:4)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원세계의 일에 대하여 이 세상에서 임시로 사용하는 자동차를 고르거나 음식을 사는 일보다 덜 조심하고 또 진지한 관심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세계의 믿음에 대하여 좀 더 심각해져야한다.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워야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3,4)



성경적인 구원은 믿음을 통해서 이루이지며 믿음은 불가피하게 보이지 않는 영원 세계에 더 깊은 의미를 수반하고있다.

그러므로 믿음을 심각하게 받아드리고 있는 성도들은 주님이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심각하게 생각해야한다.

우리들 각자 개인이 머지 않아 보이지 않던 영적 세계의 진리를 눈 앞에 두고 영적인 현실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는 이같은 진리의 확실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제 순식간에 홀연히 주님이 오셔서 우리들을 아버지의 집으로 데리고 갈 영적 현실의 날이 이를것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4:16-18)

  

지금 우리들에게는 이같은 영적 진리의 확실성이 절대로 필요하다.

크리스쳔들에게 이것은 가장 최대의 복스러운 소망이다.

하늘에 있는 아버지의 집이 우리들의 진짜 집이 될 것이다.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는 것이 우리들의 가장 큰 위로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필요한 메세지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과 또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게 될 날 이 점점 더 무르익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 까지는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용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날을 계수하고 앞으로 다가 올 영적 현실의 확실성의 필요성에대한 메세지는 지금 점점 인기가 없기 때문에 전하기가 매우 힘든 말세의 시대에 살고있다.



그러나 전할 때는 지금이고 옳지 못한 동기로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오는 자들이 변질되어 적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일을 막기위한 유일한 메세지이기도하다.



이같이 다가오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한 사람이라도 구출시키는 일은 우리들의 마지막 때의 책임이요 또 동시에 특권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들의 새 해의 기도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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