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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을 찾아서: 살며 사랑하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

Chapter 3. 겨울이 오기 전에

작성자
LaVie
작성일
2022-11-22 12:52
조회
600

 

미국 펜실베니아에 매카트니 목사님은 40년 동안 한 교회에서 매년 연말이 다가 오면  “겨울이 오기 전에” 라는 같은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인생을 되돌아 보게 하는 이 심오한 설교는 이맘때가 되면  여전히 많은 목사님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설교의 본문은 바울이 로마 감옥에 두 번째 투옥되어 머지않아 인생을 마감하게 될 것을 예감하고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쓴다 “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디모데 후서 4:~21)

 

“겨울이 오기 전에 “ 이 문장 뒤에 채워야할 내용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이는 새해에 세웠던 목표를 마무리 짓고 싶을 것이고, 어떤이는 고백하지 못한 말을 꼭 하고 싶을 것이고, 어떤이는 긴 여졍 끝에 고향에 돌아가 쉬고 싶어 할 것이고 또 어떤이는 추워질 겨울을 대비해 월동준비를 할 것이다. 이렇듯 사람마다 수 많은 것들로 마무리짓고 싶은 것들이 남겨져 있다. 그래서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으면 안될 것 같은 분주함이 생긴다.

그리고 나 역시 겨울이 오기전에 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은것 같지만 우선 김장을 할 것이다.

 

 

나는 “겨울이 오기전에 김장을 한다.”

나의 가족은 팔남매를 둔 대 식구였다. 어릴적 기억에 김장철이면 어머니가 목욕통만한 붉은색 고무통에 배추 몇 백포기 이상 김치를 담궜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은 웬만한 집들은 그 정도 김장을 했던 것 같긴 하다.  땅속에 묻어둔 어머니의 김치는 정말 맛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김장을 하지 않았다. 변명을 하자면 맞벌이로 시간의 여유가 없었던 것도 있지만 한국어느 마켓을 가도 팔도 김치를 즉석에서 담궈주고, 홈쇼핑으로 주문을 하면 다음날이면 아이스박스에 담아서 받아 볼 수 있는 편리한 세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담근 김치는 어머니의 맛을 따라 갈 수 가 없어서 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오히려 미국 이민을 와서 마치 김치가 없으면 큰 일 날것 처럼 김치를 담궜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사는게 바쁘고 녹녹치 않다는 핑계로 한국 마트에서 조금씩 사 먹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지금은 코스코에서도 종가집 김치를 팔고 유선생(유트브)이 전국 팔도 김치 뿐만 아니라 명인의 비법까지 가르쳐주니까 이억만리 떨어진 미국 땅에서도 누구나 쉽게 각종 김치를 먹을 수 있는 더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어느날  방송에서 본  노모의 김치가 생각난다. 댐이 생기면서 대부분의 마을이 물에 잠기어 외딴 섬처럼 고립된 곳에서 홀로 집을 지키며 사시는 노모가 김장을 하신다. 겨울이 오기전에 아들을 위해 김치를 담그고 호수가 얼기전에 나룻배를 타고 와야 하는 아들을 기다리는 장면은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울퉁불퉁하게 불거진 손 마디로 담근 김치를 아들에게 건낼 때 자글자글한 주름진 얼굴에 안도하듯 짓는 미소 속에서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아낌없이 주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보면서 과연 내 자녀들은 엄마를 떠 올릴 수 있는 김치 맛이 있을까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십여년만에 겨우 배추 몇 포기를 담궈 딸네에게 갖다 주었다. 너무 맛있다고 한다.  미국식으로 일찌감치 독립한 딸이라 늘 마음에 걸렸는데 입맛에 맞아 다행이고 고마웠다.

김치는 지방마다 특색이 있듯이 집집마다 만드는 비법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나의 엄마가 담궈 주셨던 김치 맛을 기억하며 이제는 한 가정의 주부가 된 딸을 위해 엄마의 레시피로 엄마의 맛을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나는 겨울이 오기전에 김장을 한다.

 

 

  • 글쓴이 LaVie
  • 전 금성출판사 지점장
  • 전 중앙일보 국장
  • 전 원더풀헬스라이프 발행인

 

저작권자 ⓒ LaVie & 케이시애틀.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전체 2

  • 2022-11-22 21:30

    김치 담그는거는 정성이죠. 딸과 사위는 좋겠네요. 오늘도 좋은글 읽고갑니다.


  • 2022-11-27 12:44

    모든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너무 따뜻해졌어요 ^^ 이 사이트 잘 안들어오는데 사장님이 지난번 칼럼이야기 하셔서 와서 읽었는데 너무 좋네요 이런 멋진 글 솜씨를 가지고 계셨다니 감동입니다. 다음 글도 너무 기대되요 또 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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