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이야기의 보물 헌책방

에세이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3-02-14 15:13
조회
292

이야기의 보물 헌책방…신간 '헌책 낙서 수집광'

16년째 헌책방 운영 중인 헌책 수집광 윤성근 씨

저자 윤성근 씨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녔다. 헌책이 좋아 헌책방에서 2년 정도 직원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2007년 서울 은평구에 직접 헌책방을 차렸다. 최근 출간된 에세이 '헌책 낙서 수집광'(이야기장수)의 저자 윤성근 씨 얘기다.

저자는 헌책방을 운영하게 된 이유로 "손님에게 거짓말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꼽는다. 책이 재미없다고 솔직히 말해도 그 책을 사는 손님은 어디선가 나타난다. 옛날에 나온 책이라 해도, 본문이 찢어진 곳이 있어도, 속지에 낙서가 있어도, 전 주인이 이름을 큼지막하게 썼어도 구매자는 나타난다.

오히려 헌책방 고객 중에는 세월의 흔적과 타인의 손때를 좋아하는 이들이 상당하다. 책을 읽은 사람을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문장에 나보다 먼저 밑줄을 그은 사람, 속지에 쓸쓸한 내용의 일기를 남긴 사람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누런 페이지 속에 새겨져 있다.

1978년 출간된 타인최면술(이종택 지음. 흥문도서)

예를 들어, 1978년 흥문도서에서 출간된 '타인 최면술'이라는 책이 있다. 저자가 수집한 이 헌책에는 온갖 최면 기술이 등장한다. "지금 비가 오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최면에 걸린 사람은 허공에 우산을 펼쳐 드는 행동을 한다. 매운 양파를 주면서 "이것은 맛있는 사과입니다"라고 하면 양파를 사과처럼 맛있게 베어먹는다. 책은 이것을 '기묘한 후최면성 암시'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책에는 흥미로운 낙서가 있다. 본문 귀퉁이에 빨간색 볼펜으로 지운 듯한 글씨가 있는데, "김○○ 부장, 너는 내가 반드시 죽인다"고 적혀있다. "책에 있는 많은 흔적을 봤지만 이처럼 섬뜩한 것은 처음"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도 보지 않을 책에 그런 글을 썼다는 점이 웃음을 자아낸다.

'입 속의 검은 잎'에 있는 낙서

수많은 페이지 중 도스토옙스키를 언급한 부분만 탄 흔적이 있는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 자녀에게 쓴 편지가 담긴 기형도의 유고 시집, "웬만하면 족구는 조금씩만 해라"라는 메모가 적힌 루쉰의 '광인일기' 등 맥락 없지만 다채로운 이야기가 헌책 속에 숨어 있다.

헌책방을 드나드는 이들도 헌책만큼이나 '내공'이 깊다. 헌책방에 진열된 '초인생활'이라는 책을 골라와 주인에게 일독을 권한 후 표홀히 사라진 어느 '도인', 헌책방에 와서 전자책 홍보에 열을 올리는 젊은이, 책에 관한 한 대단한 전문가지만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시계 수리공 등 독특한 캐릭터들이 등·퇴장하며 책에 개성을 부여한다.

작가 보르헤스는 한 사람이 살면서 남긴 발자취는 소설책 한두 권이 아니라 도서관 전체와 맞먹는다고 말한 바 있다. 저자는 헌책 속에서 그런 사람들의 발자취를 찾아 나선다. 그곳에는 수많은 이야기 보물이 숨어 있다. "헌책에는 평범해서 더 값진, 우리들의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케이시애틀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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