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손님처럼 가족을 대하세요 | 정호연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08-23 23:21
조회
212

불편한 편의점.jpg


 


혼자 박장대소를 두 번 정도 했다. 책은 유쾌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사람 냄새가 났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덩치 크고 말을 더듬으며 오지랖을 부리는 '불편한' 편의점의 야간 알바, 독고 씨가 있었다. 느릿느릿한 행동과 세심한 마음으로 책 전체를 활보하는 느낌이었다. 


 


주변 사람들과 손님들을 세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느리게 말을 걸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독고 씨의 행동을 오지랖으로 여겨 부담스럽게 느꼈다. 반대로 그는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 독특한 야간 알바는 느릿함을 여유로움으로, 오지랖을 부담스러움에서 감동으로 바꾸었고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와 같이 있는 느낌이 들어 편안했고 재미있었다.


 


여러 편의 따뜻한 가족 이야기를 본 듯한 느낌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책 속의 사람들은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경만 씨는 가정과 직장에서 늘 외로웠다.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 '불편한' 편의점에서 매일 참참참(참깨라면, 참치삼각김밥, 참이슬)으로 마음을 달랬다. 술 그만 먹고 대신 옥수수수염차를 마시라는 독고 씨에게 오지랖 떨지 말라고 소리치며 뛰쳐나왔다. 한참 뒤 다시 편의점 근처를 지나게 되었을 때 테이블 위에 자신을 기다리는 옥수수수염차를 보며 경만 씨는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상상이 간다. 라면에 소주 한 잔이 하루의 시름을 잊게 했다면 옥수수수염차는 텅 빈 마음을 채워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런 곳이 나에게도 있을까. 


 


"가족들에게 평생 모질게 굴었네. 너무 후회가 돼. 이제 만나더라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손님한테 하듯...... 하세요."


 


이혼을 하고 홀로 사는 흥신소 곽 씨와 독고 씨의 대화이다. 곽 씨의 말에는 가족을 잊지 못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런데 그는 왜 가족들에게 모질게 대했을까. 아버지니까 당연히 자식을 위해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고 남편이니 당연히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그 당연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모든 관계에 당연한 것은 없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남들보다 좀 더 특별한 존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든 당연히 주고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특별함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손님한테 하듯 가족을 대해라. 곱씹어 볼수록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곽 씨도 나와 마음이 같았다.


 


사람들은 우연히 들어간 '불편한' 편의점에서 독고 씨의 오지랖을 통해 이렇게 자신의 상처에 직면했다. 회피하며 살았던 과거를 직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편의점이 편해질수록 그들은 용기를 냈다. 독고 씨가 그들에게 했던 행동은 가만히 지켜보고 조용히 불편하지 않도록 편의를 제공해 준 것이었다. 그들이 마음을 편히 가질 때까지 기다려주었고 말을 하면 들어주었다. 불편하지 않는 '불편한' 편의점에 나도 들어가고 싶어 꼬리 질문이 생긴다. 나도 사람들을 독고 씨처럼 대할 수 있을까. 사람들처럼 회피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여러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준 독고 씨었지만 정작 자신이 가진 가족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과거의 상처를 잊기 위해 술을 마셨고 알코올성 치매로 과거의 기억도 가물거렸다. 그런 자신을 편의점 주인 염여사가 도와주었다.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 주었고 기억이 되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편의점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던 기억이 돌아오는 기적을 낳았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그는 머리가 아팠다.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자신을 괴롭혔다. 회피하고 싶은 시간을 다시 기억해낸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독고 씨는 죄스러움을 지니고 있기로 했다.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상처를 드러내고 회복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독고 씨도 자신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돌고 돌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다. 사람 냄새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다.


 



 



 


이 북리뷰는 대안학교에서 근무하는 영어 교사 고마나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brunch.co.kr/@gom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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