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JFK공항의 "김밥 아줌마"
한국의 김밥과 우동이 햄버거, 피자처럼 세계 시장에서 널리 판매되는 패스트푸드가 될 수 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맥도널드나 피자헛처럼 뉴욕, 모스크바, 도쿄에 김밥 체인망이 깔리고 김밥 잘 마는 아주머니들은 원조 김밥 솜씨를 전파하기 위해 해외 출장을 다니게 될 지 모른다.
미국 50개주에 수많은 공항이 있지만 한국 음식을 파는 가게는 이곳이 유일하다. 2년여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공항내 한국음식점을 내고 외국 패스트푸드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스프 앤 김밥' 바로 옆에는 맥도널드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밖에도 욕앤롤(Wok & Roll) 등 중국, 일본식 패스트푸드점들도 들어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맥도널드는 이 공항에만 9개에 달한다. 인지도에서는 열세지만 건강에 해로운 트랜스지방산 같은 것이 없는 건강식이라는 이미지와 한국 음식만이 갖는 독특한 맛을 내세워 경쟁하고 있다.
뉴욕 JFK공항 1터미널은 지난 1998년 대한항공과 JAL, 에어프랑스, 루프트한자 등이 컨소시엄으로 건설했다. 4개 항공사를 포함해 10여개국 항공사들이 입주해 있어 다양한 국가, 다양한 인종의 여행객들이 왕래하는 곳이다. '스프 앤 김밥'은 터미널이 완공된 지 4년 후인 지난 2003년 2월 이 곳에 개업했다.
'스프 앤 김밥'은 서양식 재료를 넣는 이른바 '퓨전 김밥'을 판매하지 않는다. 2~3가지 재료만으로 만드는 일본식 김밥과 달리 야채와 고기 등 6가지 재료가 풍부하게 들어가는 한국식 김밥이 맛이나 영양면에서 우수하다는 것을 외국인 손님들에게 알리고 있다. 우동도 일본 우동과 확연히 다른 매콤한 한국식 우동을 판매한다. "김밥은 김밥이고 수시는 수시"라는 게 정 사장의 지론이다.
정 사장은 "김밥이 외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팔린다"며 "특히 프랑스인들은 김치와 라면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얼큰한 맛의 김치콩나물국을 가리키며 뭐냐고 물어오는 외국인들에게 시음토록 하면 10명 가운데 8명은 맛있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최근엔 비빔밥이 있느냐고 묻는 외국인들이 늘어 조만간 비빔밥도 제공할 계획이다. 비빔밥에는 비교적 많은 재료가 들어가야 해 좁은 매장공간에 더 큰 냉장고를 비치해야 하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정 사장은 조만간 가게 이름을 'Jik Ji(직지)'로 바꾸고 가게 인테리어도 더 한국적인 분위기로 꾸밀 계획이다. 그녀는 "개업 당시 콩나물국과 김밥을 그대로 상호로 하자는 생각에 '스프 앤 김밥'으로 정했다"며 "그러나 한국 음식의 품격과 자긍심을 나타내기 위해 한국인이 세계 최초로 창안해낸 금속활자 '직지심경'에서 따온 '직지'를 상호로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청주에 있는 직지문화원의 사전 허가를 받아 상표권도 출원할 예정이다. 직지문화원측도 세계적인 공항에서 '직지'를 알리겠다는 뜻을 반겼다고 한다.
처음 가게를 건축할 때에도 2002년 월드컵 주경기장(상암경기장) 설계를 맡았던 ㈜정림건축 뉴욕지사에 설계를 맡기고 건축 자재도 모두 한국에서 공수해왔다. 터미널 음식코너의 빈 공간에 매장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공항 전체 분위기에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독특한 이미지를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하얀색 철골구조의 JFK 공항 터미널과 유사하면서도 방패연 모양의 상암경기장 느낌도 담는 디자인을 선택했다.
미국 국제 공항에 한국 음식점을 허가 받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국 음식의 인지도가 아직 낮아 외국인들을 설득하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1터미널 주인인 4개 항공사 즉, 대한항공을 비롯해 JAL, 에어프랑스, 루프트한자를 모두 설득해야 했고 주 정부의 담당부처로부터도 승인을 받아야 했다. 공항측에 제시한 한국 음식에 대한 설명서('푸드 프레젠테이션')만도 트럭 한 대 분량은 될 것이라고 정 사장은 말했다. 당초 2002년 개업할 예정이었으나 2001년 9월 9.11테러가 터지는 바람에 이전에 운영하던 가게 문을 닫은 채 1년여를 기다려야 했다.
정 사장은 지난 1985년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음악을 전공했던 그녀는 음악치료, 특수교육 등을 전공, 4년여 동안 뉴욕 인근에서 특수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남편 이준석(45)씨는 1991년부터 맨해튼에서 델리, 피자 레스토랑 등을 운영했는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음식업 경험이 공항 점포를 뚫는데 밑거름이 됐다. 마침 미국인들에게도 웰빙 음식 바람이 불고 한국 음식이 웰빙 음식이라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해 공항측을 설득하는데 도움이 됐다. 정 사장은 공항 점포를 시작하면서 교직을 그만 두고 아예 운영을 맡았다.
정 사장은 점포 개설 비용에 대해 "백만달러(9억원 이상)는 될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녀는 "큰 수익을 내는 것은 아니지만 괜찮은 편"이라며 "세계 다른 공항에도 한국 음식점이 많이 진출해 한국 음식의 우수성을 외국인들에게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