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덜웨이 새로운 교회 찹쌀순대 시식 후기
혹시 떨어지면 어쩌나.
결괄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발푯날 합격자 명단에
수석 칼있으마.
그렇게 국민(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 ) 안의 글잔 태클 방지용임.
아빤 내 파랗디 파아란 싹술 보구서는 내심 기쁘셨는지
"갈래?"
따라나서며 신났던 이윤,
웬수덩어리들인 형들과 누나를 뻰찌시키구서는
나만.
그날 이후로,
우리 집안의 후계구도가 완전히 바뀌는 분위기였다.
장남은 장남대로 또 차남대로 또 누나대로
후계잔 자기라며 아빠에게
돋보이기 위해
경쟁들을 하고 있었는데,
어리다구 제껴두구서는 생각지도 않았던 어린 막내의 혜성같은 등장에
그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하며 불안해 했고,
날 제거하려는 우리집 일진들의 가폭은 날로 가혹해져
차라리 난 가출 내진 출가 내진 퐁당!!! 금강물에 코박고 죽고 싶었었다.
무튼 다음날,
이러한 가혹, 혹독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구서는
마냥 신나 따라간 곳은
껍질 탄 통 개가 배를 열구서는 걸려있고,
각종 건어물들의 쿰쿰한 마른내가 흥건했고,
딱 봐도 무당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굿용 돼지대가리를 놓구 흥정을 하구 있구,
태평양에서 갓 건진 것관 아주 거리가 먼
고래니 참치니의 생선들의 몸쪼가리 위에선
다정한 연인들로 보이는 쇠파리들이
종족 보존을 위해
사랑을 나누느라 겹겹이 포개져 있는 생선가게를 지나구 난 옆.
구린내가 많이나는
순대국밥집였다.
아직 짜장면과는 대면하기 전였기에
지금 난 세상에서 가장 맛난 음식을 먹고 있었던 거였다.
아빠는
밥 반공길 마시더니
반공긴 내게 쓰윽 미셨다.
걸로도 충분히 부족했던 난
얼마나 맛있는지
정말이지 투가리에 하나 남은 후춧가루까지 끄내먹었다.
그날 이후로 난 순대국밥의 노예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결혼이란 걸 하구서는
마눌에게 월급봉툴 쓰리맞아 신세 조지기 전까진
월급을 탐 무조건 제일 먼저 순대국밥을 알현했었다.
무튼 게 태어나 아빠와의 첫 데이트였고
그 추억이 하도 진해
지금도 순대만 봄 자동으로 아빠와의 첫데이트다.
그런 지독한 순대와의 인연의 끈을 안 놓고 있는 내게
"맛있는 찹쌀순대 판매합니다."
란
제목만으로도 군침이 돌고
논산시장에서 아빠와의 데이트가 떠올라
우리집에서 5시간이나 달려 당도한 곳,
페덜웨이에 있는
새로운 교회.
권사님이신지 집사님이신지 그리고 청년부 대학부쯤으로 보이는 학생들,
열 둬 분께서 수고를 하고 계셨는데,
갈 땐 두 봉다리만 사겠다구서는 50불을 각오했는데,
"잡숴봐라 드셔봐라 맛보셔봐라."
아, 어딜 가나 식을 줄 모르는 이노무 인기.
하도 권하길래 하나 잡쉈더니
우와!!!!!!!!!!!! 눈물이 왈칵, 그 정도로 맛이 좋아
랭동고에 보관하구서는 며칠을 아빠와 조우하고픔에 4봉 더했더니 거봉 6봉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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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터지게 잡숫고파
5시간 거릴, 올 땐 30분으로 날라 도착해가지구서는
날 잘 선 칼로 차곡차곡 정직하게 쓸어
맛소금 살짝 찍구서는 문 순대,
그리고 쪼옥!!! 쐬주 한 톨.
키햐~~~~~~~~~~~~~~~!!!!!!!!!!!!!!!!!!!!!!!!!!!!!
역쉬 행복은 순대순여 이?
음, 하나 따지잠,
어디 한국의 피순대와 감히 비교의 대상이겠냐만서두
이곳에서 이 정도의 이 맛의 이 순댐,
어디 나가 피순대와 맞짱을 떠도 안 꿀릴 맛.
칼님의 명옐 걸구서는 보장.
오늘도 오후에 바자횔 하신다 하니
음......얘.
여기서 칼님 대서사시가 올라오기만을
목빼구 기다리다 망부석 되지 말구
바람도 쐴겸 운동겸 다녀와.
해 오늘 저녁은 다들
찹쌀순대로 순대 채우기 이?
옥퀘이?
음...... 수고하시는 그곳 모든 분들께서 하도 친절해 감사해서
내 드릴 건 없구,
올 가을에
개당 싯가 천 딸라짜리 둘,
합이 이천 딸라 상당의 국화를
목사님 설교하실 때
양쪽에 놔드리라구 드릴려구.
이건 내 공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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