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다=(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다=(펌)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070611/387398
제이슨 최(수필가)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사람들은 지식이 많으면 지혜로운 줄 안다.
그것은 곧 지능을 지혜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멘사 클럽”에 가입해도 좋을 정도로 높은 지능(IQ)을 가졌지만
지혜는 부족한 사람이 많다.
철학이라는 말이 “지혜에 대한 사랑”을 나타낸다고는 하지만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지혜를 “영원의 관점으로 만물을 바라보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이 말은 곧 자신의 관점을 넘어 신의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보는 능력이 지혜라는 말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지식을 얻기는 쉬우나 지혜를 얻기는 어렵다.
선생은 많으나 스승은 적기 때문이다.
흔히 선생과 스승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선생과 스승은 다르다.
선생은 지식을 파는 직업인일 뿐이고,
스승은 지식에다 지혜를 얹어주시는 분이다.
인생이 풍요로워지고 가정과 이웃이,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한국인 가운데 자녀 교육을 잘 시켜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예일대학의 법대학장 고홍주 박사의 어머니 전혜성 박사는
자녀들을 키울때 “덕승재(德勝才)”라고 해서
언제나 재주가 덕을 앞서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덕과 재를 다른 말로 한다면 지혜와 지식이 아닐까?
지식이 지혜를 앞서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훌륭한 멘토가 필요하다.
멘토라는 말은 호머의 “오디세이”에 나오는 사람 이름에서 시작되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자 오디세우스는 10년 정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을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맡기고
양육과 교육을 부탁하게 되는데,
그 친구의 이름이 바로 멘토르(Mentor)였다.
거기서 유래된 멘토라는 말이 오늘날에 와서는
주로 일대일의 관계로 인생의 등불이 되어,
가르침을 주고받는 관계로 발전한 것을 우리는 멘토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스승이 멘토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며 살아가는가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
그 만남이란 것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가오는 운명이란 것도 있고,
때로는 나의 노력으로 얻어지기도 하는 게 인생이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인연이라고 한다.
인연에는 좋은 인연(好緣)도 있고 나쁜 인연(惡緣)도 있다.
좋은 인연이야 잘 간직하면 되지만
나쁜 인연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나쁜 인연을 말 그대로 지혜로 극복해서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것이다.
지식으로는 불가능한 것도 지혜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식은 많으나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세상을 어지럽힐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이 한국의 정치판이다.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국회에서 서로 헐뜯고 싸우는 것을 볼 때마다
국민들은 실망하고 절망하지만,
그 피가 대물림되어 은연중에 대중들의 삶 속에 묻어나오고,
턔평양을 건너 이민을 오면서도 버리지 못해
이곳의 한인사회도 한인회를 비롯해 크고 작은
수많은 단체들이 불협화음으로 삐걱거린다.
지식만 있고 지혜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다.
진정한 지혜란 신중한 선택의 결과다.
그 어느 누구도 우연히 지혜를 얻을 수는 없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추구하여야 하고,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깨달아야 하며,
청결한 가슴으로 자기 수양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고귀한 것이다.
지혜는 누군가가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얻어지는 대가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현대인들은
기름진 음식만 먹어 비만이 죽음에 이르게 하듯,
지식과 정보의 바다만을 헤매느라 아름다운 인생을 보지 못한다.
지식만으로 얻은 성공으로는 행복할 수가 없다.
진실된 행복이란 지혜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란 안경을 끼고 보면 파랗고,
노란 안경을 끼고 보면 노랗게 보이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먼저 자신을 사랑하는 지혜를 배우고,
다음엔 아내(남편)를 사랑하는 지혜를 배우고,
그 다음엔 자녀를 사랑하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자. 지혜는 마음의 등불이다.
지혜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자. 세상이,
인생이 한층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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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난 사람 든 사람 된 사람'이란 글이 떠오른다.
입만 열면 잘난체하고 본인 자랑하는 사람은 '난 사람'일까?
많은 펌 글을 글 창고에 보유하고 있으면 지식이 많은 '든 사람'일까?
펌 글을 이용해서 본인이 원하는 관심을 많이 받으려 끊임없이 중복 글 올리고 그렇게 올린 글로 비난받는 걸 피하기 위해 일구이언, 이중잣대, 내로남불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은 인격이 훌륭한 '된 사람'일까?
이 게시판 자체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행동이 지혜롭다..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요, 글 쓰실때마다 왜 날 선 댓글들이 달리는지 지혜롭게 생각한번 해 보시길..
이쯤되면 즐기는 듯 싶다.
같은 편도 싫어할 듯.
이러면서 느끼나?
Yes I agree. You lack both knowledge AND wisdom, clearly.
Well, what about his IQ of 126? Ain't gonna boost either or both???
"Doggedness" is one of his GOOD qualities.
이 게시판 오피니언 리더께서 글을 또 퍼오셨다. 제이슨 최라는 분이 쓴 2007년도 글을 복붙했다. 감명을 받아 오랜동안 '글창고'에 간직하셨다가 '황송하게' 여기에 푸신 듯 싶다.
내 짧은 식견으오 훑어보니, 지혜는 지식의 상위 개념이며 결국 지혜롭게 사는 것이 현명하다 말하는 듯 하다. 뭐, 같은 뜻의 어록들이 많으니 별 토를 다는 이는 없겠다 싶다.
지혜롭게 산다는 것, 어떻게 사는 것일까? 부딪힘 없이 갈등없이 분쟁 없이 사는 것이 아닐까? 난 그리 생각한다. 식구, 친구, 회사 동료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과 부대끼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것이 현명하게 또는 지혜롭게 사는 것이라 여긴다.
미래에 반드시 닥칠 것 같은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고찰할 식견 즉 지식이 필요하다. 편향되고 그릇된 짧은 풍월이 밑바탕된 이가 지혜로운 해결책을 구하기 쉽지 않다.
지혜와 지식은 상하위 개념이 아닌 상호보완 위치에 있다. 할아범이 퍼온 글의 제목부터 거슬렸다. 마치 지혜가 세상을 지배하는 절대 선으로 선언했다. 나이가 들면 스스로 현명해질 수 있다는 유교적 발상(아시아 문화에서 가장 그릇된 철학이념이라 여겨지는)이 불쾌했다.
지혜를 다룬 주옥 같은 에세이, 책이 많건만 이를 인용하는 대신 16년 전 무명의 아마추어 수필가의 일기 같은 에세이를 퍼온, 할아범의 지식의 한계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Mr. 疲困 !
그래요, 맞아요. 잘 보셨어요, 난 많이 모자랍니다.
==
난 부족한 것이 많아 늘 그러지 않으려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필명을 바꿔가면서 글을 올리는 일,
나에게 맞지 않는 글은 그냥 지나쳐 버리지 거기에 이렇쿵저렇쿵
시비성 댓글을 달면서 나의 시간을 낭비하는 부질없는 일.
열 받으셨나? 스팀 열기가 스멀스멀 여기서도 보이는 듯. 필명을 바꾼다? 그런 유저가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 모두가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고 있다는 듯한 자기확증편향으로 인한 망상. 뭐 대단한 분 까겠다고 여러 아이디 파서 글을 쓰겠냐만은, 의심이 가는 글들이 있으면 문체와 IP 주소 등을 대조해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비난하길. 그럴 것이다란 카더라로 선동하지 말고. 쫌! 할배요.
PS. 이러쿵저러쿵 not 이렇쿵저렇쿵. 자판 잘못눌러 ㄴ 받침을 ㅁ으로 잘못 쓸 수 있지만, 이러쿵저러쿵은 오타가 아니라 철자법 오류. 지식이 모자라신 듯
그만큼 가장 뜨겁고 인기가 높다는 예기. 떨거뜨려 던져주는 똥이라도 덥썩 줏어 먹을려는 따르는 오뉴월을 향한 한두마리 들개의 습성 때문
난 부족한 것이 많아 늘 그러지 않으려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필명을 바꿔가면서 글을 올리는 일,
나에게 맞지 않는 글은 그냥 지나쳐 버리지 거기에 이렇쿵저렇쿵
시비성 댓글을 달면서 나의 시간을 낭비하는 부질없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