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고침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 는 말이 있었다.이는 넓고 큰데 가야 성공을 해도 크게 성공한다는 말이다. 좋게 말하면 옛날엔 지방에서 서울로 오는 길이 여러 길이 있지만 우선 빨리만 갈 수 있으면 어떤 길이든 택한다는 의미다. 나쁘게 말하면 어떤 일을 하면서 과정은 무시한 체 결과만 중시 한다는 뜻이다.
(예시로 든 첫 문장은 문단 마지막 강조하고픈 주제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 첫 문장 예시는 더 적합한 환경에 노출돼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를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만 중시하는 것의 예시로 잘못 사용함으로서 논리적 설득력을 잃었다.
'이는 넓고 큰데 가야' 에서 큰 데로 띄어쓰기를 해야 하며 장소를 일컫는 데는 구어체적 표현으로 '곳'이란단어가 적합하다.
'무시한 체' 에서 체가 아니라 채가 옳다. 유명한 작가들도 자신이 쓴 글을 수 백번 읽으며 오타, 철자 오류 등을 자가 검증한다. 체->채는 쉽게 필터링할 수 있는 오류다.
따옴표에 갇힌 문장에는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글쓰기의 기초 중 기초다. 오랫동안 글쓰기에 관심을 가졌다면서 기초적인 오류를 매번 범하니 글쓰기에 진심인지 의문이 든다. 내용은 차치해도 이 짧은 문단에서 기본적인 글쓰기 오류를 셋이나 범했다)
(중략)
우린 경쟁사회에 오래 물들어 결과에만 치중하다 보니 어떤 부분은 이건 잘 못이다 아니다 하는 감각 자체도 무뎌진 게 아닌가 싶다.
(전형적 클리쉐. 올림픽에 나서는 거의 모든 선수는 결과를 원한다. 금메달이든 국내기록 경신이든, 개인기록 경신이든 저마다 목표가 있고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해 4년을 쏟아 붓는다. 단편적인 해프닝을 갖고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다 보면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 부상당한 선수를 일으켜 세우는 모습이 보기 좋지만 스포츠의 궁극적 목표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를 현실 생활과 엮어 설명하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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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시험 칠 땐 요령 끗 시험에 나올 문제만 찾고군대에선 요령 끗 상사의 눈치만 살피고 사회엔 어느 줄에 서면 좋을지 눈치부터 보고 있다. 지금은 많이 변해서 모르겠다.
('요령 끗' . '뭐지?'란 한탄을 자아내게 했다. 요령껏을 잘못쓴 것이 아닌 내가 모르는 고차원 단어일 것이라 확신했다. 얼토당토한 단어를 자신있게 두 번이나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80년대 대학시절 어느 족보를 구하느냐에 따라 학점이 갈렸다. 그 족보가 10년 이상 묵은 보물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요령 끗' 찾아다니는 약삽함은 할배세대 전부터 내려온 전통인 듯 싶다. 할아범 세대도 고치려는 노력이 없었는데 왜 현 세대만 잘못하고 있다는 뉘앙스로 질책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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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어디고 줄을 서서 차례대로 볼일을 보는데 예를 들어 식당에 들어가보면 몇 counter 에서 도와주고 있어도 식당 입구엔 한 줄로 있다가 빈 counter 가 생기면 앞 사람부터 거기로 간다.
한국인은 이게 몸에 베이지 않아 counter 별로 줄을 서고 새로 들어간 사람은 여기 저기 눈치를 보고 줄이 짧은 곳에 선다. 여기서 줄은 짧았는데 앞 사람이 빨리 끝이 나지 않아 오히려 긴 줄이었던 옆줄보다 늦어질 수가 있다. 이땐 앞을 보고 빨리 빨리 했으면 좋겠다는 언행이 나타난다.
해서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글은 글멋(text)와 글맛(context)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할배의 요점은 짧은 대기줄을 메뚜기처럼 촐싹거리며 옮겨다니는 꼴이 볼썽사납다는 것인데 이 짧은 표현을 장황하게 횡설수설한 탓에 말하고자 한 뜻을 전달하지 못했다.
'해서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있다' 란 문장을 수 십차례 곱씹어 읽어봐도 뭘 말하려는지 알기 힘들다. '해서'를 '그리하여서'란 의미로 적은 듯 한데 문어체 어법에서 벗어난 표현이다.
'공공연히 하고 있다'의 주체는 누구인가? 시나 에세이처럼 문학적 표현을 하기 위한 글이 아닌 계몽글, 주장글은 명확한 주어가 정확한 행위를 했음를 분명히 밝혀야 글에 힘이 실린다. 마지막 문장은 주어가 없어 머리 잘린 개미 몸뚱아리 같아 기괴하다)
비아냥거림이 맞다. 본인 주장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뭐라 비난할 생각 없다. 그러나 주장을 펼치려면 반박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글을 구성하던지 아님 반대의견이나 비판이 항상 개진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논쟁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