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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아버지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에세이
에세이
작성자
권종상
작성일
2013-07-26 04:32
조회
4388

어제는 비번날. 부모님 친구분께서 저희 먹으라 하시면서 집에서 기른 열무상추를 말 그대로 한 상자를 가져다 주셨고, 보관 잘못하면 먹기도
전에 버리게 생겼기에, 아내에게 등심이나 구워 먹자고 했습니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등심스테이크를 사다가 칼 잘 갈아 썩썩 베어 전기 불판에
올려놓고 구워 한참 먹고 있을 때였는데, 마침 동생에게 금요일 저녁이나 함께 먹자는 전화가 왔습니다. 

 

"뭐 먹을까?" 하고 아이들에게 물어봤는데, 대답은 "고기 먹을래요"라는 것이었습니다. 더위에 며칠 고생했던 듯, 아내는 "오늘 이렇게
고기를 먹는데 또 고기? 냉면 같은 거 먹으러 가면 안될까?"라고 했는데, 아들의 대답은 "싫어요." 였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골이 난 듯 입을
닫았고, 그러다가 제게 말했습니다. "아이들한테, 말하는 거 가르쳐 주세요."

 

전 이것이 무슨 뜻인지 금방 와 닿았기에, 아이들에게 설명했습니다. "한국에선 말이다, 어른들에게는 싫어도 '싫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다른 거 먹을래요' 라던지, '저는 그게 별로 안 좋아요. 다른 거 먹으면 안 돼요?' 라고 물어봐야 해. 어른들의 마음을 배려해야 하는
거야." 그러자 큰놈은 금방 알아듣고, "엄마 미안해요."라고 이야기했지만, 작은놈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듯 했습니다.

 

둘 다 미국에서 태어난 녀석들이고, 이곳 식의 사고방식이 박혀 있습니다. 아이덴티티는 한국인이지만, 이 아이들은 이미 '한국의 문화를
어느정도 아는 미국인'들이라는 것이죠. 물론 계속 한인 성당에 다녔고, 주말에는 한글학교를, 그리고 주일에는 주일학교 생활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접하고 있지만, 그래도 본질적으로 이 아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영어로 하는 아이들입니다. 우리 부부가 아무리 미국에서 산 지 오래 됐다고 해도,
사고를 하는 언어가 한국어인 이상 우리는 한인인 것입니다. 한국인과 미국인을 가르는 경계점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사고하는 언어'라는
부분입니다. 이 점에서 볼 때, 저는 제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법적으로는 한국계 미국인이되, 절대로 버릴 수 없는 한국인의 아이덴티티를 지니고
있는 셈입니다.

 

스스로를 메트로폴리탄이라고 생각하고, 나름으로 아이들을 그런 관점에서 기르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사소하게 부딪히는 부분들은 어떻게든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 아이들은 학교에서 "네 의견을 '분명하게' 이야기하라"는 학습을 받습니다. 미국인들이 한국인이나, 다른 언어를 쓰다가
이민 온 사람들에게 비교적 관대한 것은, 그들이 '발음을 똑바로 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의도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밝히는 것'을 대화의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교적 다른 한국 친구들과, 그리고 어른들과의 접촉 빈도가 높은 지호와는 달리 조금 미국적인 데가 더 강한 지원이는 제 설명이 아무래도
쉽게 와 닿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로 학교에서 배운 것과 부딪혀 버리니까요. 지원이가 자라면서, 제 설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미국에서 살면서 이런 갈등들은 분명히 이민사회 어디에나 존재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미국에서 자녀를 기르는
부모들이 조금 더 갈등해야 할 거리를 주게 됩니다. 늘 노력은 하지만, 이런 사소해 보이는 문제들이 실제적으로는 커뮤니티 안에서는 갈등의 근본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두 '미국 아이들'의 아빠는 '한국계 부모'로서, 그러면서도 '미국 부모'로서, 제대로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는가 돌아보게 됩니다.

 

 

시애틀에서...  

전체 2

  • 2013-07-26 23:51

    안녕하세요~ 권종상님! 아버지가 된다는것에 대한 에세이 잘 읽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중학교때 이민와서 철저히 한국인 마인드를 지닌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저같은 1.5세인 경우도 언어 영역을 두가지를 철저희 잘한다는게 너무 힘듭니다. 특히 언어는 어느정도 습관화되는것이고 배려나 예절도 습관화되는것이기에 더구나 더 어렵구요. 또 밖에서 하는 방식이 미국 방식이고 집안에서는 한국 방식으로 둘다 완벽하게 살으라면 저같은 경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거 같습니다. 미국은 자기 PR을 많이 하라고 가르쳐요.. 한국은 남을 많이 배려하고 예의지키라고 가르치구요. 미국에는 매너라는게 있는데 이 매너가 한국식의 배려과 예의하고는 또다른 차원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자기 PR, 자기가 멀 잘하는지 당당히 어필하는 사람을 훨씬 좋아해요. 미국 사람들이 볼때 아시아 사람이 사회 생활에서 뒤쳐지는 이유중에 하나가 자기 의견이 분명하지 않고 순종적이고 남한테 끌려다닌다고 생각합니다. 자식들이 나중에 커서 미국에서 계속 생활을 하고 당당히 미국인 직장에서 대접받고 살아가려면 그래도 미국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시는게 유리할까 생각이 됩니다. 두가지를 동시에 잘하길 바라는건 어느정도의 욕심이예요.. 저는 1.5 세인데도 적응이 그것때문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financial advisor로 잘 직업도 되고 잘 살고 있지만 제가 자기 PR을 충분히 하는 성격이였기 때문에 한국사람들이 정말 적게 취직하는 금융회사에 인터뷰를 통해 바로 취직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저희 상사도 하는 말이 저는 보통 아시아사람들과는 다르게 자기 PR을 당당히 하고 적극적인 모습에 일을 확실히 잘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고 하네요..

     

    아무쪼록 아이들이 덜 스트레스를 받고 편안한 환경에서 그래도 좋은 education 을 받고 잘 컷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 2015-04-15 00:52

    K Seattle에 들어오면 다른 거 보느냐고 신경안쓰다가 처음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1.5세 입니다.

    저도 아이덴티티는 한국이라 생각하지만 여기서 자라면서 미국적 사고방식이 자연스레 들어와 

    한국적 마인드가 이해안되는부분들이 생기더라구여

    하지만 글을읽으면서 저희 부모님생각을 해봤습니다.

    미국에 오셨지만 부모님은 평생 한국에서 사시다가 오셨기때문에 당연히 미국적인사고방식이 적응 안됬으리라

    그리고 자식들도 한국적인사고방식으로 대했던것이 저도 이해안되거나 스트레스였을때도 있었는데

    부모님은 미국에서 바뀌는 저희들을 보면서 또 마음아프시거나 힘들어하셨을거라는걸 깨닿게 되네요

    부모님께 죄송스러운마음으로 글을 읽었습니다.

    멋진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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