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시

케이시애틀 연재 에세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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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 고등학교 교사 (완결) | 시애틀로 간 백미와 현미 (완결) | 나의 첫 포틀랜드 (완결)

부모역할

에세이
에세이
작성자
허니
작성일
2007-02-14 22:00
조회
2581
한국에서의 영어 열풍으로 너도 나도 해외로 빠져나온 그 많은 사람들 중 한사람인 그녀와의 인연은 벌써 2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피만 섞이지 않았을 뿐, 외국 나가 살고 있는 내 남자형제들 보다 더 자매같은 사이의 그녀와 나…



서류나이(?)뿐 아니라 생활나이(?)를 좀 더 먹어버린 난, 전혀 감 잡을 수 없었던 모험적인 삶을 살아보고서야 늘 그녀에게 경험담을 들려주는 입장이였다.





요즘들어 잦은 그녀와의 통화는 그녀뿐만이 아니라 나에게 역시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던져주곤 한다.





그녀가 아이 셋을 데리고 기러기 가족의 길을 선택했을 그 때엔 분명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요즘들어 부쩍 버거워하는 그녀를 보면 난 어쩜 미리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족의 해체라고 그렇게 위협까지 했건만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아마도 각자의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사회적으로 점점 명성을 쌓고 있는 그녀의 남편…



전문직을 과감히 버리고 아이들 양육에 올인한 그녀…



풍요로움 속에 빈곤이라고 하나???  그녀의 세 아이들은 부재중(?)인 아빠에 익숙해져가고…





그렇게 그녀의 가족은 그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안정되지 않은 절름발이 가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날 그녀가 큰녀석 문제로 내게 도움을 청하고서야 난 조심스럽게 그녀가 안고 있는 자식 양육에 대한 어려움에 동승하게 되었다.





같이 자식 키우며 누군가의 멘토가 된다는 건 참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누구보다 더 냉정하기로 맘 먹었다,그녀를 위해서…





‘사회성 결여’라는 전문가의 진단까지 받은 초등학교 4학년인 그녀 아들!





그런 결과의 굴레를 쓴 아들을 절대 이해 할 수 없다는 그녀에게 난 심리 전문가가 아니기에 그 말뜻이 바로 ‘가정 교육 결여’임을 잔인하게 알려줬고, 아빠의 부재가 낳은 결과이고, 결국 뭔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해 기러기 가족을 자처했던 그녀의 선택에 대한 부작용이란 얘기했다.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은 그녀는 주변에서 비슷한 입장에 놓여 있는 이웃들(?)을 찾아 막연한 위안을 삼으려 했지만 그녀가 몰랐던 그 무엇이 그들에겐 분명히 있었다.





그녀의 양육방법과는 달리 그녀의 이웃들은…





늘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집에서 공놀이 하면 절대 안된다는 것과,



탁자위에 올라가 놀다 뛰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임을 알려 줬을 것이고,



원하는 장난감을 맘껏 사주기 보다는 아이의 눈높이 고민(?)에 대해 대화를 했을 것이고,



제대로 된 식탁매너에 대해 일찌감치 습관을 들였을 것이고,



고집을 피워도 소용이 없다는 걸 경험을 통해 가르켜 줬을거고,



때론 하기 싫어도 해야되는 것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절제도 평범한 생활속에서 가르켜 줬다는 것을…



아이들은 저절로 커가는 것이 아닌 것을....



아이들은 부모가 보여주는 대로 그리고 가르쳐 주는 대로 커가는 것임을…



그녀는 몰랐던 것 같다, 비록 가치관의 차이겠지만....





더불어 모든 양육을 ‘아내’에게만 맡기고 가정의 모든 경제를 확실하게 책임짐으로써 남편과 아빠의 역할을 당당하고 완벽하게 하고 있기에 ‘아빠부재’의 심각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남편…



(어쩜 그녀 남편은 아이들과의 추억이 희미해져 버린 참 불쌍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 성격만큼이나 미련스러운 성실함으로 오직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만 해온 그녀의 일방적인 희생…





이렇게 ‘엄마’, ‘아빠’란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던 절름발이 그녀 부부는 이제 함께 어우러져 빛을 바라는 ‘엄마, 아빠’가 되기 위해 필사적인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얼켜있는 실타래를 힘겹게 그리고 천천히 풀어가면서....





예전에 어느 지인이 나에게 죽기전에 하고 싶은거 다 해봐야지 않겠냐고 물어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알고 있을까?



남편이나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란 걸…



비록 내 부모님과 가까운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리고 난 뒤, 불쑥 불쑥  허무하게 느껴질 인생일지라도 내 자식이 살아가야 할 날들이 많기에 또 다시 하고 싶어도 하지 않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부모’의 몫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다시금 새겨보게 된 ‘부모의 역할’이였지만 정답없는 그 역할을 하고 있는 모든이에게 들려주고 싶다…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어도 가정은 살 수 없고,



시계는 살 수 있어도 시간은 살 수 없고,



지위는 살 수 있어도 존경은 살 수 없고,



약은 살 수 있어도 건강은 살 수 없고,



피는 살 수 있어도 삶은 살 수 없고,



性은 살 수 있어도 사랑은 절대 살 수 없다는 거…
전체 4

  • 2007-02-14 23:09

    최근에 읽은 글중 가장 멋진 글입니다. 애들이 절로 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는 다는 것을 요즘 들어 많이 느낍니다. 조금 힘들면 자살하고, 부모 가슴에 못박고... 어찌보면 이 모든게 교육 아니겠습니까. 좋은 글 고맙습니다.


  • 2007-02-15 20:50

    요즘 조기유학 많이 보내죠. 어떤 경우는 애들만.
    아무리 영어가 중요해도, 가족은 함께해야 가족이죠...
    특히 정서적으로 가장 민감하고, 영향을 많이 받는 시기에 부모와 떨어져 있는것은, 나중에 다른 댓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 2007-02-15 22:22

    나무님, don 님..
    많이 부족한 글 읽어 주시고, 흔적 남겨 주셔서 감사 합니다.
    살아가면서 생각주머니를 키워 간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이중문화의 혼란속에서 제대로 된 가치관을 찾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 아닌가 싶은데...
    앞으로 이곳을 주인(?) 허락없이 좋은 생각 나누는 귀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 간간이 글을 올리려 합니다. 응원 많이 부탁 드립니다.


  • 2007-02-16 11:54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이민생활을 오래할 수록, 한국말로 글쓰는 횟수가 줄어들어, 점점 한국말로 표현하는게 어려워지는것을 발견합니다. 염치불구하고, 앞으로도 틈나는 대로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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