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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행복 그리고 가족

에세이
에세이
작성자
김시우
작성일
2007-01-07 20:31
조회
3139
주택매매가 뜸해진 지난 연말부터 훼드럴웨이와  타코마에 각각 주택 리모델링에 착수했다.  6개월이상 팔리지 않아 비어있던 타코마의 주택은 거실과 그라지를 확대하여  임대하거나  매매를 할 계획이고,  한 동안  우리 부부가 살았던  훼드럴웨이 주택은 임차인의 동의를 받아 지붕, 정원과 울타리등 외부 미화작업을 하여 매매할 계획이었다.



훼드럴웨이  현장에서 전화가 왔는데  근처를 지나가던  50대의 한인이 아무일이라도 시켜달라고 막무가내로 며칠 째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이미 인력은 충분하였고 경험도 없다는 그에게 선뜻 일을 맡길 수 없었다.  그런데 난방비가 없어 병든 노모가 추위에 떨고 있다는 말을 듣고 순간 내 마음이 흔들렸다.



며칠 뒤 현장책임자의 급한 전화를 받았다.  그가 지붕에서 미끌어져 떨어지면서 어깨뼈가 부러지고 머리를 크게 다치어서 병원에 실려갔다는 것이다.  어깨뼈는 복합골절로 여러 개의 핀을 박아서 고정하여야 했고 두개골이 금이가고 뇌진탕을 일으켰다고 한다.  솔직히 당시에는 그의 건강보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그의 병원비 치료비와 법적인 책임에 대해 먼저 걱정했다.  병원으로 차를 몰면서  ‘뭐 좀 할려면 꼭 이렇게 재수없는 일이 터진다’고  시부렁거렸다.



내가 병원을 찾아가서 마취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그를 보고 병실을 나서려는데 얼굴이 상기된 중년 여인이 막 병실안으로 들어가더니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을 그의 아내라고 하였고  그녀가  집을 찾았을 때 시어머니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고 했다.  왜 그녀가 오랜동안 집을 비웠는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들 사이에 뭔가 쉽지 않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어머니의 사망 사실을 알게 되면  절대안정이 필요한 남편이  충격을 받을까 두렵다고 했다.



순간 나는 갈등에 빠졌다. 그에게 알리지  않고 장례를 치른다는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의사는 장례식 참석으로 인해 그에게 있을지 모르는 후유증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류에  아내의 서명을 받고서야  그의 외출을 허락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그는  돈이 없어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시지 못한 것 때문에 어머니의 죽음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며 괴로와 했다. 나는 이미 팔순을 넘은  어머니가 자연사임을  강조하여 그의 죄의식을 덜어내려고 노력했다.



3주뒤에  퇴원한 그가  그의 아내 그리고  아들과 함께  우리집을 방문했다.  그는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시행하는 리모델링하는 집에 비해 너무 작은 집에 살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훼드럴웨이 주택에 살면서 우리 부부가  매일 사용하는 면적은  30% 가 채 되지 않았으니  투자가 아닌 직접 거주하는 집은 규모보다 효용도를  더 중요시 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지금의 집은 우리 부부의 직장, 매일 사용하는 편의시설과 가까와 큰 집에서 살 때 보다 더 행복하므로 행복의 크기도 집의 크기와 관계없다고 했다. '부부간의 사랑은 집의 크기와 반비례한다.'는  개똥철학도 토해냈다.  



그녀는 남편과 헤어져 있던 수 년동안 그 녀도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나는 끝까지 왜 헤어져 지냈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 형님부부께서  너무 큰 집에 살아 자주 만날 수 없기에 불행했었다." 고 나의 개똥철학을 두둔하면서 어색한 분위기를 쇄신 하려했다. 부부간의 문제는 그들만이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사안이고,  이제는 다시  합쳐서 아들을 잘 키우며 살겠다는 두 부부의 화해와 사랑앞에서  과거를 들추어내는 것은 의미가 없어보였다. 가족의 이름으로  모든 것은 용서가 되는 것이다.



그는 오늘도 지붕에 올라가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고  현장에서 젊은 기술자들에게  이것 저것  물어가며 비지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 눈도 있으니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해도 그는  나를 보면 반사적으로 허리를 90도  숙이며 인사를 한다.  가끔 그의 아내가  간식을 가지고  현장에 나타나  일하는 다른 분들과 나누어 먹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노라면 가족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히 가슴을 저미는 새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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