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알게 된 문명의 혜택(?), 그리고 트랜지스터 수신기의 추억
확실히, 문명의 이기의 혜택을 덜 받긴 덜 받은 모양입니다. 우리 집에서 성당 구역회가 있는 까닭에 방과 응접실을 치우다가 발견한 내 전화기 전용 이어폰을 전화기에 끼운 후 이것저것 기능을 첵업해보니,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사 깨달았습니다. 아마 아이들 같으면 별로 흥분하지 않을, 그저 평범한 기능이겠지만, 어렸을 적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안녕하세요 김기덕입니다' 같은 프로그램을 들어본 경험이 있는(그것도 수업시간에 몰래) 사람들은 아마 제 흥분을 조금은 이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몇 석 짜리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트랜지스터 수신기를 조립해 본 세대라면, 아마 더욱 절 이해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 저는 사실 여러가지로 제가 '나이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된장할.
그래서, 어제 아침부터 오늘 일 하는 지금까지도, 라디오(전화기)의 채널을 클래식 전문 채널 king.FM 에 맞춰 놓고 귀를 혹사시키고 있습니다. 대략 오늘 들은 방송만으로도 귀가 호사한 느낌입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아들인 요한 크리스천 바하의 곡들과 모짜르트 몇 개, 쇼팽의 마주르카와 귀에 익지 않은 현대음악 몇 개를 들으며 우편배달을 했는데, 발걸음이 그렇게 경쾌해지는군요.
그렇게 음악을 접하다보니, 문득 이상한 데로까지 생각이 튑니다. 클래식음악을 듣는 것은 어쩌면 와인을 마시는 것과 그리도 비슷할까요. 사실 어렸을 때 클래식에 친해지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소품들부터 시작하고 그런 것들이 먼저 귀에 다가오기 시작하고, 그러다보니 점점 나름으로 깊이 있는 곡들로 다가간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고, 문득 그걸 와인 배울 때와 비교해보니 처음 가벼운 맛의 리즐링이나 셰닌 블랑을 마시기 시작할 때가 생각나더군요. 그러다가 점점 나름 깊은 맛의 와인들을 찾아내기 시작하고, 그런 것들을 스스로 찾아 마시기 시작하고, 이 와인은 어떤 맛일까, 저 와인은 어떤 맛일까 궁금해 하던 그 시절들이 느닷없이 생각나더라는거죠.
하긴, 이제 음악을 듣기 시작한것도,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것도, 꽤 시간이 묵은 취미가 되긴 한 듯 합니다. 점점 음악에 빠져들면서 똑같은 베토벤이라도, 그것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한 것인가, 혹은 로린 마젤이 지휘한 것인가, 아니면 레너드 번스타인인가에 따라 그 맛이 다르듯, 이젠 똑같은 '워싱턴산 카버네 소비뇽'이라도 버나드 그리핀의 랍 그리핀이 손을 댔는가, 아니면 레콜 41의 찰스 홉스가 손을 댔는가에 따라 맛이 틀리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니, 시간이 그만큼 흘렀다는 걸까요? 내가 어린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찾아내고 마음대로 즐길 것들을 뒤늦게 우연히 발견해 즐기게 되면서, 나이가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뭔가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알아간다는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 내 삶에 안정감이 된다는 것... 이런저런 생각들이 묻혀가는, 그런 가을날 이른 오후입니다. 거리엔 한잎 두잎 낙엽이 떨어지고, 다람쥐들은 길가에 떨어진 밤 줏느라 정신없이 뛰고 있는, 그런 캐피틀 힐의 오후에 저는 이제 점심을 천천히 마치고 다시 거리로 나가려 합니다. 아, 귀에 다시 이어폰 꽂아야지요. 하하.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