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시

케이시애틀 연재 에세이 시리즈:

38살, 박사 유학을 떠나다 | 될 때까지 하는 영어 회화 도전기 | 미운 오리 문과생 치과 의사 되다

나는 미국 고등학교 교사 (완결) | 시애틀로 간 백미와 현미 (완결) | 나의 첫 포틀랜드 (완결)

첫 페이퍼 제출 - Manuscript Submitted

에세이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1-18 23:49
조회
279

38살, 박사 유학을 떠나다 (12화)

 

이번 주는 오랫동안 썼던 원고를 학회지에 제출했다. 수정에,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여름 동안 쓰고 지도교수님과 줌으로 미팅하면서 최종 확인을 마치고 제출한 첫 페이퍼이다. 사회과학분야 연구이다 보니 연구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하거나 인터뷰를 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을 거친다. 페이퍼 쓸 때는 오래 걸렸는데, 막상 내는 건 금방 이루어지니 참으로 간단하다. 허무한 기분이기도 하고, 이렇게 간단한 일을 너무 오래 끌었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25장 6000 단어 정도의 첫 페이퍼 제출은 너무나 뿌듯한 기분이다. 아직 출간된 것은 아니지만, 첫 페이퍼를 마쳐서 제출한 것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웠다.

 

이곳에 온 박사 과정 친구들을 보면, 석사 때부터 페이퍼를 써서 학회지에 제출하고 출판한 경험을 가진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일을 하고 학회에 발을 들여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Manuscript'라는 단어는 GRE 시험에서나 나온 단어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원고인데, 언제 쓰는 말인지 시험을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딱히 누군가에게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늦게 시작한 박사 과정에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영어로 연구 페이퍼를 써야 한다는 건 급격한 변화였다. 첫 수업 때 강의계획서 (Syllabus)를 받고 이렇게 수업마다 연구 페이퍼를 완성시키는 것이 기본인가 싶었던 때가 1년 전이다.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다 보면 읽고 쓰게 된다. 이번 여름 방학 찬스를 이용했다. 이미 여름 학기 수업 듣는 것도 끝났고, 지금은 연구 조교 일만 하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는 페이퍼를 완성시키는데 시간을 쏟았다. 아카데믹 글을 쓴다는 것은 처음에 너무 어려웠지만, 많은 저널을 읽고 형식에 맞춰 쓰다 보니 완성시킬 수 있었다. 이게 나만 그런가 싶기도 하고, 원래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인지도 궁금했다.

 

지도 교수님은 첫 페이퍼가 원래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고, 쓰면 쓸수록 시간이 줄어들 수는 있지만 저명한 학회지 (Peer reveiw journal)에 제출하는 논문(Full article)은 오래 걸린다고 말해주었다. 이런 말들이 위로와 격려가 된다. 또, 제출 후에 거절을 당하거나 리뷰를 받는 것도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주관적인 시스템이라고 교수님이 경험을 통해 설명해줬다. 그러니 어떤 결과가 나와도 연구가 잘못되었거나 기준 미달이 아니라 그저 그 학회지에 맞지 않는 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고, 다른 곳에 내도 된다고 했다. 제출 후에는 마음 편히 먹으라는 말이다.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간간히 관련된 책을 찾아봤다. 한국어 책 중 [작가란 무엇인가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중 내가 들어본 작가들--어니스트 허밍웨이, 스티븐 킹,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대부분은 고독을 씹으면서 새벽에 일어나 오후 2시 정도까지 글을 매일 쓰고 달리기를 하거나 수영을 하고 밤에는 책을 읽어 마무리하는 패턴이 보였다. 사실 그보다 내가 읽으면서 느꼈던 두 가지 중, 첫 번째는 그동안 나 자신이 얼마나 책을 안 읽었는지에 대해 새삼 충격이었다. 총 1,2,3권으로 이뤄진 책을 훑어보면서 유명한 소설가들이라고 하는데 들어본 작가가 손에 꼽혔다. 물론, 소설 장르를 잘 읽지 않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지금 이렇게 글 읽듯이 학창 시절에 독서를 했다면 다른 인생이 펼쳐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나뿐만 아니라 소설 작가들도 반복적이고 동일한 패턴을 만들어 글을 쓴다는 것이었다.

 

첫 페이퍼를 쓰면서 찾아본 작가의 글쓰기는 나에게 위로와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나 또한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와 함께 페이퍼를 쓰기 시작했고, 글이 막히면 걷거나 운동을 하고 주위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우리는 성공한 결과를 자주 접하게 되다. 하지만, 결과보다 과정을 보는 것이 실행을 하는 데 있어서 좀 더 구체적인 방법 안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지만, 글을 쓴다는 연결 고리를 통해 접한 작가의 하루가 첫 페이퍼를 완성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페이퍼를 제출한 후 뿌듯함 외에도 마음 한편에 있던 조급함이 덜어지고, 영어로 된 페이퍼를 완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전보다 글도 좀 더 수월하게 써지는 기분이다. 이제 두 번째 연구 페이퍼를 시작해야겠다.


 

이 에세이는 미국에서 커뮤니케이션 연구하는 박사과정 학생 Pause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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