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시

케이시애틀 연재 에세이 시리즈:

38살, 박사 유학을 떠나다 | 될 때까지 하는 영어 회화 도전기 | 미운 오리 문과생 치과 의사 되다

나는 미국 고등학교 교사 (완결) | 시애틀로 간 백미와 현미 (완결) | 나의 첫 포틀랜드 (완결)

해외 입양은 어떻게 보내요?

에세이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1-04 10:38
조회
259

시애틀로 간 백미와 현미 (4화)

 

이 글에는 해외 입양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내가 경험한, 해외 입양을 보낸 일에 대한 기록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개를 구조하고, 때로 힘든 상황을 견디고 있을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가 혹은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글이 되기를 바란다. 아니면 막연하게 개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작은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한국에서 중, 대형견들은 입양이 쉽지 않다. 유기견이거나, 보호소에 있는 개들의 경우에도 어릴 때는 그나마 입양의 기회가 좀 더 많은데, 덩치가 커진 다음에는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어서 엄격한 입양 기준을 제시하기도 한다. 좋은 마음으로 개를 입양하려고 했는데, 단체나 개인 구조자 쪽에서 까다로운 입양 기준을 제시하며 입양을 막는다고 비판을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아마 많은 경험을 통해 생긴 구조자들의 노파심이라고 여기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중, 대형견을 구조하게 된 경우 국내에서 입양처를 찾지 못하면 해외 입양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나도 백미와 현미가 국내, 기왕이면 제주도에서 입양가족을 찾아 가까운 데서 지내고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적으로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비교적 덩치가 작은 편인 보리도 반년 동안 입양처를 찾았지만 결국 우리 가족이 되었다. 내가 영향력 있고, 알려진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때 많이 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성견, 그것도 중형견 이상의 종(breed)이 불확실한 개에게 가족을 찾아주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백미와 현미에게 가족을 찾아주겠다고 했지만 딱히 방법을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아이디어로 입양 홍보를 해서 성공적으로 입양을 보내는 사람들이 부럽기만 했다. SNS 게시물을 자주 올리고, 친구에게 부탁해서 포스터를 만들어 주변에 붙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를 해서 주변에 혹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없을까 물어보고, 모든 관심은 개들을 입양 보내는데 쏠려 있긴 했지만, 열정과 성과가 꼭 비례하라는 법은 없었다. 늘 나의 능력 부족을 탓하게 됐고, 내가 뭔가 노력을 덜 하고 있다는 불안과 괴로움에 시달렸다. 국내에서 입양처를 찾아보고, 안 되면 해외 입양을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어떻게 해외 입양을 보내는지도 몰랐다. 인터넷에 정보를 찾아보면 외국에도 안전하게 개를 보내준다는 분양업체의 광고들만 많았다. 있는 개들도 어쩌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시골에 묶여 사는 개들의 중성화 수술을 위해 말이 안 통하는 견주들을 몇 달씩 설득하기도 하는데, 여전히 개를 ‘구입’해서 해외에서 ‘배송’을 받으려는 수요가 있다는 게 좀처럼 실감이 나질 않았다. 내가 보는 것이 현실이 아니기를..

 

해외 입양을 보냈다는 사례들을 찾으면 해외 입양을 보내기 위한 준비나, 이동 봉사자를 만나 출국하는 과정, 도착해서 잘 지내는 모습들은 있었지만 어떻게 해외 입양처를 찾는지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개인간에 해외 입양을 보낼 경우, 이후 상황이 관리가 안 되어 뭔가 일이 있어도 알 수가 없거나, 다 잘 알아보고 보내도 현지에 도착한 후 공항에서 개가 도망쳐 잃어버린 사례라거나,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파양이 되거나 하는 사례들만 자꾸 보여서 아는 건 없이 불안감만 커졌다.

 

내가 백미와 현미를 해외 입양 보낼 수 있게 된 계기는 아주 우연하게 찾아왔다. 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동생이 친구와 함께 내가 일하는 카페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 평소에 연락을 하던 것도 아니었는데, 미국에 있다가 잠시 놀러 온 김에 내가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듣고 온 것이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처음엔 알아보지도 못했다가, 계산을 다 하고 나서야 얘길 해 줘서 알아봤다. 반갑고 놀라운 만남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요새 개들을 구조해서 입양 보낼 곳을 찾아보고 있다는 얘길 꺼냈다.(그 사이 근황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같이 온 친구가 자기가 미국에 들어갈 때 이동봉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알게 된 단체에 물어봐 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떤 도움이라도 절실한 상태였고, 좀 더 나은 상태였다고 했더라도 그의 제안은 정말 반갑고 고마운 것이었는데, 단체들에 도움을 요청해도 대개 과도한 일들에 시달리고 있는 터라 외부의 도움 요청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단체를 소개해 준다는 건 나로서는 기대해 본 적도 없는 행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0년 넘게 본 적이 없던 후배가 갑자기 나를 찾아온 것도, 그리고 해외 이동봉사 경험이 있는 친구와 함께 온 것도 모두 기적 같은 일이다.

 

(반면에 개를 구조하고, 해외 입양을 보내고 싶은데 개인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하기는 (나 역시) 어려운데, 국내에서 개를 구조하고, 해외 입양도 보내는 단체에 문의를 해 볼 수 있다. 출국 전까지 보호와 책임을 다 한다면 해외 단체 연결을 도와줄 단체가 있을 수 있다. 출국과 입양 후 모니터링이 가능한지 확인을 해 봐야 할 것이다. 해외에 있는 개인에게 입양을 보낼 수도 있지만 믿을 수 있는 지인이 있는 게 아니라면 위험 부담이 있을 듯하다. 돈을 받고 해외 입양을 보내준다고 하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어떤 비용을 받는지(해외 입양을 보내기 위한 검진, 접종, 교통비(펫 택시 등), 수하물 비용은 모두 내가 부담했다.) 알아봐야 하고, 개인적으로 그다지 신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 단체에 문의를 하면 최소한 방법이라도 알려주거나, 기다릴 경우 몇 달 뒤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하는 단체가 있을 것이다. 애초에 입양 홍보물을 한국어와 영어로 작성해서 해외 입양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한다.)

 

내가 연락처를 받은 곳은 쉼터를 운영하거나 하진 않고, 구조된 개들을 임보처에서 보살피며 입양을 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해외 단체를 통해 입양을 보내는 곳이었다. 단체라기보다는 봉사자들의 모임 같은 느낌이었는데, 해외 입양을 보내려고 준비하는 개들이 많아서 백미와 현미 차례까지 오려면 봄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동 봉사자를 구하면 수하물 비용만 내고 보낼 수 있지만, 이동 봉사자가 없을 경우 해외까지 비행기 값이 200-300만 원 들 수 있다고 했다.(지금은 두 배 이상 올랐다.) 그래도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이 정말 기뻤고, 한 자락 희망이었다. 어차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니 그동안 국내 입양처를 열심히 알아보고, 백신 접종을 차근히 하기로 했다. 국가마다 요구하는 접종이 조금 다른데, 미국 기준에 맞춰 접종을 하고, 병원은 한 곳을 정해서 다니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나중에 출국 서류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병원인지 먼저 확인을 해야 했다.

 

첫 접종은 집에서 가까운 곳을 갔고, 두 번째 접종부터 단체에서 추천해 준 병원으로 갔는데, 중성화 수술비가 꽤 높은 편이어서 보통 다른 병원의 암컷 수술비용 정도였다. '수술을 더 잘 하나시나 보다' 라고 생각했지만 거의 두 배 정도의 비용 차이를 감당하기는 벅찼다. 백미, 현미 구조할 때 도와주신 단체 대표님께 말씀드렸더니, 연계 병원을 소개해 주셔서 중성화 수술만 그곳에서 받기로 했다. 단체들 끼리도 알고, 미리 얘기를 해서 양해가 된 줄 알았는데, 중성화 수술을 다 하고 접종할 때가 되자 접종을 했던 병원에서 접종을 계속 할 수 없다고 했다. 중성화 수술만 다른 병원에서 받고 온 것이 병원 입장에서는 불쾌할 만한 일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다시 대표님께 소개를 받고 병원을 옮겼다. 애초에 그 병원으로 정해서 접종을 시작하고, 중성화 수술도 한 곳에서 받았으면 좋았을 뻔했다고 생각했지만, 후회할 것도, 생각할 것도 너무 많은 상황에서 지난 일을 하나하나 아쉬워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대로, 아쉬운 건 아쉬운 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다행히 새로 소개받은 병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병원도 크고 깨끗하고,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들도 모두 친절했다. 백미와 현미가 병원에 처음 들어설 때, 우리는 개들이 덩치도 크고 꼬질꼬질해서 걱정했는데 간호사 선생님들이 너무 귀엽다며 마구 칭찬을 해 줘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이 반려견 수첩을 꼼꼼히 보고 접종 스케줄을 설명해 준 것도 믿음이 갔다. 병원에 발자국을 잔뜩 남겨놓고 와서 죄송하고 민망했지만, 백미 현미는 주사도 아무렇지 않게 잘 맞고, 나들이도 하고 돌아왔다. 초반에 병원을 여러 곳 간게 오히려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공간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생기기 전에 병원을 바꿔 감으로써 병원이 무서운 곳이라는 인식이 생기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보리는 동물 병원에 대한 별 생각이 없었지만 다리 수술을 하고 난 후로는 그 병원에 가는 걸 무서워한다. 아마 백미와 현미도 중성화 수술을 한 곳이 어떤 병원이든 그곳에서 계속 접종을 했다면 접종하러 가는 것 자체를 무서워했을지도 모른다.

 

접종을 모두 마칠 때까지 국내 입양도, 해외 입양도 소식이 없었다. 겨울이 왔고, 다 큰 줄 알았던 백미와 현미는 살도 찌고, 키도 자라서 접종을 할 때마다 1-2kg씩 늘었다. 뿌듯했지만 이제 1살이 넘어 진짜 성견이 되어 가는 개들을 바라보는 게 안타깝기도 했다. 유년기, 청소년기가 개들에게는 더 빠르게 지나갈 텐데 조금이라도 빨리 평생 가족을 만나서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안타까움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아직 강아지였던 모양이다. 앳된 얼굴이 사라지고 제법 의젓한 태가 났는데, 아기 같은 모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점점 살이 올라서 그런지 얼굴은 더 예뻐졌다. 입양 전 후 개들이나 고양이들의 모습을 비교한 사진을 종종 볼 수 있다. 식물도 자랄 때 아름다운 말을 들려주면 더 잘 자란다는데, 유기견이었던 아이들이 가족을 만나 몰라보게 환골탈태하는 모습처럼 백미, 현미도 사랑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백미와 현미가 곧 해외 입양을 갈 수도 있다는 얘기는 1월에 들었다. 해외 입양을 도와주기로 한 곳에서 주말에 강아지들과 같이 만날 수 있겠냐고 연락이 온 것이다. 얘기만 나눴을 뿐 한 번도 직접 만나지 못해서 언제라도 만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백미와 현미도 오랜만에 깨끗하게 씻고 외출을 하기로 했다. 꽤 먼 해변까지 외출하는 김에 예쁜 사진도 많이 찍고 오기로 했다.

 

많은 것을 물어보지 않고 일단 만나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더 기쁜 소식을 들었다. 2주 후에라도 출국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아직 실내 생활이 적응이 안 됐으니 실내 생활 적응을 하는 동안 해외 현지에서 입양처를 알아보고, 입양 준비를 하자는 것이었다. 한 달 후 정도로 예정되었고, 샌프란시스코나 시애틀로 갈 수 있으니 이동 봉사자도 구해보자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이동 봉사자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진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한 달 동안 백미 현미를 데려다 줄 이동 봉사자 한 명은 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당장 실내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한 아이라도 임보처를 찾으면 보리까지 두 명을 데리고 실내 생활을 해 보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이 셋이서 함께 지내기를 시작해야 했다. 항공기를 타고 가려면 크레이트 훈련도 해야 했고, 산책 연습도 더 열심히 해야 했다. 희망이 생기면서 동시에 마음도 급해졌다.

 

미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기 전에 곽지 해변 산책을 했다. 우리 동네에서 곽지나 협재, 금능처럼 금모래가 반짝이는 해변까지는 꽤 먼 편이라서 나온 김에 산책도 하고, 예쁜 사진도 찍어주려고 했다. 백미랑 현미 둘 다 사람을 좋아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쁘다고 관심을 보이는 걸 즐기는 것 같았다. 그러다 사진 찍으며 여행을 하는 듯 한 분들을 만났는데, 아이들을 예쁘다고 만져주다가 사진도 찍어 주셔서 뜻밖의 예쁜 사진도 얻었다.

 

백미

 

현미


크레이트가 도착하길 기다렸다가 실내 생활을 시작했다. 이틀 동안 밤에는 보리를 친구 집에 보내고 백미, 현미랑 시간을 보냈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적응을 해서 허무한 느낌이 들 정도였는데, 보리가 오니까 바로 정신없어 지기는 했다. 보리는 멍멍이 친구들과 노는걸 너무 좋아해서 백미와 현미가 귀찮아할 정도로 놀자고 보챘다. 백미와 현미 둘이 있을 때 보다 보리까지 들어오니 집이 확실히 꽉 찼다.

 

백미와 현미가 생각보다 실내 생활에 적응을 금방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일단 백미와 현미가 마당에 있을 때는 보리 하루 2번 산책, 백미, 현미 하루 1번 산책을 했다. 마당에 있으니 배변을 하러 꼭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미와 현미가 실내 생활을 시작하면서 모두 최소 하루 2번 산책을 해야 했다. 백미와 현미를 한 명씩 데리고 각각 산책을 하고 오면, 한 사람이 보리랑 산책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이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식이었다. 저녁에도 비슷했다. 배변패드도 늘 깔아 두었다. 보리는 거의 이용하지 않았지만 백미와 현미는 가끔 실내에서도 배변을 했다. 둘 다 수컷이라 처음에 집에 들어왔을 때는 마킹을 하려는 모습을 보였는데, 처음에 바로 제지하니 그다음에는 하지 않았다. 물론 출국하기 전까지 한 번도 안 했던 것은 아니다. 실내 생활이 더 익숙해지면서 백미, 현미의 경우는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어주면 마당에서 소변만 보고 들어왔다. 보리는 가출할까 봐 마당에 풀어줄 수가 없었는데, 백미, 현미는 아직 바깥에 대한 호기심보다 우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더 높아서 그런지 급한 볼일만 보고 바로 들어왔다. 그렇게 되니 너무 편했다. 아침에 백미, 현미가 쉬만 하고 돌아와도 조금 느긋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산책을 나가는 건 똑같았지만.

 

백미와 현미는 보리보다 덩치가 컸기에 산책도 조금 더 길게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3-40분을 넘기는 힘들었는데, 산책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나중에는 셋이 같이 산책을 나가볼 엄두를 냈다. 처음 셋이 산책을 나간 날은 엉망진창이었지만, 거듭될수록 사람도, 개도 규칙이 생겨 익숙해졌다. 셋이 함께 있을 때는 한 마리를 풀어 주어도 멀리 가지 않았고, 전력을 다 해 한두 번 뛰고 나면 바로 무리로 돌아왔다. 오히려 셋을 한꺼번에 데리고 산책하는 게 더 편해졌다. 다 같이 나가니까 훨씬 더 긴 산책을 하고 돌아올 수도 있었다. 하루 두 번씩 차를 타고 가까운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는데, 다행히 차 타는 것도 좋아하는 강아지들이라 다니기가 수월했다. 겨울이라 바닷가에 사람이 별로 없는 것도 다행이었다. 잠깐씩이라도 뛰어놀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강아지들한테도, 그 강아지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한테도 다행인 일이었다. 백미와 현미랑 있는 동안 보리랑만 있을 때보다 강아지 운동장도 많이 갔다. 근처에 대형견들을 위해 만든 사설 운동장이 있었는데, 회원제 형식이라서 한적하게 다니기가 좋았고, 강아지들을 임보 하거나, 제주에 와서 유기견을 입양한 외국인 선생님들이 있어서 모두 강아지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암묵적인 규칙들이 잘 지켜지고 있었다. 다른 강아지들도 만나고, 신나게 뛰어놀 수 있어서 한 번씩 다녀오면 환기가 되었다.

 

운동장에 다니면서 백미와 현미에게 감동을 받게 된 에피소드도 있었다. 보리는 가출했다가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져 수술을 했는데, 무사히 회복 기간을 거치고 평상시 생활에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심하게 뛰거나 부딪히다가 가끔 접질리거나 통증이 있는 것 같았다. 친구들과 경사가 있는 초원에서 신나게 뛰다가 다리를 절뚝거린 적이 있었는데 그다음부터 한 번씩 심하게 뛰어 논다 싶으면 다리를 들고 쉬거나 절뚝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너무 흥분하면 절뚝거리는 다리를 들고도 계속 뛰려고 해서 잘 보다가 제지해야 했다. 하루는 백미, 현미, 보리랑 다 같이 운동장에 갔는데 뛰다가 누구랑 부딪혔는지 깨깽 소리를 내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제껏 보리가 아프다고 낸 소리 중에 가장 큰 소리였다. 너무 놀라서 바로 안아서 가장자리로 옮겨 안정을 시켰는데, 꼼짝 않고 있는 걸 보니 보리도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혹시 병원에 가야 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알려달라고 할 정도로 큰 소리를 냈고, 꽤 오래 다리를 들고 있었다. 한참 앉아서 쉬고 있으니 좀 나아진 것 같아서 바닥에 내려 걷게 해 보니 멀쩡하게 잘 걸었다. 그래도 뛰게 할 수는 없어 리드 줄을 하고 운동장 가장자리를 천천히 걸었는데, 백미와 현미가 넓은 곳으로 가서 다른 친구들과 놀지 않고 계속 보리와 같이 걷는 것이었다. 백미와 현미가 소속감을 강하게 느끼고, 의리가 있는 강아지들 인 것 같아서 신기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그 운동장에서, 백미와 보리

 

백미와 현미는 천천히 사람과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있고, 낯선 것에 조심스럽긴 해도 경계심은 없는 아이들이라서 쉽게 많은 것에 익숙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보리는 청소기 소리에 익숙해지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는데, 현미와 백미는 거의 처음부터 아무렇지 않아 했다. 일상의 소음들에도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부정적인 소리를 작게만 내도 바로 행동을 멈췄다. 강아지들이 어떻게 사람이 내는 부정적인 사인을 알아듣는 걸까. 많은 개들이 사람이 내는 작은 ‘습’ 소리에 바로 반응하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세 마리 개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시에 해야 할 일은 이동 봉사자 구하기였다. 사실 이 일도 ‘강아지 입양처’ 찾기처럼 해야 할 일이 뚜렷하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말하자면 입양 ‘홍보’처럼 이것도 이동 봉사자 해 주실 분 안 계신가요? 하고 열심히 홍보를 해야 하는데 ‘홍보’라는 일이,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계속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 일인 것 같다. 이 일에 더 재능이 있거나, 업으로 삼고 계시는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그랬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 같은데, 늘 최선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더 노력해야 할 것 같고, 내가 부족해서 일이 안 되는 것 같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것도 사실인 것이 ‘홍보’라는 분야는 내게 늘 자신이 없는 분야였다. 연극을 하면서도 꽉 찬 객석을 누려본 적이 거의 없고, 흥행 성적은 성공과 거리가 멀었으며,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어렵게 300명 정도의 숫자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이상의 관심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싸이월드도, 페이스북도 다른 어떤 SNS에도 불특정 다수가 방문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보리와 무무 입양 홍보를 하며 그런 내 한계를 느끼고 아쉬웠지만, 어떻게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방법은 알지 못했다. 불행한 아이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어렵게 느껴졌다.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는 하는 마음을 갖는 것과 실제로 임보나 입양을 하고 싶어 하는 것도 다른 문제였다.

 

나중에 ‘제주 탠져린즈’ 데뷔 프로젝트를 보고 놀라고 부러웠다. 내가 보리와 무무, 아이비를 만났을 때처럼 열약한 환경에 처해 있는 아이들을 구조해 마치 데뷔를 기다리는 아이돌 연습생처럼 캐릭터를 만들어 주고, ‘탠져린즈’라는 이름에 걸맞게 귀여운 귤 소품을 이용해 사진을 찍어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성공적으로 입양을 보내고 그곳에 남아있던 다른 아이들도 구조해서 입양 홍보를 하고 있다. 대부분은 입양을 갔고, 아직 입양을 가지 못한 아이들도 안전한 임보처에서 지내고 있다. 나에게는 왜 그런 능력이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마치 지뢰밭처럼 평생을 마당 한쪽에 묶여 사는 개들, 목줄을 한 채 또는 목줄도 없이 돌아다니는 개들을 만난다. 제주에 와서 그런 개들을 많이 만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고 나도 그렇다. 개들 때문에 제주를 떠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에 살 때는, 다른 ‘도시’에 살 때는 그런 개들이 안 보였을 뿐이다. 어느 지역이든 조금만 중심지를 벗어나 ‘시골’로 들어서면 그런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은 어디에나 있다. 그런 아이들이 운 좋게 ‘구조자’를 만나면 ‘임보’를 거쳐 ‘입양’을 가기도 하고, ‘해외 입양’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은 정말 운이 좋을 뿐이다. 열약한 환경에서 지내는 게 눈에 띄어 ‘구조’가 된 아이들 중에는 ‘보호소’에 가는 아이들도 많이 있다. ‘동물구조협회’에 신고가 되어 보호소로 가게 된 아이들은 공고 후 10여 일이 지나면 안락사가 된다. 개체 수 조절 없이 보호소를 운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주 어린 아기 강아지들이나, 건강하고 어린 개체들이 제대로 삶을 누려볼 새도 없이 안락사가 되기도 한다. 안락사가 되지 않는다 해도 평생 보호소 밖의 삶은 구경하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어떻게 해외 입양을 보낼 수 있는가’가 아닐 것이다. 최근에는 해외 입양도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비싸진 항공료도 있지만, 미국의 경우는 경기 악화로 입양률은 낮아지고, 유기견 수는 늘어났다고 한다. 내가 백미와 현미를 시애틀로 보내려고 할 때, 입양처가 아닌 임보처만 정해진 상태로 출국을 한다고 하자 시애틀에 거주하시는 이동 봉사자의 가족분이 시애틀에도 버려지는 강아지가 많다며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었다. 백미와 현미는 다행히 임보처에서 바로 입양 갈 곳이 정해져서 현미는 임보처에서 그대로, 백미는 그 이웃으로 입양을 가게 됐지만 이것도 운이 무척 좋은 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백미와 현미를 입양 보내고 모처럼 보리와 세 가족이 한가롭게 살아가고 있다. 그전까지 늘 다른 개들을 신경 쓰느라 보리에게 온전히 집중해 준 적이 없었는데, 보리도 이제야 안정감을 느끼는 듯 한 모습이다. 이 평화를 깨트리지 않으려고 ‘흐린 눈’을 하고 살아간다. 길에 돌아다니는 개를 봐도 잠시 줄이 풀려 자유를 만끽하러 나왔겠거니, 생각한다. 기회가 되면 간식이나 물을 조금 챙겨주겠지만 그 이상의 걱정이나 간섭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한 번은 우리 집까지 쫓아온 요크셔테리어 믹스처럼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산책길에 따라와서 집 마당까지 왔는데 밥과 물을 줘 봤지만 그보다는 사람에게 더 관심이 많은 듯했다. 그러면서도 경계를 했는데, 아주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어서 주인이 없는 강아지라면 잠시 데리고 있다가 입양을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고 마당에 남아 있으면 동물 병원에 데려가 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아이는 어디론가 총총 다시 사라졌다. 아쉽고 걱정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병원에 데리고 가서 주인을 찾으면 좋겠지만 또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 아이라면 어쩌나, 아니면 주인이 없어 또 끝까지 책임져야 하면 어쩌나 걱정이 더 앞섰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내가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는 게(돈이든 마음이든) 실감이 나고 아쉽다.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어 보지만 그게 어떻게 되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내 경험을 적어 놓을 뿐이다.


 

이 에세이는 배우 서기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시애틀로 간 백미와 현미 시리즈를 더 읽고 싶다면: (클릭)

전체 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1

다시 여름

KReporter3 | 2022.11.17 | 추천 0 | 조회 228
KReporter3 2022.11.17 0 228
10

안녕 - 미국에 간 백미와 현미를 볼 날이 있겠지

KReporter3 | 2022.11.16 | 추천 0 | 조회 206
KReporter3 2022.11.16 0 206
9

이른 봄 - 백미와 현미 출국하다

KReporter3 | 2022.11.15 | 추천 0 | 조회 198
KReporter3 2022.11.15 0 198
8

눈이 오는 날에 - 백미와 현미의 실내 생활 적응기

KReporter3 | 2022.11.14 | 추천 0 | 조회 196
KReporter3 2022.11.14 0 196
7

깊어가는 겨울 - 백미 현미와 함께하는 실내 생활

KReporter3 | 2022.11.11 | 추천 0 | 조회 185
KReporter3 2022.11.11 0 185
6

개들도 추워요 - 마당에서 겨울을 맞이한 백미와 현미

KReporter3 | 2022.11.09 | 추천 0 | 조회 215
KReporter3 2022.11.09 0 215
5

생일 - 백미와 현미 그리고 수수의 생일

KReporter3 | 2022.11.07 | 추천 0 | 조회 174
KReporter3 2022.11.07 0 174
4

해외 입양은 어떻게 보내요?

KReporter3 | 2022.11.04 | 추천 0 | 조회 259
KReporter3 2022.11.04 0 259
3

콩이와 시루, 백미와 현미가 되다 - 강아지들을 데리고 나오다.

KReporter3 | 2022.11.03 | 추천 0 | 조회 226
KReporter3 2022.11.03 0 226
2

다시 만난 여름 - 다시 개들을 구하려고 하다.

KReporter3 | 2022.11.02 | 추천 0 | 조회 186
KReporter3 2022.11.02 0 186
1

시애틀로 간 백미와 현미 - 프롤로그

KReporter3 | 2022.11.01 | 추천 0 | 조회 195
KReporter3 2022.11.01 0 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