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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와 시루, 백미와 현미가 되다 - 강아지들을 데리고 나오다.

에세이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1-03 12:27
조회
226

시애틀로 간 백미와 현미 (3화)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할아버지는 수컷인 새끼들 두 마리는 쉽게 데려가라고 했다. 대신 아이비는 중성화 수술을 지원받기로 동의했는데, 일단은 그것만이라도 큰 다행이었다. 개 세 마리, 그리고 그중 두 마리만 구할 수 있게 된 것이 작년과 너무 같은 상황이라 속상하고 기운이 빠졌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하기로 했으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갓난 아기 때 얼굴을 지금과 비교할 수 없어서 남은 새끼 두 마리의 이름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 다만 흰 모색을 지닌 아이들이 셋, 좀 더 베이지 빛의 모색의 지닌 아이들이 둘이어서 색깔을 따서 이름을 지어줬던 대로 흰 아이는 콩이, 베이지 빛의 아이는 시루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우리 집 마당에 데려와도 딱히 안정적으로 지낼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처음엔 원래 있던 자리를 좀 더 정비해 주고 자주 보살펴 주는 방향으로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마주치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강아지들을 보러 드나드는 것도 부담되었고, 또 견주가 개들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때 빨리 개들을 데리고 오는 게 좋다는 동물단체 대표님의 조언도 있어서 일단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오기로 결정했다.

 

이런 상태에서도 주인으로부터 즉각 구조를 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

 

너무 속상해서 다시 보고싶지 않은 사진


강아지들을 데리고 나오기로 한 날에도 혹시 할아버지와 부딪히게 될까 봐 친구들에게 부탁을 했다. 교회에 가기 전에 데리러 오라는 할아버지 말에 따라 일요일 오전에 예전 집 근처 바닷가의 정자에서 커피를 마시고 강아지들을 데리러 갔다. 우리는 동네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친구들이 개들을 데리고 나오면 만나기로 했다. 할아버지가 우리와 마주쳐 마음을 바꾸거나 또 갈등이 생길까 봐 긴장이 됐다. 다행히 친구들은 별 일 없이 개들을 데리고 나왔고, 아마도 조금 덩치가 커져서 묶여 지내고 난 뒤에는 처음 골목 밖을 벗어나는 것이었을 개들도 잘 따라 나왔다고 한다. 밖에서 보면 낯설어하지 않을까 조금 긴장도 됐는데, 개들도 우리를 낯설어하지 않고 바로 잘 따랐다. 준비해 간 밥도 잘 먹었고, 물도 잘 마셨다. 개들을 데리고 나온 친구가 이빨과 귀 속을 꼼꼼히 살폈는데, 둘 다 너무 마른 것 빼고는 건강해 보였다.

 

좌 1,2 현미,우 1 백미


밖에 나온 아이들을 본 친구는 콩이와 시루라는 이름보다는 백미와 현미가 어울릴 것 같다고 했다. 이름을 바꾸는 걸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그 이름이 찰떡처럼 잘 어울려서 이름을 바꿔주기로 했다. 백미는 예전에 보리가 있던 자리에 묶여 있던 털이 하얀 아이다. 골목 안에 숙소가 있어서 가끔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손길을 받거나 간식을 얻어먹은 적이 있는지 현미보다 덜 마르고, 성격도 더 밝아 보였다. 현미는 무무가 묶여 있던 자리에 있던 아인데, 무무가 떠난 후로는 관리가 안 되었을 곳에 수풀이 우거져 그 안에 개가 있다는 것도 일부러 가 본 사람이 아니면 몰랐을 거고, 골목을 다니는 사람들의 눈에도 잘 띄지 않았을 것이다. 볼품없이 말라 있었고, 털이 뭉쳐 엉겨 붙어 있었다. 표정도 조금 더 예민한 듯 보였다. 그래도 다행히 둘 다 처음 하는 산책을 잘했다. 바로 차에 태워 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동네를 조금 산책하고 오기로 했는데, 예전에 보리와 아이비와 함께 다녔던 길이었다. 아이비와 새끼 강아지들들 돌려보낸 뒤로는 가 보지 않았던 동네였고, 오래 있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강아지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짧은 산책이어도 즐거웠다. 9월 초순 오전의 따끈한 햇볕과 선선한 바람이 마치 다 잘 될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좌 백미, 우 백미, 현미


개들은 다행히 차도 잘 탔다. 보리와 아이비를 처음 차에 태울 때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금세 차에 올라탔다. 차에 타서는 약간 멀미를 하는 듯 헥헥거렸지만 백미는 곧 턱을 괴고 엎드리기까지 했다. 차 안에 먼지 냄새가 가득 찼다. 앞으로 갈 길이 멀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두 마리를 끔찍한 곳에서 데리고 나왔다고 생각하자 그것만으로도 큰일을 해 낸 것 같았다.

 

표정이 잘 나온 쪽이 현미


울타리를 지어 줄 생각이었지만 데려오기 전에 준비할 시간은 없어서 일단은 마당에 잠시 묶어 두고 지내기로 했다. 잠시 쉬었다가 오후가 되어 강아지들을 데리고 나와 주었던 친구들이 와서 목욕하는 걸 도와줬다. 목욕은 한참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크게 힘을 들이지는 않았다. 백미와 현미는 많이 긴장하긴 했지만 그래도 순한 아이들이어서 순순히 잘 따라줬다. 작업실 바닥에 담요를 깔고 먼저 씻긴 백미를 데려다 놓았는데, 그 아이들이 태어나 한 달 동안 지냈던 곳에 9달이 지나 다시 돌아오게 되다니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하지 않았어도 될 고생을 하고 데려온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어미와 다른 형제들을 두고 두 마리만 데리고 온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뽀송하게 씻기고 밝은 곳에서 보니 너무 예뻐서 웃음이 나왔다. 현미는 털이 너무 많이 엉키고, 진드기도 많이 붙어 있어서 친구들이 털을 다 밀어주었다. 꼬리 끝만 사자 꼬리처럼 남기고 몸을 다 밀어서 볼품없이 마른 몸이 다 드러났다. 털에 감춰져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털이 없으니 뼈가 드러나 몸이 너무 앙상했다. 진드기 투성이 풀 더미 속에서 밥도 못 먹고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예민함이 묻어 있는 얼굴 표정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래도 작고 날렵한 몸과 얼굴이 귀여웠다.

 


작업실과 집 사이 복도에 매트를 깔고 재우기로 했다. 작업실 안에 재우고 싶었지만 나무와 기계들이 있는 곳에 오줌을 눌까 봐 재울 수가 없었다. 이미 한 차례 누가 싸 놨는지 모르는 물웅덩이를 경험한 다음이었다. 강아지들은 오늘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고 있었고, 계속해서 조금 흥분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 바람처럼 복도에서 얌전하게 있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걱정처럼 문을 넘어오거나 많이 짖거나 하지 않고 첫날밤을 무사히 지냈다.

그다음 할 일은 아이들과 병원에 가서 예방 접종을 맞히고, 산책도 하고 사회성을 기르면서 입양처를 찾는 일이었다. 쉬운 일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과연 입양을 보낼 수 있을까, 입양 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단체에서 도와주시겠다고 한 바가 있고,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하자면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기본적인 검사를 하고, 예방접종을 시작하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동물병원에 갔다. 병원 건물까지는 잘 들어갔다가 문 앞에서는 겁을 내고 주저앉는 바람에 거의 끌다시피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별로 힘들이진 않았다. 마구 칭찬을 하면서 정신없이 들어갔다. 사상충 검사도 음성이었고, 주사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 맞았다. 개들이 커서 그런지 더 무던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겁은 많은 듯했지만.

 

병원 가는 길

 

복도에서는 며칠 잘 자는 것 같았는데 며칠 지나고 나자 문을 밀고 나오기 시작했다. 혹시 문을 넘어서 나올까 봐 나무판을 덧대 높여두긴 했는데, 하루는 둘이 합세를 했는지 꽤 무거운 나무문을 밀고 탈출을 했다. 잘 시간이 되어 복도에 개들을 들여보내고 나서 조금 있다가 다시 나가봤더니 복도 문은 열려 있고 개들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하얗게 질려서 나는 그 길로 골목 밖으로 뛰어 나가고, 용이는 차를 가지고 나왔는데, 골목을 벗어나 얼마 안 가서 돌아오고 있는 개들을 만날 수 있었다. 편의점까지 다녀왔는지 편의점 봉투를 틀고 있는 웬 낯선 사람이 아는 체를 했다. 그 사람이 술에 취한 것 같아 자세한 얘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아연실색한 경험이었다.

 

마당에서 지내던 시절


그래서 결국 개들은 복도에서도 자지 못하고 마당에 묶인 채 잠을 자게 되었다. 날씨가 덥지도, 춥지도 않고 한동안 비도 안 와서 다행이었다.

마당 한쪽에 울타리를 세우고 지내게 해 주려고 생각했는데, 막상 데리고 와서 마당 가장자리에 한 마리씩 묶어 놓고 지내다 보니 울타리를 쳐 개들을 구분해 놓는 것이 썩 좋은 방법처럼 생각되지 않았다. 물론 울타리의 가격도 걱정해야 할 상황이긴 했지만, 울타리를 쳐서 개들을 묶어 놓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하게 되면 산책도 더 소홀히 하게 되고, 오히려 개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시간이 줄어들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개들은 당분간 더 마당 양 쪽에 묶여 있게 되었다.

 

복도에서 잘 생각이 없는 개들

 

 

대신 꽤 괜찮은 집을 지어줬다. 빠레트 위에 나무집을 짓고 경사진 지붕을 얹어 방수포를 덮어 빗물이 새는 것을 방지한 집을 똑같은 모양으로 두 개를 만들어 각자의 자리에 놓아주었다. 하지만 개들은 오래 바깥 생활을 해서인지 좀처럼 집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몇 번 안 쪽에 간식을 집어넣자 들어가고 나오는 건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몇 번 익숙해 지자 현미는 더 예민하다고 생각했던 성격과 달리 밤에는 곧장 집에 들어가서 쉬는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더 무던하다고 생각했던 백미는 여간해서는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밤에도 집에 들어가서 자지 않았고, 비가 많이 올 때나 겨우 집에 들어갔다.



 

이 에세이는 배우 서기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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