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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 백미와 현미 그리고 수수의 생일

에세이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1-07 13:28
조회
175

시애틀로 간 백미와 현미 (5화)

 

2020년 11월 19일은 백미와 현미의 생일이다. 백미와 현미가 태어날 때, 그러니까 어미인 아이비가 여섯 마리 아기들을 낳을 때 마침 우리가 그 집에 갔다. 다시 임신을 한 개 때문에 걱정이 많았고, 당장 우리 집에 데려올 수도 없는 처지이기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고민도 많이 했다. 할아버지가 개들을 데려가라고 할지도 알 수 없었지만, 몇 마리가 될지 모르는 강아지들을 모두 책임질 각오를 하기엔 우리도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잠시 밥을 주러 들른 집에 창고 안에서 아이비가 새끼를 낳고 있었다. 우리를 보자 흥분해서 준비해 간 간식을 허겁지겁 먹더니 다시 들어가 새끼를 한 마리 또 낳았다. 우리가 반갑기도 하고, 배가 고프고 힘들고 아프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무섭고 복잡하고 힘든 심경이었을 것 같다. 마침 우리가 갔을 때 새끼를 낳고 있다니... 무거운 쇠줄을 하고 새끼들 위로 다녀서 잠시 줄을 풀어줬더니 막 낳은 새끼를 물고 흙을 파서 구덩이에 넣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날이 추워서 조금이라도 따뜻한데 넣어주려고 했던 걸까. 불안해서 그랬을까.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창고는 당연히 엉망진창이었고, 구석에 더러운 옷가지들이 쌓여있는 틈바구니에서 새끼를 낳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도저히 개를 두고 올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안 계셔서 전화를 했는데, 어미가 너무 힘들어 보이고, 추운데 새끼들도 걱정되어 일단 데리고 가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했다. 잘 키워달라고 해서, ‘네? 키워달라고요?’ 했더니 ‘클 때까지 키워 달라고’했다. 그때 전화를 녹음해 뒀어야 하는 건데..

 

차에 있던 스티로폼 박스에 아이들을 넣고 옷으로 덮어 데리고 오는데 새끼들이 자꾸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뒷자리에 태운 아이비는 자꾸 앞으로 나오려고 하고.. 내 무릎 위에 있는 새끼들 걱정도 되고, 자기가 어디로 가는 건지 불안하기도 했겠지. 아이비를 처음 차에 태웠던 날에는 무서워서 응가도 하고, 쉬도 했었는데, 그날은 20분 정도의 거리를 우리 모두 무슨 정신으로 집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 작업실에 이불을 깔고, 전기장판을 깔고 아이비와 새끼들이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줬다. 물과 사료도 넉넉히 가져다 놨다. 새끼들과 잠시 쉬는 것 같던 아이비가 곧 일어나서 서성거렸는데 다리 사이로 붉은 것이 번지는 것처럼 보였다. 뭔가 잘못되어 피가 나는 건 아닐까 머릿속이 차가워지는데, 새끼를 한 마리 더 낳는 것이었다. 덜렁거리기만 하고 나오질 않아서 용이가 손으로 잡아주었다. 여섯 번째 새끼를 낳는 순간이었다. 아직 새끼를 다 낳지 않은 상태에서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래도 안정적인 곳에서 출산을 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비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괜히 몸도 안 좋은 상태의 아이를 데리고 와서 고생을 시킨 건 아닐까, 새끼들에게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게다가 아이비는 계속 숨을 헐떡거려서 더 불안했다. 수의사에게 물어보니 헐떡거리는 건 아파서 그럴 수 있고, 낯선 곳이라서 불안할 수 있으니 최대한 편하게 있게 해 주라는 말을 들었다.

 

나중에는 그 시간을 후회하기도 했다. 사실 처음 강아지들을 데리고 왔을 때는, 이 아이들을 다시 데려다 놓아야 한다면 괜히 애써서 다 살려냈다고, 어쩌면 자아가 생기기 전에 잘못되는 편이 어미와 아이들에게 더 낫지 않았을까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데리고 와서 아이들을 돌보고 자라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절대 강아지들을 다시 데려다 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결국 데려다 놓았고, 반년이 지나서야 다시 데리고 올 엄두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귀여운 아이들이 겪을 수도 있을 끔찍한 상황들을 상상하는 것보다, 강아지들을 절대 보내지 않겠다고, 혹은 원래 주인에게 보내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때 감당해야 할 상황들이 더 힘들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절대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강아지들을 데려와서 바로 다음날부터 할아버지가 말을 바꿔 새끼들을 데려오라고 했기에 하루도 마음 편하게 강아지들을 볼 수가 없었다. 강아지들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고, 정말 예뻤다. 어디라도 마음만 먹으면 입양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강아지들은 나의 ‘소유’가 아니었고 마음대로 어딘가 보낼 수도 없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할아버지한테 개가 다섯 마리라고 곧이곧대로 말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고, 몇 마리는 죽었다고 할 걸 생각도 했고, 한 달만 더 보살필 테니 말미를 달라고 무릎이라도 꿇었어야 하는데 후회를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후회는 후회일 뿐 결국 내가 구한 건 백미와 현미 두 아이뿐이다. 다행히 아이비도 그 집을 떠날 수 있었지만 그건 내가 애쓴 덕분은 아니었다. 지금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다른 강아지들 생각이 많이 났지만 그래도 우리 집에 있는 두 녀석, 그리고 부모님 댁에 있는 한 녀석을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었다.

 

어미 개인 아이비 중성화 수술을 시켜주기 위해 잠시 데려왔다가 발작하는 모습까지 본 다음이라서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생일 전에 특식도 주문해 놓기는 했었다. 요즘에는 강아지 케이크도 많이 만들고, 나도 주문해서 예쁜 생일상을 꾸며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아기 돌상이 왜 그렇게 예쁜지 드디어 알게 된 것 같았다.) 세 명의 식성을 감당하기에 조그맣고 비싼 케이크는 적절하지 않을 것 같아 습식 사료를 주문하는 걸로 대신하고, 수수네 집(부모님 집)에만 수제 간식과 작은 강아지용 케이크를 보냈다. 엄마가 초도 켜고 노래도 불러줬다. 엄마 아빠가 수수를 안고 작은 케이크를 아이스박스 위에 얹어놓고 노래를 불러 주는 모습이 귀여웠다. 백미와 현미, 아이비는 습식 사료를 넉넉히 먹는 것으로 생일 축하를 대신했다. 차분하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줄 여유까지는 없었다. 개들이 생일 축하 노래 불러 주는 걸 알까.. 맛있는 거 먹는 게 제일 좋지 하고 생각했다.

 


생일 케이크 앞의 수수

 

잠시 우리 집에 왔다가, 발작하는 것 때문에 급히 구조하려 했던 아이비는 다시 할아버지 반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할아버지는 개가 아파도 10만 원 이상은 못 쓴다고 했으면서도 데리고 오라고 고집을 부렸고, 실제로도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지만, 아이비는 주인이 그 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에 돌아가야 했다. 동물등록도 안 했고, 그 할아버지는 법적으로 해야 할 의무를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개가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다행히 아이비는 의외의 사건, 의외의 타이밍으로 구조가 되었다. 아이비가 개척한 운명이라고 할 수 도 있겠다. 내가 끝까지 구조에 관여하기 못 했기 때문에 여기에 자세히 쓸 수는 없지만, 지금은 새로운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발작을 하는 문제도 있었고, 전에는 몰랐던 유선종양까지 발견돼서 중성화 수술을 하면서 같이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발작 때문에 중성화 수술도 못 할 줄 알았는데, 잘 맞는 약을 찾아서 이제는 발작도 안 하고, 수술도 받을 수 있었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하고, 한동안은 분리불안도 있어서 함께 사는 사람들을 고생하게 했지만, 지금은 애교가 많은 강아지로 기쁨을 주고 있다고 한다. 개가 아픈 걸 알면서도 기꺼이 모든 걸 감당하고 품어준 분들이 있어서 아이비가 새 삶을 살 수 있었다.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벅찬 일이었고, 아이비가 그렇게 큰 행운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도 못했는데, 아마 어떤 운명 같은 게 있었던 것 아닐까. 우리에게도, 아이비에게도, 아이비의 가족에게도. 아이비가 새끼들을 낳고 우리 집에 있을 때 그 아이가 원하는 만큼 충분히 예뻐해 주지 못한 것 같아 늘 미안하고 마음에 걸렸는데, 이제 좋은 가족을 만나 원 없이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괜히 내가 뿌듯하고 배부른 마음이 든다. 그전에 부르던 이름에 상처가 너무 많은 것 같아 이름도 바꿔 주었다고 한다. 그 할아버지에게는 어떤 감정이었을지 모르겠으나 방치로 고통받던 아이, 가끔 던져주는 비닐봉지 속 음식 쓰레기와, 빗물이 고여 썩은 물밖에 먹을 게 없던 아이. 외로움에 마음의 병이 생긴 아이. 힘들어도 새끼들을 살뜰히 보살펴낸 아이. 이제 아무 고생 없이, 많은 것을 누리며 평생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이 에세이는 배우 서기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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