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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고백

에세이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0-26 15:58
조회
194

모교의 스파르타 교육이 빚은 결과

(이 에세이는 시애틀 닥터오의 치과 스토리의 번외편입니다)



 

2011년 5월, 저는 캘리포니아 중부에 위치한 작은 사립 치과 전문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제 모교가 궁금하시겠지만, 홍보 의도가 없고, 혹시라도 갑작스러운 치과 입시생들의 폭주를 막기 위해 학교 이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저를 개인적으로 알고, 느낌으로 아시는 분들은 대략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우리끼리 비밀로 해요. ^^;

제 모교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그런 학교들처럼 스포츠팀이 있거나 마케팅을 하지 않습니다. 학교가 작기도 하지만, 최정예의 학생들을 알차게 준비해서 세상에 보낸다는 철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조용한 학교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명문대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비 리그 만큼은 아니라.

현재 미국에는 공식적으로 임플란트 전문의라고 인정해주는 학교가 손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습니다. 그중에 저희 모교가 속해 있으며, 제일 처음으로 임플란트 전문의 수료 과정으로 채택되고 인정된 학교이기도 합니다. 이 사실을 아는 발 빠른 한국의 좋은 치과 선생님들은 저희 학교로 많이 유학을 오십니다. 또한 International Dental Program(IDP)이 잘 되어 있어 전 세계 치과 선생님들이 이곳으로 모입니다.

간혹 학교 방송국에서 "닥터 봉창펜", "닥터 뽐뿌루뽐쓰끼", "닥터 울롱빡뿌리" 와 같은 라스트 네임을 불려집니다. 사람 이름 갖고 웃으면 안 되지만, 참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 날이면, 한 달치 웃을 웃음을 다 웃으며 학교에 IDP가 건재하고 있음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제가 학교에 재학 중일 때는 서울대 치대 졸업하신 분들이 주로 임플란트나 다른 전문의 과정을 밟기 위해 많이 오셨습니다. 이외에도 전남대 치대와 김일성 대학 치대가 자주 방문을 했습니다. 북한에서 온 분들이 한국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말을 잘 섞지 않으려고 눈길을 피하던 그들의 얼굴이 생각이 납니다. 한반도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북쪽, 중부, 남쪽에 위치한 학교들이 모교를 찾아주시니 미소가 아니 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힘겨웠던 학교 생활 때문에 모교가 준 혜택을 오랫동안 간과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지금도 학교 근처만 가도 배가 사르르 하고 머리 한쪽이 지끈지끈 아파옵니다. 몸이 아직 그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증거겠지요.

몸은 몸이고, 내 마음은 이제야 글로나마 모교에 큰 감사를 표해봅니다. 문과생으로 어렵게 입학을 했고, 재정이 넉넉하지 못해 4년 내내 한 학기, 한 학기를 손 바늘로 꿰매듯이 이어 붙였습니다. 졸업 또한 쉽지 않아, 제 때에 졸업하기 위해 종종 가출할 것 같은 정신을 꽁꽁 싸매고 면허가 나올 때까지 꿋꿋이 버티며 기다렸습니다. 졸업할 때는 학교가 꼴도 보기 싫더니 10년쯤 지나니 나를 키워준 학교가 새삼 고마워지네요.

학교를 졸업과 동시에 대부분의 모교 출신들은 레지던트 과정 없이 바로 환자를 볼 수 있을 만큼 실력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모교 출신 선배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갓 졸업한 친구들을 데려가기도 했고, 큰 그룹 치과에서는 쌍수로 환영했습니다. 물론 실력이 좋다는 초년생 치과 의사들은 거의 노예 수준으로 쓰이기 때문에 그리 좋은 것만도 아닙니다. 이런 사실이 어느 정도 미국 전역에 정평이 나 있었나 봅니다. 제가 졸업할 때쯤, 발간된 US News에서 모교를 갓 졸업한 치과의사들의 연봉이 미국의 여느 초년생 연봉과 비교해 랭킹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 기사를 읽고 조금 놀랐지만, 그만큼 치과 의사로서 빠른 시간 안에 잘 정착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겠지요.

내 모교가 치과의사로서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환자와의 유대관계를 강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의 모토가 “To Make Man Whole!”이었습니다. 이 말은 몸과 마음을 돌보아 온전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이 때문에 입학시험 과정에서 그룹 인터뷰가 아니라 개인 인터뷰를 한 시간 가량 하면서 지원자가 의사로서 대화를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포텐셜이 있는지, 성품이 어떠한지를 매우 꼼꼼히 봤습니다. GPA와 DAT결과가 서부와 동부의 내로라하는 학교에 부족함 없이 합격할 만큼 최고의 성적이었지만, 인터뷰에서만 몇 년째, 줄줄이 낙방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등골이 서늘했었습니다. 대체 학교가 원하는 대화 기술과 인품이 어떤 것이길래 그런 능력 있는 지원자들에게도 등을 돌리게 되는지 혀를 내둘렀지요.

둘째는 치과 의사로서의 기술적인 면모를 확실히 갖추는 것이었습니다. 충치 치료, 치주염 치료, 신경 치료, 보철 치료, 틀니 치료, 발치까지 환자를 치료하며 분야별로 충족해야 하는 일련의 점수가 있었습니다. 환자 차트를 정리하면 전자 시스템 상으로 반에서 내 점수에 대한 등수를 잘 알 수 있었고 그 덕에 어느 정도 경쟁의 재미도 붙였었지요. 한편으로는 각 분야의 점수를 다 따내지 못하면 졸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점수를 맞추지 못해서 6개월에서 1년을 학교에 머무르며 고생했던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면허 시험에까지 지장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모든 각각의 치료는 3학년 때부터 Competency라는 모의시험을 여러 번 치러야 했습니다. 이 과정은 4학년 졸업 시험을 연습하는 좋은 기회들이었고, 과장을 보태서 토할 때까지 시험을 봤고, 4학년 때가 되어 치르던 모의시험은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이력이 났었습니다. 모의시험에 해당하는 환자의 치아 상태를 고르는 것도 쉽지 않았고, 환자 선별에서 탈락이 되면 모의시험 자체를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쓴 물과 단물을 수도 없이 먹고 뱉으며 학교의 스파르타 교육을 온몸으로 감내했었습니다.

셋째는 치과 기공소가 없이도 혼자의 힘으로 버틸 수 있도록 기술을 연마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교육 방법 때문에 우리는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환자의 입에 들어가는 크라운을 디자인하고 Milling을 하고 틀니도 디자인하며 모든 스텝을 꼼꼼히 밟지 않으면 환자를 치료할 수가 없었습니다. 간혹 남학생들이 그 Milling기술로 여자 친구에게 금반지를 만들어 선물하거나 프러포즈하는 것을 보기도 했지요.

매 과정마다 손이 떨리고 힘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모교의 이런 헝그리 정신의 교육 때문에 모든 졸업생들이 지금도 시간과 재료와 기구만 있으면 스스로 크라운과 틀니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기술을 잘 배워둔 덕에 대부분의 모든 치과 기공소들의 실력이 단 번에 파악됩니다. 우리는 기공소분들에게는 까다롭지만, 이것은 환자들을 올바로 치료하기 위한 또 하나의 좋은 기술입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학교가 돈이 없어 학생들을 뺑이친다.’며 불평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겹도록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게 해 준 학교에 감사합니다. 환자들이 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할 때는 내가 아니라 학교를 향해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학교의 이 모든 교육 철학 덕에 대화의 기술과 치과의 기술을 잘 배우고, 치과의사로 일하는 모든 Alumni들이 좋은 피드백을 받고 있습니다. 다른 주에서 이사 온 환자들 중에, 모교의 이름을 대면, 예전에 살던 주에서도 자신의 치과 의사가 내 모교와 같았다면서 여러모로 예전 닥터의 칭찬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 칭찬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닥터의 훌륭한 치료와 환자와의 유대관계 덕에 내 어깨까지 올라가는 기분을 느낍니다.

아직도 정신적 트라우마 때문에 학교를 방문하는 것이 마냥 기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치과 의사로서 잘 살아갈 수 있으니 잘 키워준 모교가 고맙습니다. 치과 스토리를 시작하면서 요즘 학교가 더 그리워 몇 자 적어 봤습니다.



 

이 글은 브런치 작가 시애틀 닥터오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시애틀 닥터오 님의 치과 스토리를 더 읽고 싶다면: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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