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채
작성자
이석주
작성일
2007-11-01 22:49
조회
3275
지구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자신과 닮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각 자가 개성이 뚜렷하고 그리고 재능과 능력이 다릅니다. 자신의 전공분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경험이 없고 알지 못하는 분야는 아무리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 하더라도 문외한이 되는 것입니다. 잘하는 분야가 있고 못하는 분야가 존재합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역으로 거슬러 가는 것은 그만큼 자신에게 고통이고 불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계곡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보트를 타고 가면 순풍에 돛단듯이 수월하게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역으로 물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에 가깝고 힘도 소진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에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은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 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것이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고 그것은 가시 채찍을 발로 차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겪는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못 알고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사울을 주님은 그것이 가시채임을 알려 주시고 계십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은 세상에서 부를 누리고 세상에서 명예와 권력을 누리는 것이 그들의 목표가 되어 그 길을 걷습니다. 어쩌면 그 길을 성취한다 하더라고 그 길은 가시채를 발로 차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기쁨을 누리기 보다는 그들에게 가시채로 인한 불안과 고통과 아픔이 그들을 옥죌 것이 분명하기에 그렇습니다. 세상속으로 깊이 들어 가면 갈수록 가시채에서 벗어 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안에서 순종하고 주님만을 믿고 사는 길이 가시채에서 자유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주님을 알았기에 핍박자에서 복음전도자로 주님의 빛을 이방인에게 비추는 그릇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역경과 고통속에서도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와 찬미와 기도가 나왔던 것입니다. 주님을 인정하고 주님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이 인도하는 대로 핸들을 내 주었을 때에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고 주안에서 평안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기에 환란과 역경과 고통이 항상 따라 다니게 됩니다. 고통이 오고 험한 비바람이 온다 하여도 하나님의 길을 걸어야지 세상으로 발길을 향하게 되면 가시채로 인하여 점점 낙망하게 되고 무너지는 삶이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오직 구원 그 자체만으로 감사와 기쁨의 감격이 나올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