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트가 있습니까?
에이전트가 있습니까?
20여년 전, 대학에서 부동산 과목을 수강하고는 내쳐 부동산 교육을 받고 면허를 획득한 후 처음으로 부동산 회사에 입사하였던 일이 떠오릅니다. 미국인이 운영하는 큰 회사였는데 당연히 부동산 에이전트로 첫 발을 내딛은 사람이니 처음 시작한 그 회사에서 여러가지 부동산 실무를 익혀나가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도 저를 포함하여 새로 입사한 몇몇 직원들에게 중요한 사항들에 관한 교육이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상황에 맞춰서 부동산 계약서를 직접 작성하여 가져오게 하면서 수정할 곳을 지적하는 등 이론으로 배운 것을 체계적으로 실제 상황에 적용하는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이었지요.
그 때의 기본적인 교육 가운데 아주 중요하게 강조하던 것이 바로 처음 만나게 될 손님들에게 “부동산 에이전트가 있습니까?” (Do you have an agent?) 하고 묻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손님들과 만나기에 앞서 전화로 문의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서로 인삿말을 주고받은 후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 손님에게 바이어의 에이전트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은 필수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부동산 에이전트가 매물을 문의하는 바이어에게 다른 정해둔 에이전트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 바이어가 정해둔 에이전트가 없을 경우라면 바이어와 약속을 하고 현장을 답사하는 등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지만, 그 바이어에게 다른 에이전트가 있다면 부동산인의 윤리상 다른 에이전트의 고객을 가로채는 듯한 행동은 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에이전트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은 부동산인 자신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고객이 되지 않을 사람에게 리서치하고 만나서 답사하는 등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는데 막상 그 바이어는 다른 에이전트가 있어서 그 사람을 통하여 계약을 맺게 되는 일을 미리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인의 경우 바이어가 집을 보는 동안 자신의 부동산 에이전트를 정하지 않고 여러 에이전트들을 만나는 일을 종종 보게 됩니다. 열흘 전에 어떤 회사의 어떤 에이전트를 만나서 집을 보았는데 이번엔 다른 회사의 다른 에이전트를 만나서 같은 지역, 혹은 다른 지역의 집을 보는 등 자신의 부동산 에이전트를 정하지 않고 여기저기 광고의 매물만 보고는 전화해서 매물에 따라 여러 에이전트들을 만나는 것이지요. 시애틀을 포함한 워싱턴주의 모든 주택 매물들은 리스팅을 공유하기 때문에 매물에 따라 부동산 에이전트를 바꿀 필요는 전혀 없는데도 이런 일은 지속적으로 발생합니다. 아무래도 이것은 바이어의 에이전트 선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바이어가 자신의 에이전트를 정하지 않은 상태로 여러 에이전트를 만나게 되는 것은 바이어에게도 아주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새로 만난 에이전트가 열심히 좋은 매물을 찾아서 함께 답사를 나섰는데 막상 가보니 지난 번 다른 에이전트와 함께 갔던 곳이 되기도 합니다. 그제서야 다른 에이전트와 여러 집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니까요. 이런 상황은 에이전트로부터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뜨리는 일이 됩니다.
자신의 부동산 에이전트를 선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까지 만난 부동산 에이전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후에 새로 부동산 에이전트에게 전화하여 그 부동산 에이전트가 “손님께선 에이전트가 있습니까?” 하고 물어왔을 때 터놓고 말해두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집을 보았는데 아직까지 부동산 에이전트를 정하지 못한 상태지만 당신을 만나보고 신뢰가 가면 자신의 부동산 에이전트로 정하기로 하겠습니다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