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호러라는 탈을 쓴 영화에 대한 헌사 | <놉> 단평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08-23 02:53
조회
131

※ <놉>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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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필 감독의 <놉>이 드디어 국내 개봉하였다. <겟 아웃>, <어스>로 독보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해오던 감독의 최신작은 이번에도 다른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놉>은 얼핏 호러처럼 보인다. 분명 호러적인 이미지들이 있으나 이 영화의 장르를 단순히 호러라고 정의하기에는 애매하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이 영화는 호러의 탈을 쓴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헌사가 더욱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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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필 감독의 전작들처럼 <놉>도 '무엇인가 일어날 것만 같은 음산한 분위기'로 시작되고 중반 이후까지 이러한 기조를 유지한다. 말 목장을 운영하는 OJ는 하늘에서 떨어진 갑작스러운 물체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를 잃은 뒤, 아버지와 같이 하던 영화 촬영장에 말을 대여해주는 일까지 잃고 만다. 그러던 와중 자신의 말 농장 하늘 위에 이상한 물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것이 UFO라는 것을 알게 된 OJ는 자신의 동생 에메랄드와 함께 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UFO를 추적하는 이야기처럼 보이던 영화에서 분기점이 되는 것은 UFO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 '괴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괴물'의 특성 중 하나는 바로 절대로 길들일 수 없는 야생성이다. 이 야생성은 이전까지 영화 속에서 제대로 된 의미를 드러내지 않았던 침팬지 '조디'의 이야기와 연결된다. '조디'의 이야기는 인간이 동물의 야생성을 통제할 수 없으며, 그것을 계속해서 억압하는 순간 폭발하여 참극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참극에서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마을에서 큰 테마파크를 운영하고 있는 주프이다.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하고 피가 낭자했던 촬영 현장에서 주프는 침팬지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공격당하지 않고 오히려 침팬지와 교감까지 시도한다. 그는 이 일로 인해 자신이 이러한 야생성에 얽매이지 않은 유일하게 선택받은 인간이라는 착각을 갖게 된다. 그의 착각은 곧 비극으로 이어진다. 주프는 자신이 발견한 UFO를 쇼로 활용하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UFO를 여러 번 목격한 순간 이미 그의 생존본능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UFO가 아닌 괴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끔찍한 비극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신이 그것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고, 그 결과 그 자리에서 쇼를 구경하던 사람들 모두 괴물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 끔찍한 죽음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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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에 대한 정체가 드러난 이후 영화의 인트로에서 보였던 알 수 없는 이미지가 바로 괴물의 입속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기는데, 네모나게 보이는 괴물의 입속에서 재생되는 '말을 탄 흑인의 짧은 영상은 무엇인가?'이다. 에메랄드가 영화 촬영 현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말을 타고 가는 흑인 남자의 짧은 영상은 미국 영화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활동 사진이다. 물론 괴물의 입속에서 이러한 영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영화 초반 어떻게 이런 기묘한 이미지가 나온 것인가?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조던 필 감독이 영화에 대해 갖는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하나의 이미지로 합쳐진 듯하다. 말을 타고 달리는 흑인 남자의 짧은 영상은 영화에 매혹된 이미지를, 어두컴컴한 괴물의 입속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온전히 길들일 수 없는 영화라는 예술의 야생 같은 이미지가 겹쳐진 것이다. 영화는 감독이 의도에 따라 연출되며 감독의 지시에 따라 모든 스태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완성되지만, 완성된 영화는 감독의 의도했던 바와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영화로 완성될 수 있다. 자신이 모든 것을 이끌고 만들었지만, 완성된 영화가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가버리는 순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조던 필 감독은 그러한 영화에 대해서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야생 같음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영화라는 환상에 매혹되어 있음을 <놉>이라는 영화를 제작함으로써 보여준다. 흥미로운 지점은 조던 필 감독이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매혹 되어 있으면서도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가 저질러왔던 만행들을 확실하게 짚어준다는 점이다. <놉>에서는 할리우드 영화 역사 속에서 제대로 호명되지 못한 흑인들을 확실하게 조명한다. 영화의 첫 시초인 활동사진을 촬영한 배우이자 스턴트맨 그리고 동물 조련사였지만 미국 영화 역사 속에 이름조차 등재되지 못했던 흑인, 대부분의 영화 속에서 몇몇 대형 배우들을 제외하고는 주인공이 되지 못한 채 항상 백인의 조연으로서 머물러야만 했던 흑인 배우들.(<놉>에서는 흑인이 아닌 백인이 조연에 머무른다.) 영화 역사 속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졌던 이들은 <놉>에서 비로소 자신들의 이름과 정체성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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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정체가 드러난 뒤, OJ와 에메랄드는 괴물의 정체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마지막에는 그 괴물을 처치하기로 마음먹는다. UFO는 여전히 제대로 된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즉, 악이라는 것이 확실해졌고 여기서 악과 인간의 대결로 전환된다. 특이한 점은 영화가 코스믹 호러를 차용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맞서 싸우려고 하는 인간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코스믹 호러의 장르 속에서 인간은 보통 자신의 인지를 뛰어넘은 엄청난 존재에 대한 공포감에 사로잡혀 무력감을 느끼면서 미쳐버리거나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놉>의 주인공들은 다르다. 이들은 공포에 휩싸이지만, 괴물이 가진 특징을 파악해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한다. 이러한 장르 법칙의 변주는 처음 분위기와 사뭇 달라 마치 영화가 갑작스럽게 힘이 빠져버린 것처럼 느껴지게 하지만, 이를 통해서 <놉>은 더욱 다채로운 영화가 된다. 한 가지 결로만 판단할 수 없는 다양한 가지를 가진 영화로서 보는 이들마다 서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풍부한 영화가 되는 것이다. 


 


<놉>은 <겟 아웃>, <어스>와 같은 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겐 당혹스럽거나 실망스러운 영화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씨네필들에겐 확실히 어필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은 영화이지만, 대중들에게는 쉽사리 다가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영화의 관습들을 뒤틀면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존경심을 가득 담아 만든 영화. 어쩌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요즘 같은 시대에 진정한 영화 다움이 무엇인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출처brunch.co.kr/@songoflucia


 


이 영화 리뷰는 브런치 작가 songoflucia 님의 동의하에 게시되었습니다. 작가님의 다른 글을 보시려면 위 브런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 미국 워싱턴 주 최대 한인 커뮤니티 케이시애틀은 양질의 영화리뷰 기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정된 작가님은 블로그/브런치/웹사이트 링크를 게시글에 남겨드립니다. 작품 기고: contents@kseatt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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