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한산>에서 풍기는 아이돌 서바이벌의 향기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08-29 18:50
조회
183

yDCKa6FuGDyE1nkuPYFfxHr5W2E

<한산> 스틸컷

<한산: 용의 출현>을 보며 낯설음과 익숙함을 동시에 느꼈다.

먼저 이 영화의 연출 방식이 조금 낯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이런 연출을 어디선가 본 듯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건 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를 한참 고민하다가 엉뚱하게도,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한산>의 후반부에서 본격적으로 해전이 펼쳐질 때, 이 영화가 강조하는 것들이 있다. 그건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인물 클로즈업, 배의 진열, 그리고 거북선의 등장.

ylCzJSQqtyYy3Jqzhn2N4GW6uaY   FCWU_0zEm6ELYsV-we0-8YZ28fw

<한산>은 전쟁 영화 중에서도 인물 클로즈업이 많은 편이다. 이순신의 근엄한 얼굴, 일본군의 놀란 얼굴 같은. 그건 전투를 강조하는 동시에 관객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놀란 일본군의 얼굴을 보며 이순신의 위용을 직감할 수 있고, 그들이 중얼거리며 전술을 설명할 때("아니 저것은 000이 아닌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를 단번에 파악한다.

그런데 이런 점을 고려해도 이 영화는 하이라이트에서 유독 얼굴 클로즈업을 많이 쓴다. 그러니까 <한산>은 얼굴 이미지 그 자체에 순수한 매혹을 느낀다는 인상이다. 이것은 우리가 커다랗게 클로즈업된 얼굴 이미지들이 연이어 등장하는 방식의 연출을 자연스럽게 느낀다는(이상하지 않다고 느낀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3fUlRlr0CxdHO2kT-87O3B58wkU

그리고 <한산>은 배들의 진열에 집중한다. '학익진'이 메인 테마가 되는 영화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영화는 단순히 학익진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렬로 늘어선 배, 좌우로 방향을 트는 배등 다양한 진열을 꼼꼼히 보여준다. 그것들은 마치 하나의 그룹이 무대 위에서 동선을 맞추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QtosnbflX5IJjLGfxN3xxXqY6Vs

그리고 거북선이 등장하는 순간들. 영화는 말 그대로 거북선이 위엄 있는 자태로 두둥 등장하는 것에 포커스를 맞춘다. 이때 거북선은 전장을 '밀고 들어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물살을 가르며, 혹은 다른 배들을 부수며 진격하는 저 아름다운 배. 이것이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쾌감이다. 물론 거북선의 활약도 대단하지만, 등장의 순간이 주는 즉각적인 카타르시스를 부정하기는 힘든 일이다.

이런 연출은 다소 신선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산>에서는 바다 위의 배들을 부감으로 찍거나, 롱 숏으로 전체를 담는 장면은 적은 축이다. 이 영화의 후반부는 배들의 움직임과, 그에 대한 인물들의 리액션을 담은 클로즈업으로 작동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이런 연출이 낯설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낯익음을 느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기분. 그리고 이런 낯익음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 생각하다 K-pop 아이돌의 무대를 떠올렸다.

BnL9yZrYzjGkSWweN8IJBH_eh24

배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과 칼 같은 배열은, 아이돌들이 무대 위에서 동선을 맞추며 열정적으로 춤추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그리고 인물에 클로즈업하는 이미지들은, 무대 위에서 멤버의 얼굴을 향해 달려가는 카메라를 연상시킨다. 전체 배열, 달라지는 동선을 보여주고, 때때로 얼굴에 클로즈업하는 것. 이것은 아이돌 무대의 연출 방식이 아닌가?

한 가지가 더 있다. 유독 자주 나오는 일본군의 클로즈업. 이건 무대 위 아이돌과 경쟁하는 다른 그룹의 얼굴과 닮았다. 그러니 이것은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서바이벌 무대인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거북선이 등장한다. 이 그룹의 메인 멤버. 이번 무대를 찢어놓을, 이번 화의 주인공. 그는 화려하게 등장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실력을 입증해낸다. 승패가 결정되고 라이벌은 탄식한다. 승리는 우리의 것. 다음 무대를 기약하며 이번 화가 끝이 난다.

허무맹랑한 상상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영화와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으니, 공통점이 있다 해도 그저 우연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며 같은 공기를 마신다. 문화는 매체를 가리지 않고 침투하며 여기저기를 오간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국가에 등장한 비슷한 것들의 출몰을 목격하고 있다. 나는 자주 알쏭달쏭한 기시감을 느낀다.



이 영화 리뷰는 영화평론가 홍수정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brunch.co.kr/@comeandplay)

케이시애틀에 올라온 영화평론가 홍수정 님의 영화리뷰를 더 보고 싶다면: (클릭)
전체 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245

우리에겐 미소 지을 일이 제법 있었다

KReporter3 | 2022.09.22 | 추천 0 | 조회 129
KReporter3 2022.09.22 0 129
244

적절한 개그, 그러나 심각한 우연

KReporter3 | 2022.09.21 | 추천 0 | 조회 134
KReporter3 2022.09.21 0 134
243

만추의 거리 시애틀

KReporter3 | 2022.09.19 | 추천 0 | 조회 181
KReporter3 2022.09.19 0 181
242

사랑이 지나간 자리

KReporter3 | 2022.09.19 | 추천 0 | 조회 145
KReporter3 2022.09.19 0 145
241

지브리 작품별 명장면 BEST 3

KReporter3 | 2022.09.16 | 추천 0 | 조회 131
KReporter3 2022.09.16 0 131
240

아들이 되찾아 준 아빠의 행복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KReporter3 | 2022.09.13 | 추천 0 | 조회 141
KReporter3 2022.09.13 0 141
239

내 사랑 maudie

KReporter3 | 2022.09.09 | 추천 0 | 조회 147
KReporter3 2022.09.09 0 147
238

'포식자'가 아닌 '사냥감'의 이야기 | 댄 트라첸버그 2022

KReporter3 | 2022.09.07 | 추천 0 | 조회 130
KReporter3 2022.09.07 0 130
237

요란스러운 재앙 체험관, <비상선언>

KReporter3 | 2022.08.30 | 추천 0 | 조회 167
KReporter3 2022.08.30 0 167
236

<한산>에서 풍기는 아이돌 서바이벌의 향기

KReporter3 | 2022.08.29 | 추천 0 | 조회 183
KReporter3 2022.08.29 0 183
235

속도감 없는 탄환열차 | <불릿 트레인> 데이빗 레이치 2022 (1)

KReporter3 | 2022.08.26 | 추천 0 | 조회 184
KReporter3 2022.08.26 0 184
234

영화 「브로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22) | 더 심심했으면 좋았을, 브로커

KReporter3 | 2022.08.24 | 추천 0 | 조회 174
KReporter3 2022.08.24 0 174
233

기독교 관점에서 ‘조커'가 위험한 영화인 이유

KReporter3 | 2022.08.23 | 추천 0 | 조회 147
KReporter3 2022.08.23 0 147
232

호러라는 탈을 쓴 영화에 대한 헌사 | <놉> 단평

KReporter3 | 2022.08.23 | 추천 0 | 조회 130
KReporter3 2022.08.23 0 130
231

아무리 채워도 부족한 시간 | 영화 <풀타임> 리뷰

KReporter3 | 2022.08.22 | 추천 0 | 조회 110
KReporter3 2022.08.22 0 110
230

'놉(NOPE)'을 재밌게 볼 수 있는 추천 경로 | 다소 황당해할 분들도 '그나마' 재밌게 볼 수 있는 '스포 無' 가이드 (1)

KReporter3 | 2022.08.21 | 추천 0 | 조회 134
KReporter3 2022.08.21 0 134
229

'장사리:잊혀진 영웅들'이 10 월 11일 시애틀을 찾아온다!

KReporter | 2019.10.05 | 추천 0 | 조회 155
KReporter 2019.10.05 0 155
228

<타짜: 원 아이드 잭> 9월 20일 패데럴 웨이 개봉 확정, 린우드 개봉 예정(미확정 )

KReporter | 2019.09.15 | 추천 0 | 조회 155
KReporter 2019.09.15 0 155
227

라이언 킹 (2019)

KReporter | 2019.09.06 | 추천 0 | 조회 194
KReporter 2019.09.06 0 194
226

영화 사자 8월 16 일 패데럴 웨이 개봉

KReporter | 2019.08.12 | 추천 0 | 조회 241
KReporter 2019.08.12 0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