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성공을 부르는 창업노트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0-18 14:40
조회
187

1.

 보통의 연구자들은 남의 서베이(survey)로는 좀체 논문을 쓰지 않는다.

 대부분의 서베이는 당해 연구자의 목적에 의해 설문이 설계되기 마련이라, 그로 인해 다른 목적의 연구에 활용하기 무척 어렵다. 변수 통제 자체가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서 그렇다. 그렇다 보니, 2차 자료로 쓰여진 논문의 신뢰는 꽤나 낮은 편이다.

 다만, 통계청에서 조사하는 각종 통계기초자료나 각부처에서 실시하는 실태조사와 같은 자료들은 꽤나 가치중립적 상황에서 큰 표본수로 조사가 이루어지다 보니, 그 2차 자료를 활용한 연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보통 공공기관 연구용역에서는 꽤나 빈도높게 2차 자료를 활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뛰어난 연구성과보다는 용역비용이 더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그 용역실적이 다음 용역을 다시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

 컨설턴트 선배 두 명과 함께 '창업과 실패'라는 주제로 책을 기획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요즘 창업에 관한 대중서들을 좀, 꽤, 썩, 제법, 퍽이나 많이 읽는 중이다. 많이 읽는다고 해봐야 지금껏 열 권 남짓이나 되려나 하지만, 그 권수를 읽어내는 것도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니다. 책방 창업기와 같은 에세이 수준의 책들은 카운트에서 제외했다.

 여튼, 그렇게 하나둘씩 접하다 보니, 생각보다 참 잘 썼다 싶은 책들이 서가에 쌓이고 있다. 바라볼 때면 제법 흐뭇해지기도 한다. 물론 그 와중에 '이 따위를 책이라고 썼나" 하는 혹평 끝에, 다 읽지도 않고 책장을 덮어버리는 경우들도 왕왕 있었다.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독서는 중단되었다.

 첫째는 책이 원하는 내용을 제대로 담고 있지 못했다. 제목과는 다른 부실한 내용이나 주제와 거리가 먼 편집기획을 보여주었다. 탄식을 내뱉으며 책장을 덮을 수밖에 없다.

 둘째는 책이 제대로 정리된 글을 품지 못하고 있을 때다. 파워포인트로 만든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그대로 수십장씩 올려놓은 책을 보자면, 이게 책인가 하는 생각에 골이 아파질 지경이다.

 마지막 셋째는... 문장이 개판인 경우다. 문장조차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글이 내용인들 제대로 담아낼 리가 없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빨리 덮는 것이 좋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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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이 책은 글러먹었다 싶었다.

 목차를 살펴보다가, '마음을 담아라 보틀북스'라는 챕터를 발견했다. 낭패감이 밀려온다.

 이미 여기서부터 불만은 쌓이기 시작했다. 채도운의 에세이를 참으로 창조적으로 오독하고 있었다. 음식점업의 창업 5년 생존률이 22.5%에 불과1)한 요즘에는 코로나 팬데믹을 견디고 생존5년차를 맞이했으니 성공한 카페 중에 하나라고 할 수도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이후에도 전처럼 북카페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엄마는 카페에 떼수건을 팔라고 하셨어』 를 '창업'과 '자서전'으로 엮는 것은 비상식을 넘어서 몰상식한 지경에 이른다.

 '성공한' 카페나 책방들의 경우는 프랜차이즈사업으로 가맹점을 늘리거나 분점을 통해 외연을 확장하는 등의 양태를 보여주는 상황에서 '성공의 예'라고 할 수는 없다. 일단 이 챕터에서부터 이 책은 아니겠다 싶었다.

 다시 앞장으로 돌아가 읽어보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아폴로 효과(apollo effect)2)라는 것이 있다. 똑똑한 놈들만 모아놨더니, 지들끼리 잘났다 떠드느라 배가 산으로 가면서, 성과를 내는 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더란 것이다. 신뢰성 높은 리더와 다양한 능력을 갖춘 조직원으로 구성될 때, 비로소 가장 높은 생산성을 보여준다는 것도 아폴로 효과를 도출해낸 벨빈의 연구 결과이기도 하다. 인사조직관리론에서도 동의하기 힘든 넷플릭스의 사례에 '무한긍정'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뒷골이 땡겨올 지경이다.

 심지어 『규칙 없음』은 리드 헤이스팅스가 자신의 경영철학을 정당화하기 위해, 에린 마이어를 고용해서 윤색한 책이다.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에린 마이어의 학자적 양심이 리드 헤이스팅스의 뇌피셜과 자신의 견해를 분리해서 기술하는 방식으로 책을 썼다는 것이다. '빨아주기 위해 쓴 책이니 독자들이 알아서 걸러 들을 것'을 구성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이 죄다 이런 식이다. 각각의 책에 대한 리뷰로서도 당최 좋은 리뷰라고 할 수 없는 글들을 한 데 그러모아서는 '성공을 부르는 창업 노트'라는 얼토당토않은 제목을 붙였다. 최악의 출판기획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가장 어이없는 것은, "자서전을 통해 창업 성공의 방법론을 고민한다"는 글인데 리뷰한 책들 중에 '자서전'이라 부를 수 있는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4.

 플랫폼P의 줌강연에 나와서 어수웅 기자가 스스로 밝힌, 잘 썼다고 생각한 기사가 하나 있다. 북리뷰를 잘 쓰는 법이란 강연 주제와 관련해, 북리뷰가 생업인 북섹션 기자로서의 고충을 토로하면서 예시로 든 글이라서였을 것이다. 조선일보에 대한 개인적 혐오의 시선만 조금 걷어낸다면, 생각해볼 것이 참 많은 글이었다. (참고: [편집자 레터] '옆집의 나르시시스트'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



요즘 이런 대중 인문서의 트렌드는 작가의 주장과 유용한 사례 그리고 통계의 균형잡힌 서술입니다. 하지만 '옆집의 나르시시스트'는 통계나 사례보다 작가의 주관적 취향이 더 많더군요. 누구나 끌리는 주제인 만큼 누구라도 설득할 수 있는 사례와 자료가 중요했을 텐데요.

 최근 끝까지 읽는 책들이 이런 조건을 만족했을 경우였고, 작가의 주관적 관념이 통계나 사례를 압도하는 경우에는 책을 덮었던 것이다.  가끔씩 도비라 사진에 있는 다른 책도 기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구입하곤 한다. 지금 책을 기획하고 있는 우리들이 만나서 늘상 하는 말의 파편을 그대로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파편들을 그러모아 하나의 체계를 잡아서 원고의 환류작업을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선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고 글을 마칠까 한다.

 아무리 대중서라고 해도, 한계는 있다. 갖출 건 갖춰야 한다. 그걸 갖출 수 없다면, 남의 운동장에는 난입하지 말자. 책과 독자에 대한 기본 예의다.







1) 임성희,  김진옥. <개인 창업사업체 생존분석: 2010~2018 행정데이터를 중심으로>, 『통계연구2021』, vol.26, no.2, pp. 1-30 (30 pages)

2) Belbin, R. M. (1981). Management Teams: Why They Succeed or Fail (3rd ed.). Oxford, UK: Butterworth-Heineman





이 북리뷰는 TESS경영컨설팅 출간작가 안철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brunch.co.kr/@pdahn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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