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역사 속 아픈 기억을 소환하는 이유.. | 소설 『파친코』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10-10 13:56
조회
206

명성황후, 소녀상, 창경궁, 재일 조선인의 공통점은 모두 일본이 남긴 슬픈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슬픈 역사의 흔적은 어디까지일까. 작가 이민진(Min Jin Lee)은 대학 진학 후 우연한 기회로 일본에서 일어나는 재일 조선인과 그들의 후손을 차별한 슬픈 역사의 흔적 '자이니치(Zainichi)'를 알게 되었다. 슬픈 역사의 흔적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그녀는 일본에서 일어난 차별과 혐오의 역사를 소설을 통해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집필은 『조선』을 거쳐 『파친코』에서 완성되었다.


디아스포라(Diaspora) 그리고 영원한 이방인(異邦人)이 되어버린 사람들

고대 그리스어에서 ‘~너머’를 뜻하는 ‘디아(dia)’와 ‘씨를 뿌리다’를 뜻하는 스페로(spero)가 합성된 단어인 ‘디아스포라(Diaspora)’는 헤어져 흩어짐을 뜻하는 이산(離散) 또는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을 의미한다. 소설『파친코』는 조선 말기 혼란을 피해 일본으로 이주해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재일 조선인의 이야기다.

작가는 이야기를 훈이라는 남자로부터 시작한다. 훈이를 거쳐 양진, 고한수, 선자, 노아, 모자수,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등장인물들은 일본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지만, 처음부터 그들은 어디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이방인(異邦人)이었다.


“일본인들은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 아기가 어떻게 이곳에서 살아갈까요?”  <이민진(2022), 파친코, 문학사상, p155>

어른이 되고 난 뒤 전쟁과 억압을 피해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이주해 살아가는 양진, 고한수, 선자와 다르게 노아, 모자수, 솔로몬은 어린 시절부터 일본에서 태어나 이방인으로서 살아가고 어른이 되어 결혼한 뒤 일본에서 아이를 낳고 살아간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인이 아닌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차별과 경계 그로 인한 그들의 괴로움은 『파친코』 곳곳에서 절절하게 묘사된다.


다른 모든 아이들처럼 노아에게도 비밀이 있었지만 평범한 비밀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노아는 백노아가 아니라 보쿠 노부오라는 일본식 이름을 사용했다. 물론 반 친구들은 한국 성을 일본식으로 읽는 노아의 이름이 평범한 일본 이름과는 달라서 노아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 사정을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노아는 그 사실을 자세하게 밝히지 않았다. 노아는 대부분의 일본인 아이들보다도 더 일본어를 잘 말하고 잘 썼다. 교실에서는 부모님이 태어난 한반도 이야기가 나올까 봐 두려워했고, 혹시라도 선생님이 조선 식민지 이야기를 할 때면 종이만 내려다보며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민진(2022), 파친코, 문학사상, p270>

작가는 재미 한국인이기에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가 재일 조선인의 삶에서 발견한 차이점을 그려낸다.


“미국에서는 강꼬꾸징(韓國人)이니 조센징(朝鮮人)이라는 게 없었어. 왜 내가 남한 사람 아니면 북한 사람이 돼야 하는 거야? 이건 말도 안 돼! 난 시애틀에서 태어났어. 우리 부모님은 조선이 분단되지 않았을 때 미국으로 갔고.”피비가 그날 하루 동안 편협한 대우를 받았던 일들 가운데 하나를 소리 높여 이야기했다. “왜 일본은 아직도 조선인 거주자들의 국적을 구분하려고 드는 거야? 자기 나라에서 4대째 살고 있는 조선인들을 말이야. 넌 여기서 태어났어. 외국인이 아니라고! 이건 완전 미친 짓이야. 네 아버지도 여기서 태어났는데 왜 너희 두 사람은 아직도 남한 여권을 가지고 다니는 거야? 정말 이상해.”<이민진(2022), 파친코, 문학사상, p315>

그것은 여전히 존재하며 이주민을 괴롭게 한 경계, 혐오, 차별 그리고 그로 인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그들의 괴로움이었다. 저자는 이점을 알리고 싶어 한 것 같다. 일본에서 일어나는 재일 조선인에 대한 경계, 혐오, 차별이 역사에 의한 강제적 이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이주민을 괴롭게 하고 있다고 말이다. 어쩌면 4대에 걸친 혐오와 차별에 대한 묘사는 지금도 여전히 일본에서는 재일 조선인에게 혐오와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파친코’ 일 수밖에 없는 삶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 노아, 모자수, 솔로몬은 각자가 원하는 삶이 달랐다. 노아는 문학을 사랑했으며 일본인이 되고 싶어 했고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지만 뜻하지 않게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출생의 비밀에 충격받은 노아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일본인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할 수 있는 일이란 파친코였다. 정의로운 성격의 모자수는 어렸을 적엔 사고뭉치로 살아가지만 파친코 종업원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사고뭉치로부터 벗어났지만 파친코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은 외국에서 공부했고 외국계 은행에 취업도 했지만 차별받는 재일 조선인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스스로 파친코를 선택한다. 결국 노아, 모자수, 솔로몬 모두가 파친코를 벗어나진 못한 것이다.


“아버지.”
“솔로몬.” 모자수가 외쳤다. “아무 일 없지?”
“피비가 돌아갔어요.”
아버지에게 말하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솔로몬은 빈 의자에 앉았다.
“뭐라고? 왜? 네가 일자리를 잃어서?”
“아뇨. 난 피비와 결혼할 수 없어요. 전 일본에서 살 거라고 피비에게 말했어요. 파친코에서 일할 거라고요.”  <이민진(2022), 파친코, 문학사상, p373>

노아, 모자수, 솔로몬에게 파친코는 어디를 가도 경계와 혐오 그리고 차별을 받는 재일 조선인으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파친코는 야쿠자와 얽힌 불법적인 일을 하는 천대하는 직업이라는 선입견을 품고 있는 일본인의 시선은 차가웠다. 결국 재일 조선인에게 보내는 경계와 혐오 그리고 차별에 파친코 직업의 선입견까지 겹쳐진 눈길은 재일 조선인을 더 얼어붙게 했다. 그런데도 파친코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들은 정직하고 착하게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아무런 이유가 없는 혐오의 시간이 그들을 갉아먹고 있었다. 불합리한 일들을 멈출 방법은 없는 것일까?l1fUib6Jt4q6SsEmnVY5cHnw4rg.jpg'다름' Photo by Mulyadi on Unsplash


『파친코』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이민진 작가가 30년간 고민하며 그려낸 『파친코』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조선인이지만 전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일본에서 살아간다. 『파친코』는 그 속에서 일본인이 되고 싶어 함에도 일본인도 조선인도 되지 못한 채 이방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과거 일본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잊히고 있는 이러한 불합리함을 『파친코』를 통해 전 세계에게 알려주고 있다. 다행스럽게 그녀의 이야기는 최근 거세게 불고 있는 K-문화의 바람을 타고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고 우리나라에선 역사 속 재일 조선인에 대한 기억을 불러왔다.

집단 문화와 이지메(왕따 또는 집단 따돌림) 문화가 지배적인 일본은 ‘집단 밖의 세계’가 ‘집단 안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집단 안의 질서’를 위해 집단을 무너뜨리려는 ‘집단 밖의 세계’를 집단 따돌림(이지메)시켜 억압한 뒤 영향력을 없게 만들어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헤이트(Hate)』에 따르면 잘못된 공감 의식이 차별과 혐오를 발생하게 하며 불안감은 이를 가속한다고 한다. 전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이민 간 재일 조선인은 일본인 입장에서 ‘일본 집단 밖의 세계’ 였고 자신들만의 ‘일본 집단 안의 질서’를 무너뜨린다라는 잘못된 공감 의식을 가진 것이다. 잘못된 공감 의식을 가지고 있던 일본인은 자꾸만 ‘일본 집단 밖의 세계’로 생각되는 재일 조선인을 경계, 혐오 그리고 차별하였고 1900년대의 제2차 세계대전은 이를 가속화시켰다. 문제는 잘못된 공감 의식이 지금까지 남아 계속된다는 데 있다. 당연히 멈추어야 하지만 알려지는 것이 적었고 그마저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작가는 이러한 아픔의 세계를 알리고 멈추자고 하는데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 『파친코』는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다고 본다.

해결 방법에 대한 논의는 문제가 외부로 충분히 알려지고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야 진행될 수 있다. 『파친코』로 재일 조선인의 고통이 충분히 알려졌다면 이제 그다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차례이다. 우리는 이제 무엇을 이해할 것인가를 넘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서지 정보

지은이: 이민진(Min Jin Lee)

옮긴이: 이미정

제목: 파친코

판사항: 1판 38쇄

발행처: (주)문학사상

출간 연도: 2022년 4월 15일

페이지: 366면(1권), 399면(2권)


Reference

끌로이(2022),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파친코>, 브런치 [https://brunch.co.kr/@evesy/281]

나무위키: 디아스포라 [https://namu.wiki/w/디아스포라]

몽접(2022), 소설 <파친코>, 브런치 [https://brunch.co.kr/@94f5f898ec7246c/478]

박쌤(2022), 파친코 소설 이틀만에 완독 - 쉽게 읽히는 책 그러나..,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okayjune/222878257215]

성호철(2015), 와! 일본: 응집하는 일본인의 의식구조 해부, 나남

온라인 두산 백과: 디아스포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86036&cid=40942&categoryId=31599]

최인철 외 8인(2021), 헤이트(Hate):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 마로니에북스



이 글은 교사 지하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brunch.co.kr/@jhkim4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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