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나는 왜 남의 눈치만 보고 살았을까?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2-09-07 00:17
조회
338

나는 왜 남의 눈치만 보고 살았을까.jpg

나는 왜 남의 눈치만 보고 살았을까? | 최리나 지음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어떤 날은 지나치게 슬픈 글을 듣게 된다. 그런 날은 수업이 끝나고 나는 집에 왔고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온전히 엄마의 역할로 돌아왔음에도 몸은 좀처럼 돌아오지 못했다. 들을 때는 가슴이 답답했고 듣고 난 후에는 집에서 몇 시간이고 침대에 붙어있었다. 특히 그 글이 누군가의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일 때는 수업이 끝난 지 반나절이 지나도록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요즘 수업이 늘어나고 내게 다가오는 글들이 늘어났다. 원래 공감을 잘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글쓰기라는 작업을 하고 나서부터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내가 마치 그 사건을 겪은 듯한 기분이 되고는 했다. 글은 마음의 어딘가 지하로 내려가서 쓴다. 그래서 보통 어둡고, 보통 고요하고, 보통은 슬퍼진다. 한 없이 밝아지기만 하는 글은 많지 않다.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도 그랬다. 작가는 힘들다고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읽는데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리고 나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 이십 대 중반이었고 빠르게 걷고 있었다. 산길이었던 것 같다. 낮이었고, 걷다 보니 시골에 있을법한 식당이 나왔다. 나는 그 식당으로 뛰어갔다. 식당 사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지금 누가 따라오고 있는데요. 그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만 여기 좀 숨어있을게요.”

그는 괴한이 아니라 내가 4년이나 만났던 남자 친구였다. 그가 바람을 펴서 내가 추궁을 했는데 그가 오히려 화를 내서 그게 내가 무서워서 도망가는 상황이었다. 그때까지 그가 나를 때린 적은 없지만 그날은 때릴 거라고 생각해서 그 식당에 숨었다.

그날의 분위기는 내게 의문을 남겼다.

‘이렇게 무서운 사람과 그럼 내가 4년을 연애를 했다고? 그럼 나는 여태 뭘 한 거지.’

그날부터 나는 모든 일은 멍청해서 당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믿어서 당하는 것도 아니고 한발 내딛으면 바로 발을 뺄 수 없는 구조로 사람은 엮기게 만들어졌다고 믿게 되었다. 나 역시 몇 년이 지나고 비로소 발을 떼었을 때 그제야 새로운 세상이 보였다. 발을 떼기 전엔 한치의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어째서.



이 책에서 나는 그걸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아무 폭행도 당하지 않았던 나와 달리 저자는 엄청난 사건을 겪지만 그녀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선택지들이 이해가 되었다.  나 역시 식당으로 도망치게 만든 그가 처음에 내가 공부하던 독서실에 찾아와서 XX 년이라는 말을 했을 때 사실 바로 헤어지지 못했다. 그런 말을 듣고도 3일이 지나면 그와 함께 밥을 먹었다. 제육볶음, 김치찌개, 삼겹살, 닭발, 치킨 이런 것들을 먹으면서 흔한 대화를 했다. 그는 주로 같이 일했던 김 과장에 대해 말을 했고 나는 독서실에서의 일들을 얘기해주었다. 그는 정장을 입고 나는 운동복을 입은 채. 흔해빠진 일상이었지만 내게 쌓이고, 또 쌓였다.

그의 말이 대부분 거짓이 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도 나는 오후 4시 그의 집 근처 갈빗집에서 갈비를 굽고 있었다. 그리고

“맥주 한잔 마실까.”

나는 그때 맥주 정도밖에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빠져나오지 못했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저자는 결국 모든 것에서 빠져나왔다. 지금은 다른 선택지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슬픈데 슬프다고 끝난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 좋다. 저자는 이를 통해 배운 점을 말해준다. 사건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왜 나는 그 갈빗집에 있었을까. 책의 저자는 왜 그렇게 늦게 이혼을 했을까.'     

그 답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이런 부류의 상처 치유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독자가 책임질 필요는 없다고 느끼므로) 감정의 배설물을 쏟아내는 식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단지 취향) 그런데 이 글은 생각보다 군더더기가 없었고 내면에 너무 꽂혀있지도(?) 않은 점이 좋았다. 스스로 눈치를 많이 본다고 느끼는 사람을 포함해서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네라고 말하기 망설여진다면 읽기를 추천드린다.



이 북리뷰는 『무심한 듯 씩씩하게』의 저자 김필영 님이 제공해주셨습니다. (brunch.co.kr/@kpy705k)
전체 1

  • 2022-09-07 22:21

    심풀!!! 친일군사독재 사이비재벌족벌 정치의 후유증!!!

    친일군사독재 사이비재벌족벌들이 때려죽인 지식인들의 양심이 살아야 민족과 나라가 산다.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북조선 권력자들도 이 사이비들에 속하는 것은 다 아시겠지 게글은 달지 말것!!!

     

    하지만 더 비참한것은 이것들에 휘둘려 서로 헐뜯고 죽이자고 싸우는 것이다... 그것도 지들 주머니 챙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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