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극복해야할 비극이 아니야
작성자
KReporter3
작성일
2023-02-14 14:55
조회
185
"장애, 극복해야할 비극 아냐"…신간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
미국 디자인 연구가가 쓴 장애와 비장애 이야기
크리스가 기저귀를 가는 모습
보스턴 외곽에 사는 크리스는 태어날 때부터 팔이 하나였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공학자이기도 한 그는 한 손과 두발, 그리고 남아 있는 다른 팔을 기막히게 조합해 일상을 영위했다. 글을 쓸 때 종이를 붙잡거나 겨드랑이에 물건을 끼고 조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들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그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간단한 도구를 제작했다. 일종의 발걸이였다. 이 도구를 이용해 오른쪽 팔로 아들의 다리와 등을 들어 올리면 그 상태에서 기저귀를 치우고 엉덩이를 닦고 마른 기저귀로 가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주변 환경의 물리적 특성을 사용해 그때그때 세상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디자인 연구가 사라 헨드렌이 쓴 신간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원제: What can a Body Do?)은 정상과 비정상, 표준과 비표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저자는 장애가 극복해야 할 비극의 멜로드라마도 아니고, 단순한 몸뚱이의 결함도 아닌, 그저 "맞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장애는 "몸에서 세상으로, 세상에서 몸으로 흐르는 부조화"이며 "세상과의 명백한 "미스핏"(misfit), 즉 부적합 관계에서 몸이 스스로를 발견하는 곳이면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장애가 흔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2011년 세계보건기구(WHO) 종합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 인구의 12.5%에 해당하는 10억 명이 장애를 지닌 채 살아간다. 이는 운동장애, 감각장애, 정신질환, 인지 및 발달장애, 일반적인 노화 등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포함한 수치다. 이런 상태는 선천적 일수도 후천적일 수도, 빈곤의 결과일 수도, 우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장애는 일부에게만 영원히 속하는 고정된 딱지가 아니다. 누구나 그 자리에 설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문제는 이런 장애의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이 쉽게 쓸 수 있는 친화적인 물품의 디자인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장애인은 언제나 자신의 몸과 구축된 세계 사이에 자리한 장벽을 마주하고" 살아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 정상과 비정상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선 장애와 비장애, 나와 타자 간의 관계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장애를 가진 입장에서는 말이다.
골판지 의자 제작 과정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에 따르면 "몸의 구조는 관계의 구성"이다. 몸은 나와 사물, 나와 타자 간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성장, 노화, 질병을 거치며 우리는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하기에 몸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적응력과 반응성이 뛰어난 하나의 기구라 할 수 있다.
한쪽 팔만 있는 크리스가 일상생활을 거뜬히 해결하는 것처럼, 인간은 적응의 창조력을 발휘해 주변을 설계해 나갈 수 있다. 책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청각장애 학생이 수어로 소통하면서 어떤 식으로 공간의 구조물을 활용하는지, 루게릭병을 진단받은 남성이 바람직한 미래를 준비하며 자신의 운동신경이 정지 상태에 이르러서도 살 수 있는 집을 어떻게 설계했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사물과 환경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촉구한다.
김영사. 308쪽. 조은영 옮김.
연합뉴스 제공 (케이시애틀 제휴사)
